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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월급 250만원 받으며 난민 위해 사는 변호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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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의 사회탐구 

공익법무법인 ‘어필’의 정신영·김세진·전수연·이일 변호사(왼쪽부터). 작은 사진은 이 법인 설립자 김종철 변호사가 지난달 미국에서 ‘인신매매 척결 영웅상’을 받는 모습. [장진영 기자], [미 국무부 영상 캡처]

공익법무법인 ‘어필’의 정신영·김세진·전수연·이일 변호사(왼쪽부터). 작은 사진은 이 법인 설립자 김종철 변호사가 지난달 미국에서 ‘인신매매 척결 영웅상’을 받는 모습. [장진영 기자], [미 국무부 영상 캡처]

‘절대로 받으면 안 된다’와 ‘함께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로 온 나라가 둘로 갈라진 듯한 모습이다. 제주도 예멘 난민 ‘쇼크’가 빚은 현상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난민 문제를 진지하게 마주하게 됐다. 먼 나라 고민거리로만 여기던 일이 현실로 닥쳐왔다. 이 혼돈 속에서 당사자들인 난민 지위 신청자들 못지않게 주목받는 사람들이 있다. 난민 지원 활동가들이다. 공익법무법인 ‘어필’의 변호사들도 기고·인터뷰·토론으로 연일 언론에 등장한다. 난민·이주민을 돕는 어필에는 다섯 명의 변호사가 있다. 미국 국무부가 수여하는 ‘인신매매 척결 영웅상’을 수상(지난달 28일)하기 위해 미국에 체류 중인 한 명(김종철 변호사)을 빼고 네 명을 만났다. 그들에게 왜 박봉을 감수하며 이 일에 매달리고 있는지, 난민 갈등의 원인과 해법은 무엇인지를 물어봤다.

사시·로스쿨 거친 3040 네 명 #고소득보다 보람 찾아 합류해 #“난민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삶, #어떤 나라를 바라느냐와 직결” #찬반 간극 줄어들기 어렵지만 #사회가 조금씩 변할 것을 기대

어필은 김종철 변호사(47·연수원 36기)가 2011년에 만들었다. 난민·이주노동자에 대한 법률적 보호가 설립 목적이다. 그 뒤 네 명의 변호사가 합류했다. 사건 수임료는 받지 않는다. 600여 명의 시민이 매달 보내주는 후원금이 수입의 원천이다. 청춘을 쏟아부으며 사법시험을 치르거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다닌 이들 변호사 넷의 평균 월 소득은 255만원. 올해 1분기 전체 가구 월평균 소득(476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은 ‘가치를 위한 같이 걷기’를 모토로 내걸고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마주 앉아 일한다. 난민불인정 취소 소송 대리, 난민 보호 실태 조사 등이 주요 업무다.

#삼성전자 출신 정신영 변호사

36세. 서강대 컴퓨터학과(01학번)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2년간 일한 뒤 한동대 로스쿨에 진학해 미국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그는 “뭔가 더 의미 있는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어머니 표현으로 ‘배부른 소리’를 하다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고정 수입이 없는 프리랜서 시각 자료 디자이너인 그의 남편은 요즘 두 아이(6세, 3세)를 돌보는 일에 매달려 있다. “로스쿨 다닐 때 어필에서 실무수습을 하게 됐는데, ‘정말 필요한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다른 인권 감수성을 갖고 자라지는 않았다.” 그가 설명한 ‘취업’ 과정이다.

정 변호사는 난민 반대 정서가 충분히 이해된다고 했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귀찮고, 성가시고, 부담스럽고, 어렵고, 두렵기까지 한 일이다.” 그러면서 “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쳐 온 사람들에게 생존의 공간을 내줄 것이냐, 내칠 것이냐에 우리의 미래 모습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다”고 말했다. 그는 “난민들을 만나면서 ‘이방인은 우리의 스승이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고 했다. 난민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삶, 어떤 나라를 지향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법시험 6수한 김세진 변호사

40세. 서울대 경제학과(98학번) 재학 때부터 사법시험에 여섯 차례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주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됐다. 사시 공부와 로스쿨 진학에 대해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전문직 종사자를 꿈꿨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에 실무수습 차원에서 어필에 인턴으로 근무하다 눌러앉았다. 월급은 정 변호사와 같은 250만원이다. 그는 “통장의 빈 곳은 보람이 채워준다.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받는 일반 활동가들과 비교하면 ‘럭셔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한국 사회의 쇼크에 대해 “사람들이 유럽 난민 갈등을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공포심을 갖게 됐고, 그 위에 난민 지위 신청자 대다수가 위장 취업자라는 오해가 더해진 것 같다. 이들이 정말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라는 게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난민 심사 과정을 보면 가짜 난민에게 속고 있는 게 아니라 진짜 난민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정부 심사가 까다롭다. 국민이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판·검사 마다한 이일 변호사

37세. 서울대 법대(00학번)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사시 동기들에 따르면 사법연수원(39기) 성적이 우수해 그가 원하면 판·검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세 아이의 아버지고, 부인은 전업주부다. ‘세 자녀 특별수당’이 포함돼 다른 변호사들보다 다소 많은 월급(300만원)을 받는 그는 “처가에 얹혀살고 있는데, 버틸 수 있는 때까지 버티면서 안 나갈 생각이다”고 말하며 웃었다. “판사 일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았고, 검사는 남 혼내줘야 해서 적성에 안 맞았다. 그리고 일반 로펌에서 기업 대변하면 보람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가 2013년에 군 법무관 생활을 마치고 어필해 합류해 공익 변호사가 된 까닭이다.

이 변호사는 “부의 분배와 사회적 정의에 대한 불만이 더 약한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아 분출된 측면이 있다. 사회 모순이 난민들에게 투영된 것 같다”고 갈등 원인을 짐작했다. 그러면서 “당장은 우리가 분열 양상을 보이지만, 제주도 일이 모든 사람이 난민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계기가 된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청와대·법무부가 계속 눈치만 보고 있는데, 정부가 난민 보호의 의미와 국가의 방향을 국민에게 보다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좌절 취준생이었던 전수연 변호사

37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00학번)를 졸업하고 전북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애당초 공익 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변호사가 된 게 어필 동료들과는 다른 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하려 했는데 경제·경영 전공자 아닌 문과 출신 여자라는 이유로 벽에 가로막혔다. 아예 지원 자체가 안 되는 곳도 있었다. 세상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사회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떠올렸고, 이왕이면 전문성을 갖추고 그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가 ‘본전도 못 찾을 일’에 종사하게 된 이유다. 그의 월급은 220만원으로 어필 변호사 최저 임금이다.

전 변호사는 “사회 안전망은 부실하고, 삶 자체가 불안한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왜 이방인을 보호하려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며 “그렇지만 예멘 등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 특히 청년 세대가 ‘거부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을 조금 더 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난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놓인 청년들이 많다”고 말했다.

네 변호사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았다. 찬반으로 갈린 인식의 간극이 쉽사리 좁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반대자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를 기대했다. 이 사태의 원인이 난민들이 몰고 올 사회적 위험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 한편에 굳게 자리 잡은 ‘닫힌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가겠다고 했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