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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우가 말하는 PK “골문 상단 귀퉁이 못 막지만 실축 많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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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호 22면

월드컵 승부차기 100배 즐기기 

“골키퍼에게 승부차기는 서로 다른 다섯 경기를 약식으로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쓰는 발도, 슈팅 스피드와 각도도 모두 다른 다섯 명의 선수와 일대일로 상대하기 때문이죠. 내가 골키퍼라면 어느 쪽으로 몸을 던질지, 키커라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차서 골키퍼를 따돌릴지 그 상황 속 심리전에 참여한다면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겠죠.”

스웨덴·멕시코 선수들 킥 영상 연구 #평소 차는 방향 반대로 차 못 막아 #의도·동작 미리 읽히면 지는 심리전 #눈빛·표정 안 들키는 선수가 무서워 #이번엔 ‘먼저 차면 유리’ 통설 깨져 #더 철저하게 준비한 팀 통계 이겨

‘국민 골키퍼’ 조현우(27·대구 FC)가 ‘러시아 월드컵 승부차기 100배 즐기기’ 팁을 알려줬다. 차는 자와 막는 자 사이의 숨막히는 심리 싸움에 빠져 보라는 것이다. 조현우는 러시아 월드컵 F조 최종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신들린 듯한 선방으로 2-0 승리를 이끌었다. 1차전(스웨덴)과 2차전(멕시코)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했지만 수비 실수로 내준 페널티킥을 막지 못했다. 두 번 모두 킥의 방향과 반대로 몸을 던졌다. 어떻게 된 걸까.

“상대팀 주요 키커들의 수 년간 페널티킥 동영상을 돌려보며 어느 발로, 어느 방향으로 차는지 입력했어요. 두 번 모두 키커가 평소 차는 방향으로 몸을 던졌는데, 모두 그 반대 방향으로 찬 거죠.”

K리그 울산 현대의 김범수 골키퍼코치가 부연 설명을 했다. “키커도 연구를 합니다. ‘골키퍼가 내 킥 방향을 분석했을 테니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자’ 하는 거죠. 골키퍼가 미세하게라도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걸 간파하면 곧바로 방향을 바꿔 버립니다. 월드컵에 첫 출전한 조현우가 자신도 모르게 입력된 대로 미리 반응했을 수 있습니다.”

조현우도 “스웨덴 선수가 골키퍼 움직임을 읽은 뒤 슈팅하는 스타일인 걸 알면서도 영리하게 대처하지 못했어요. 제가 수싸움에서 진 거죠”라고 솔직히 말했다.

16강전 먼저 찬 팀 모두 패배

러시아 월드컵 8강전이 시작됐다. 월드컵은 16강전부터 단판 승부다. 연장까지 비기면 승부차기를 한다. ‘11m 러시안 룰렛’으로 비유되는 승부차기도 진화하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승부차기는 먼저 차는 팀이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었다. 실제로 40년간 월드컵과 유럽 챔피언십에서 나온 434개의 승부차기를 분석한 이그나시오 런던정경대 교수는 “선축 팀의 승률이 60%다. 승부차기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순서를 정하기 위한 동전 던지기”라고 말한 바 있다. 이그나시오 교수는 후축 팀의 심리적 불안으로 인한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ABBA안’을 제안했다. A팀이 먼저 찬 뒤 B팀 두 선수가 차고, 다시 A팀 두 선수가 차는 식이다. FIFA는 승부차기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FIFA는 ‘복잡하고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이번 대회는 기존 방식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16강전 세 차례 승부차기에서 모두 후축 팀이 승리했다. 심리적 불안감을 상쇄할 만큼의 반복 훈련, 담력이 센 선수 순으로 키커를 정하는 등의 철저한 준비가 ‘통계’를 이긴 것이다. 월드컵 승부차기 3전전패였던 잉글랜드가 이런 준비로 콜롬비아를 4-3으로 꺾었다.

이그나시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골포스트(2m44cm) 절반 위로 찬 하이 샷의 성공률(79%)이 낮게 찬 킥의 성공률(72%)보다 높았다. 골키퍼가 가장 막기 쉬운 게 무릎에서 허리 사이 높이로 날아오는 공이기 때문이다. 골문 상단 귀퉁이로 날아가는 공은 아무리 뛰어난 골키퍼도 막을 수 없다. 다만 하이 샷은 골문을 벗어나거나 골대를 맞히는 실축의 확률이 18%나 된다. 로 샷은 5%다.

