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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계에 도전한 불·수·사·도·북 종주 산행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26)

불·수·사·도·북 종주산행의 마지막인 북한산. 종주산행 길에 바라본 비봉능선이 새삼스럽다. [사진 하만윤]

불·수·사·도·북 종주산행의 마지막인 북한산. 종주산행 길에 바라본 비봉능선이 새삼스럽다. [사진 하만윤]

동호회 내에서 ‘불·수·사·도·북’ 종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지 꽤 됐다.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등 서울 강북의 5대 산을 연계해 종주하는 이 산행은 산의 정상 부근 능선까지 올라 능선 길을 따라 걷는 보통의 종주 산행과 달리 네 번의 오르내림을 반복해야 한다. 거리가 45km에 달하고 소요시간 또한 20시간을 웃돈다.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때문에 섣불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같은 이유로 지난 3월부터 순차적으로 각각의 산을 오르며 나름의 준비단계를 거쳤다. 개별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 외에 종주 산행에 도전하고 싶은 회원에게 스스로 의지를 다지고 가능성을 점검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두 달여를 준비하고 지난 5월 도봉산 우중 산행 중에 6월 22일 금요일 저녁을 D-DAY로 잡았다. 금요일 저녁 9시에 출발해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 5시께에 전체 종주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불·수·사·도·북 종주 산행은 그렇게 석 달여 준비 기간을 거쳐 진행하게 됐다.

20여 시간 들여 45㎞ 걸어야…3개월여간 사전 준비  

종주 첫날, 저녁 9시에 모인 일행은 출발 전 배낭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사진 7080산처럼]

종주 첫날, 저녁 9시에 모인 일행은 출발 전 배낭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사진 7080산처럼]

종주 산행에 도전한 이들은 모두 17명. 이중 불·수·사·도·북 완주 경험이 있는 회원은 단 1명이었다. 출발 당일 저녁 9시, 도전자들은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에 모였다. 다시 한번 배낭을 꼼꼼히 점검하고 각오 또한 새로 다졌다. 모두의 얼굴에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다.

일행은 종주 산행의 시작점인 서울원자력병원 근처 공릉산백세문으로 이동해 출발 전 기념 단체 사진을 남겼다. 반드시 완주하겠다는 일행의 의지가 캄캄한 어둠을 뚫고 나오는 듯하다. 이곳에서 출발해 북한산 족두리봉을 마지막으로 불광역 방향 불광공원지킴터로 내려오면 된다. 우리는 전체 소요시간을 20시간으로 잡고 다음 날 오후 5시 하산을 목표로 출발을 서두른다. 물론, 길은 가봐야 끝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종주산행의 시작지점인 공릉산백세문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사진 하만윤]

종주산행의 시작지점인 공릉산백세문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사진 하만윤]

공릉산백세문에서 불암산 정상까지는 중간지점의 헬기장을 오르는 길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평탄하다. 서로가 밝히는 랜턴 불빛에 의지해 걷는데 길 좌우로 펼치는 서울시와 남양주시의 근사한 야경이 발걸음을 더 가볍게 만든다. 길을 재촉하니 어느새 첫 번째 지점인 불암산 정상이다.

정상에 오르니 앞으로 가야 할 수락산과 도심 건너편 도봉산과 북한산 능선이 어둠을 뚫고 아련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어둠 속이라도 놓칠 수 없는 인증샷을 남기고 일행은 저마다 목을 축이고 간편한 행동식을 먹는다. 틈나는 대로 행동식으로 체력을 보충하는 건 종주 산행에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어둠 속에서는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

불암산 정상을 향하는 길에 만난 남양주시 야경. 야간산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사진 하만윤]

불암산 정상을 향하는 길에 만난 남양주시 야경. 야간산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사진 하만윤]

정상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해가 뜰 때까지는 오로지 랜턴 불빛에 의지해 걸어야 한다. 어둠 속에서는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할 수 있으므로 일행은 하산 길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걷는다.

