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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1만m 상공의 만찬...시작은 '샌드위치'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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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항공기에서는 바닷가재가 제공될 정도로 기내식이 호화로왔다. [중앙포토]

1960~70년대 항공기에서는 바닷가재가 제공될 정도로 기내식이 호화로왔다. [중앙포토]

  최근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으로 해외여행객들이 꽤 큰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중·장거리 비행을 하면서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여행의 시작부터 정말 기분 상하게 하는 일인데요.

 사실 기내식은 어느 사이엔가 해외여행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단어가 될 정도로 친숙하고 밀접한 용어가 됐습니다. "해외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기내식 먹고 싶다"는 말로 바꿔 표현하기도 하니까 말이죠.

1919년 유료 샌드위치가 시초 

 1910년대 런던과 파리를 오가던 핸들리 페이지 수송의 항공기. [중앙포토]

1910년대 런던과 파리를 오가던 핸들리 페이지 수송의 항공기. [중앙포토]

 그럼 하늘 위에서 먹는 식사, '기내식'은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요? 기록상 기내식의 탄생은 1919년 10월 11일로 나옵니다. 당시 영국의 '핸들리 페이지 수송(Handley Page Transport)'이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오가는 정기 항공노선에서 샌드위치와 과일 등을 종이상자에 담아 승객에게 판매한 게 효시입니다. 그러니까 샌드위치가 최초의 기내식인 셈입니다. 참고로 핸들리 페이지 수송은 원래 항공기 제작사이지만 당시에는 운송도 했다고 합니다.

요즘도 간편식으로 즐겨먹는 샌드위치가 기내식의 시초였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중앙포토]

요즘도 간편식으로 즐겨먹는 샌드위치가 기내식의 시초였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중앙포토]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항공운송업이 초기 단계인 데다 비행기가 작고 성능이 떨어지는 탓에 이렇다 할 기내식의 발달은 없었습니다. 목적지로 가는 중간에 급유와 휴식을 위해 잠시 들르던 공항의 식당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하는데요.

 기내 주방 설치, 기내식 경쟁 가열 

 현재와 유사한, 따뜻하게 데워진 기내식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36년입니다. 미국의 유나이티드항공(United Airlines)이 기내에 주방(갤리·galley)을 설치하면서부터인데요. 장거리 운항이 늘어나면서 기내식 제공 필요성이 커지고, 항공기 크기와 성능이 향상된 덕이기도 합니다. 이후 다른 항공사들도 기내에 주방을 속속 설치했다고 합니다.

항공기내 주방인 갤리에서는 기내식을 따뜻하게 데워서 제공한다. [중앙포토]

항공기내 주방인 갤리에서는 기내식을 따뜻하게 데워서 제공한다. [중앙포토]

 이 같은 갤리의 설치는 기내식 역사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샌드위치나 과일 등 찬 음식 위주의 기내식에서 스테이크, 파이 등 다양하고 따뜻한 음식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건데요. 지상의 기내식 공장에서 만든 조리 음식들을 갤리에서 데워서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기내식의 폭이 상당히 넓어지게 된겁니다. 이로부터 항공사들의 기내식 경쟁도 한층 가속화됩니다.

 1950년대 후반 미국 팬암항공사(Pan Am)의 광고 영상을 보면 화려한 기내식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데요. 푸짐하게 준비된 스테이크와 각종 음식을 승무원이 승객에게 제공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또 라운지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승객들에게 간단한 간식을 제공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요.

 60~70년대 호화 기내식 시대   

 1960년대와 70년대는 호화 기내식 경쟁의 절정기로 불리기도 합니다. 1969년 등장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경우 기내에서는 이전까지 상상도 못 했던 캐비어(철갑상어 알)와 송로 버섯, 푸아그라(거위 간), 랍스터(바닷가재) 등을 제공했다고 하는데요. 엄청나게 비싼 항공료만큼이나 기내식도 호화롭기 그지없습니다.