조현우도 이런 통계를 알고 있었다. 그는 “승부차기는 키커가 정확히 차기만 하면 골키퍼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구간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선방이 나오는 건 키커도 키퍼도 사람이기 때문이죠. 미리 파악한 데이터가 전혀 없는 키커와 만날 때, 또는 눈빛이나 표정으로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선수를 만날 땐 난감합니다”고 말했다.

오른발잡이는 왼쪽으로 슈팅 확률 높아

골문 가운데로 때려넣는 슛의 성공률이 의외로 높다. 골키퍼가 대부분 한쪽 방향을 정한 뒤, 킥하는 순간 몸을 날리기 때문이다. 키커가 찬 공은 0.4∼0.5초에 골문에 도달하지만 골키퍼의 반응 속도는 0.6초다.

가운데로 차려면 1m 이상 높이로 차는 게 좋다. 공이 낮으면 한쪽으로 몸을 날린 골키퍼가 발을 뻗어 가운데로 오는 공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아킨페예프가 스페인 마지막 키커의 공을 막아낸 것도 이런 장면이었다.

오른발잡이와 왼발잡이의 차이도 있다. 오른발잡이는 왼쪽 골대쪽, 왼발잡이는 오른쪽으로 차는 게 자연스럽다. 공이 발등에 맞아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반대 방향으로 차려면 발 안쪽으로 인사이드 킥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스피드가 떨어진다. 자연스러운 방향(natural direction·오른발잡이→왼쪽)으로 찬 킥이 반대 방향보다 25% 많다.

조현우는 “월드컵에서는 데이터를 믿고 방향을 결정했지만, 평소에는 그 날 경기장, 분위기에서 오는 감을 믿는 편입니다. 디딤발(볼을 차기 직전 딛는 발)을 보고 방향을 예측하는 법은 알지만, 찰나의 순간에 디딤발의 방향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상대 동작을 보고 움직이면 반응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거든요”라고 했다.

이번 대회 승부차기의 특징은 골키퍼는 킥 방향을 잘 잡고, 키커는 골키퍼가 방향을 잡고도 못 막는 슈팅을 때린다는 점이다. 김범수 코치는 “골키퍼가 방향을 잘 잡는 건 그만큼 데이터 연구가 발전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키커들은 반복 훈련을 통해 원하는 지점에 강하고 빠른 슈팅을 날리고 있죠”라고 설명했다.

이영표 ‘이동국 군대가라 슛’ 이탈리아 바조 ‘대기권 돌파 슛’ … 높이 찬 PK 뼈아픈 추억

이탈리아 바조

이탈리아 바조

승부차기는 성공보다 실패한 슛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강렬했던 승부차기 실축은 94년 미국월드컵 결승에서 나왔다. 브라질이 이탈리아에 3-2로 앞선 가운데 마지막 5번 키커로 나선 ‘꽁지머리’ 로베르토 바조(사진)는 한가운데로 어처구니없이 높은 슛을 날렸다. 이른바 ‘대기권 돌파 슛’이었다. 브라질이 네 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대회 내내 히어로였던 바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8년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존 테리의 실축도 강한 잔상을 남겼다.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가 맞붙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치러진 승부차기에서 첼시의 주장 존 테리가 골을 넣으면 우승하는 상황이었다. 테리가 차기 직전 디딤발인 왼발이 잔디에 미끄러졌고, 공은 오른쪽 골대 상단을 맞고 아웃됐다. 결국 맨유가 6-5로 이겨 우승했고, 테리는 빗속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2002년 10월 부산 아시안게임 한국과 이란의 준결승. 2002년 월드컵 4강 멤버가 아니었던 이동국은 우승을 해야 군 면제를 받는 상황이었다. 한국의 두 번째 키커는 이미 군 면제를 받은 이영표. 그의 킥이 오른쪽 골대를 강타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골을 넣었다. 한국의 결승 진출 실패로 입대가 확정된 이동국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동국 군대가라 슛’을 날린 이영표는 “너무 자신이 넘쳐서 강하게 찬 게 화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동국은 “영표 형 덕분에 군대(상무) 가서 사람 돼서 나왔으니 고맙다”고 했다. 이 세 슛의 공통점은 골대 절반 이상 높이로 찼다는 점이다. ‘하이 샷’의 실축 확률이 높다는 걸 입증한 사례였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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