불암산 정상에서 수락산으로 향하는 길. 짙은 어둠 속에 오로지 서로의 랜턴 불빛에 의지해 걷는다. [사진 하만윤]

불암산 정상에서 수락산으로 향하는 길. 짙은 어둠 속에 오로지 서로의 랜턴 불빛에 의지해 걷는다. [사진 하만윤]

불암산에서 수락산으로 넘어가는 덕릉고개 쪽은 길을 찾기가 쉽지 않으므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일을 끝내고 뒤늦게 출발한 일행 1명과 합류했다. 일행은 짙어지는 새벽어둠에 오로지 서로의 랜턴 불빛이 비추는 길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나무뿌리에 걸려 일행 1명이 넘어졌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으나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건 어쩔 수 없다. 일행은 부상을 걱정했으나 정작 넘어진 당사자는 자신의 부상 정도보다 완주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한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준비해간 비상 약품으로 응급처치한 후 다시 길을 재촉했다.

두 번째 산 정상인 수락산 주봉. [사진 하만윤]

두 번째 산 정상인 수락산 주봉. [사진 하만윤]

두 번째 목표인 수락산 정상 주봉에 올랐을 때 이미 밤이 이슥했다. 도시의 야경은 그 화려함이 수그러들고 짙은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난다. 하산은 기차바위가 아닌 다른 길로 우회하기로 한다.

분명 하산 길이나 도정봉, 동막봉은 오르막이기에 일행은 조금씩 지친 기색을 보인다. 치열하게 낮을 보내고 또다시 어둠을 뚫고 밤새 산을 오르기가 결코 쉽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이번 산행은 어쩌면 매 순간 자신과의 싸움이고 또 다른 도전일 것이다. 그래도 일행은 쉬지 않고 걸어 동막봉에 도착했고 다시 동막골로 난 길로 향한다. 이곳에서 내려가면 지하철 1호선 회룡역 근처에 다다르게 된다.

수락산서 일단 하산, 아침 식사로 기력 보충

순댓국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잠시나마 쉬며 밤새 걸은 피로를 던다. [사진 하만윤]

순댓국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잠시나마 쉬며 밤새 걸은 피로를 던다. [사진 하만윤]

불·수·사·도·북 종주 산행에서는 대개 수락산에서 하산한 후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밤을 새우며 20여 시간을 걷는 고된 여정이기 때문에 배낭 무게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당연히 먹을거리를 직접 싸 오기보다 도중에 만나는 식당이나 가게에서 식사하거나 물을 보충한다.

우리 일행도 마찬가지로 회룡역 근처 식당에서 뜨끈한 순댓국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식당 앞마당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한다. 그즈음 서서히 떠오르는 해가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힘을 얻은 일행은 호암사를 지나 사패산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어느새 날이 환하다. 사패산은 오르기가 그리 힘들지 않고 도봉산과 붙어있어 능선 길을 따라 곧장 걸으면 도봉산까지 완주할 수 있다. 다행히 오전엔 구름이 끼어 덥지 않고 오롯이 걷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패능선에서 사패산 정상은 이번 종주 산행 여정의 반대 방향에 있어 정상을 밟으려면 반대로 갔다 되돌아와야 한다. 고맙게도 회원 1명이 중간지점에서 배낭을 지켜준 덕분에 나머지 일행이 정상까지 한결 수월하게 다녀왔다.

사패산에서 바라본 도봉산 능선과 북한산 백운대. [사진 하만윤]

사패산에서 바라본 도봉산 능선과 북한산 백운대. [사진 하만윤]

도봉산으로 향하는 길. 이슥한 밤까지 어둠 속에 모호했던 불암산, 수락산 길과 달리, 환한 빛 아래 오르는 도봉산 길은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소 산행이었다면 근사하고 탁 트인 풍경에 넋을 놓았을 텐데, 이번엔 어쩐지 마음이 다르다. 도봉산 포대능선과 오른쪽 오봉능선, 정면의 북한산 주 능선을 바라보는데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았구나 싶은 막막함이 먼저 앞선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도봉산 자운봉, 신선대를 돌아 주봉에서 우이암으로 이어진 길을 걷고 또 걷는다. 곧 우이남능선을 통해 우이동쪽 하산 길로 접어든다. 6월의 낮 햇볕은 제법 따갑다. 밤새 걸은 여파로 걷는 중에도 문득문득 눈꺼풀이 내려오는 걸 느낀다. 그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일행과 함께 보폭을 맞추며 걷는다. 걷다 보면 그만큼 끝이 가까울 것이므로.