카트에 실려 있는 다양한 기내식들. [중앙포토]

카트에 실려 있는 다양한 기내식들. [중앙포토]

 이 시기 다른 항공사들도 상당히 다양한 기내식을 제공했는데요. 기내 중간에 설치된 테이블에 맛깔난 음식들을 올려놓고 승객들이 식사를 뷔페식으로 즐기기도 했습니다. 또 요리사가 직접 탑승해 서빙하기도 했고요. 당시 항공 여행은 대부분 상류층에 국한된 것이어서 그만큼 기내식이 고급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저비용항공사, 사서 먹는 기내식 등장  

라이언에어에서 유료로 판매하는 기내식 메뉴.

라이언에어에서 유료로 판매하는 기내식 메뉴.

 80년대 들어서는 또 다른 하나의 흐름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따로 돈을 내고 사 먹는 기내식이 등장한 건데요. 아일랜드 국적의 대표적 저비용항공사인 라이언에어가 1985년 이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항공료에 식사비가 포함된 일반 항공사와 달리 기내식은 원하는 승객만 따로 돈을 내고 사 먹는 건데요. 현재 국내 저비용항공사도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행기에 요리사가 동승해 직접 기내식을 서빙하는 항공사도 있다.

비행기에 요리사가 동승해 직접 기내식을 서빙하는 항공사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영국항공, 에어프랑스, 아시아나항공 등에서 60~70년대처럼 요리사를 동승시켜 일등석 승객에게 색다른 요리를 제공하기도 했는데요. 아시아나항공은 한때 일식 요리사가 직접 초밥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대한항공은 한정식 수준의 기내식을 내놓기도 했고요.

 반면 일본항공 등에서는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 같은 비교적 낮은 가격의 패스트푸드가 기내식으로 사용된 사례도 있습니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고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에 이벤트용이었다고 하네요.

아랍에미레이트항공의 일등석 기내식.

아랍에미레이트항공의 일등석 기내식.

 그럼 일등석과 일반석의 기내식 단가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항공사별로 영업비밀이라 공개를 하지는 않지만 한 끼에 일반석이 1만~1만5000원, 비즈니스석 4만~5만원, 일등석 7만~10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항공료가 수천만 원씩 하는 최고급 일등석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더 비쌀 것으로 생각됩니다.

단가는 영업 비밀 "공개 못 해" 

 그런데 기내식은 제작부터 제공까지 일반식당과 다른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우선 제한된 좁은 공간에 장시간 있는 승객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고 칼로리가 낮은 식품으로 구성합니다. 소화 장애나 고칼로리 섭취로 인한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한항공에서 제공하는 일등석 기내식.

대한항공에서 제공하는 일등석 기내식.

 또 비행시간에 따라 찬 음식과 더운 음식이 나뉘는데요. 국제선은 두 시간 이내면 샌드위치나 김밥과 같이 데울 필요가 없는 음식이 제공됩니다. 반면 두 시간 이상이면 따뜻한 기내식이 나오는데요. 횟수는 항공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비행시간이 6시간 이내면 한 번, 6~8시간이면 1.5회, 8시간 이상이면  두 번 정도 제공됩니다. 0.5회는 샌드위치 등 간단한 요깃거리라고 하네요.

싱가포르항공의 비즈니스석 기내식.

싱가포르항공의 비즈니스석 기내식.

 승객들은 대부분 기내식 제공 때 두세 가지 메뉴에서 선택하지만, 실제로 기내식 종류는 상당히 다양합니다. 대한항공의 경우 120가지나 된다고 하는데요. 아이들을 위한 유아식은 물론 인종과 종교상의 이유로 일반 기내식을 먹지 못하는 승객들을 위한 특별식도 있습니다. 또 당뇨병·심장질환 환자들을 위한 건강식도 준비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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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기내식은 에티하드항공, 에어프랑스 등 대형항공사의 일등석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기내식 유형과 컵라면·도시락 등 간단한 요깃거리를 직접 사서 먹는 저비용항공사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자본주의 논리가 가장 극명하게 적용되는 항공 시장에서 기내식 역시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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