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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북한 핵무장국 됐는데, 비핵화 협상은 계속 물음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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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북·파키스탄, 농축기술·미사일 거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된 모든 메시지가 부정적이다. 북한은 CVID(완전하게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도록 핵 폐기)에 반대했고 미국은 이를 수용했다. 핵 폐기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게 됐다. 그런 가운데 북한의 핵탄두는 3배 이상 늘어났고 북한은 공세적 핵전략을 구사할 전망이다. 방북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비핵화 임무는 블록버스터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주연한 톰 크루즈보다 어렵다는 얘기가 미국에서 나온다. 북 비핵화 협상이 초반부터 엇나가는 분위기다.

북, 2020년 핵탄두 140∼150발 #핵전략, 체제생존 → 공세로 전환 #트럼프, 김정은을 핵정상 대접 #미, 대북 CVID → FFVD로 후퇴 #북 비핵화 희망적 사고 접어야 #핵무장 북한의 최악 상황 대비

새롭게 드러난 북한의 핵 능력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 충격은 시작에 불과하다. 미 국방정보본부(DIA)를 인용한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 핵탄두가 65개로 증가했고, 최대 1만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갖춘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핵탄두가 20개에서 65개로 커진 것도 문제이지만 원심분리기가 더 심각하다. 1만대가 넘는 원심분리기로 핵무기급 고농축 우라늄(HEU)을 계속 생산할 수 있어서다. 북한 플루토늄은 노출된 복잡한 추출과정을 거쳐 기껏 연간 7㎏ 정도 생산할 수 있어 오히려 덜 중요해졌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의 우라늄 농축은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 알려진 북한 농축시설은 영변의 원심분리기 4000개 규모의 공장이다. 이 시설은 미 로스앨러모스연구소 소장을 지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 등에게 2010년 11월 처음 공개됐다. 당시  농축시설 1, 2층의 플랫폼(길이 50m) 위에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3열로 빼곡히 있었다. 헤커 박사의 증언에 따르면 농축시설의 내부는 현대적이었고 연간 HEU 40㎏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은 이후 이 시설을 두배 이상(원심분리기 최대 6700개)으로 확충했다. 그러나 핵 과학자들은 북한이 영변 농축시설을 공개하기 전인 2000년대 중반에 규모가 더 큰 비밀 농축시설을 이미 건설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 정보당국도 북한에 비밀 농축시설 1∼2곳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이번에 보도된 강선(강성) 지역에 있는 원심분리기 1만2000개 규모의 농축시설이 그 비밀 시설이다.

따라서 북한 영변과 강선 지역에 있는 농축시설을 더하면 원심분리기는 최대 1만8700개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다. 이란이 2015년 핵 개발 중단 합의 때 나탄즈에 갖췄던 원심분리기 2만개 수준의 우라늄 농축시설과 비슷하다. 북한에 제3의 농축시설이 또 있다면 전체 규모가 이란보다 클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JCPOA)에서 탈퇴한 이유도 북한 농축시설 때문으로 보인다. JCPOA에서 이란은 2만개의 원심분리기 가운데 2/3는 폐기하고 나머지는 남겨두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서 이란처럼 원심분리기 2/3만 폐기하겠다며 형평성 문제를 들고나오면 미국으로선 난처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원심분리기는 이란보다 신형이다. 이란의 원심분리기 2만대 가운데 1만9000대는 1세대급인 P1형이지만 북한은 머레이징강으로 만든 2세대(P2형)를 갖고 있다. 분당 9만번 회전하는 P2형 원심분리기는 파키스탄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출신 라파엘 오펙 박사에 따르면 북한-이란 거래는 부토 파키스탄 총리가 1993년 가을 북한 김일성 주석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파키스탄은 1993∼94년 사이 북한에 P1형 원심분리기 20대와 P2형 4대를 제공했다.(이스라엘 디펜스지 2017.7.6) 북한은 그 대가로 파키스탄에 노동미사일 기술을 넘겨줬다고 한다. 이 기술로 파키스탄이 개발한 게 가우리 미사일이다. 파키스탄은 이후 원심분리기를 이란과 리비아에도 제공했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생산한 HEU는 지난해까지 750㎏ 수준이다. 또한 독일의 오코연구소(Oko-Institut)의 추정으로 보면 HEU를 매년 300㎏ 이상 생산할 수 있다. 이 계산대로라면 북한은 2020년까지 HEU 1650㎏을 갖게 된다. 이 HEU로 폭발 규모 20㏏급 핵탄두를 만들면 HEU 손실률(30%)을 감안하더라도 128발(1발=HEU 9㎏)이다. 여기에 이미 만든 플루토늄탄 20발을 더하면 북한의 핵탄두는 산술적으로 140∼150발이 된다. 북한의 핵탄두 수가 영국(215발)에 이어 세계 6∼7위로 급부상한다. 북한 핵탄두 중에는 수소탄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거의 완전한 핵 무장국이 된다는 얘기다.

북한이 많은 핵탄두를 가지면 경제와 체제생존을 목표로 했던 처음 생각과는 많이 달라진다. 전략도 바뀐다. 통일연구원 김보미 박사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핵무기로 중국 등 제3자를 외교·안보적으로 우군으로 끌어들여 위기를 모면하는 촉매(catalytic)전략에서 성공했다. 한발 더 나아가 확증파괴전략을 기반으로 하는 최소억제전략(인도·파키스탄)을 거쳐 공세전략으로 진행 중이다.(‘신흥 핵보유국의 부상: 북한의 핵 능력과 핵전략 특징’) 북한이 지난해 7∼8월 야간에 쏜 화성-14형 미사일이나 일본을 넘겨 발사한 화성-12형은 이런 차원에서의 실전적 훈련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한·미는 북한의 핵전략 추구를 막는 데 결정적으로 실기했다. 북한이 핵탄두를 지난해 가을부터 최근까지 집중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신만만했던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뒤 ‘김정은 달래기’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 정상회담 직후 김 위원장을 핵보유국 정상 수준으로 대했다. 북한을 군사적 성인으로 대접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폼페이오 장관도 북한 비핵화를 CVID방식에서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로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방북 중인 폼페이오의 상대로 북한 김영철 통전부장 대신 리용호 외무상이 나온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핵 협상을 외교적 차원으로 추진하면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가 아니라 과거 6자회담처럼 여러 해가 걸릴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에 북한은 HEU 축적과 핵무기 고도화로 완전한 핵 무장국으로 변신할 것이다.

3차 방북 중인 폼페이오 장관의 짐이 더 커졌다. 그가 이번 방북에서 수긍할 만한 완전한 북핵 폐기 리스트를 가지고 오지 못하면 모든 비난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핵 무장도 결국 인정해주는 셈이 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제부터 내부적으로 북한을 핵 무장국으로 상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적극 나서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런 희망적 사고는 일단 접어둘 필요가 있다. 북한이 어찌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1000발의 일부에 핵탄두를 장착해 쏜다고 가정할 때 어떻게 대처할지 답을 내놔야 한다. 핵 무장한 북한, 비핵 한국, 주한미군 없는 한미동맹과 같은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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