걸어온 길을 되돌아 바라본 도봉산 자운봉. 이미 8할만큼 걸었다는 뿌듯함이 앞선다. [사진 하만윤]

걸어온 길을 되돌아 바라본 도봉산 자운봉. 이미 8할만큼 걸었다는 뿌듯함이 앞선다. [사진 하만윤]

첫 종주 산행이라 그런지 예정보다 소요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낮 12시 30분을 훌쩍 지나서야 도봉산을 벗어나 우이동으로 하산했다. 하산 지점에 도착하자 이번 종주 산행을 응원하러 나온 다른 회원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건네주는 피로회복제에 여태까지의 산행 피로가 말끔히 씻기는 듯하다.

다 함께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마지막 코스인 북한산을 향해 길을 서두른다. 무릎이 아프고 발이 부어 걷기 힘든 몇몇 회원은 불·수·사·도 4개 산을 종주한 것으로 만족하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대신 응원 나온 회원 몇이 마지막 북한산행에 동행한다. 북한산행은 대개 영봉을 올라 백운대로 향하는 코스를 선택하지만 우리 일행은 시간을 꽤 지체한 탓에 도선사로 향해 북한산 종주 길에 도전키로 한다.

그동안 수없이 오갔던 길인데도 밤새 4개 산을 오르내린 탓인지 가는 길이 녹록지 않았다. 햇볕은 따갑고 이미 한계에 다다른 발바닥은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일행 중 누구도 내색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길을 걸었다. 모두 자신과의 싸움에 열중하고 이겨내고 있으리라. 그 모습은 그대로 감동으로 다가왔다.

금요일 저녁 시작한 산행은 하루해를 넘기고도 계속 이어졌다. [사진 하만윤]

금요일 저녁 시작한 산행은 하루해를 넘기고도 계속 이어졌다. [사진 하만윤]

북한산성길을 지나 문수봉,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을 지나 족두리봉으로 향하는데 이미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금요일 저녁에 시작한 산행이 꼬박 하루를 향해 가는 셈이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산행을 마무리 짓기 위해 후미에서 처진 회원을 다독여 속도를 좀 더 내본다. 그렇게 북한산을 벗어나 불광역으로 하산해 근처 식당에 도착하니 사위는 이미 캄캄했다.

식당 안에는 무박2일, 50km, 23시간의 물리적 거리와 시간을 오로지 정신력으로 이겨낸 일행들이 자리해 있다. 뒤늦게 완주한 후미 일행을 돌아보는 그들의 표정에 힘겨움과 고단함을 뚫고 뿌듯함과 성취감이 함께 떠오르는 듯하다.

감상과 낭만 대신 성취감, 이것이 종주 산행 매력

때론 어둠 속에서, 때론 햇살 아래서 만난 이정표들. [사진 하만윤]

때론 어둠 속에서, 때론 햇살 아래서 만난 이정표들. [사진 하만윤]

근사한 산의 풍경 안에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고 숲과 나무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며 산을 오르내리고 싶었으나, 이번 종주 산행을 가만히 돌아보니 정작 앞사람 신발 뒤축만 보며 오로지 걷는 데만 집중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런데 아무렴 어떠랴. 대개의 산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감상과 낭만 대신, 매 순간 나 자신과 싸우며 도전했고 마침내 목표한 끝에 도달해 완주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종주 산행의 매력이고 참맛이 아닐까.

더욱이 이번 종주 산행을 함께 한 이들이 벗을 넘어 동지가 됐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길 위의 시간이 항상 좋을 순 없으나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지와 함께라면 적어도 무의미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한 뒤풀이 자리에서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번 다시 종주 산행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 아마도 머지않은 날에 또다시 배낭을 꾸려 종주 산행에 나설 것 같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이다.

공릉산백세문-불암산-수락산-회룡역-사패산-도봉산-우이동-북한산-불광공원지킴터. 총거리 약 50Km, 총 시간 약 23시간 20분. [사진 하만윤]

공릉산백세문-불암산-수락산-회룡역-사패산-도봉산-우이동-북한산-불광공원지킴터. 총거리 약 50Km, 총 시간 약 23시간 20분. [사진 하만윤]

하만윤 7080산처럼 산행대장 roadinm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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