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2일 3명의 대법관 후보자들을 임명 제청한 가운데 사법부의 또 다른 기둥인 헌법재판소도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에만 9명의 헌법재판관 중 5명이 바뀌고 내년 4월에는 재판관 2명이 더 교체된다. 김선수(57·사법연수원 17기)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로 대변되는 대법원발(發) 파격 인사와 함께 헌법재판관까지 대거 교체되면 사상 초유의 ‘진보 사법부’가 탄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법부도 ‘뉴 노멀’ 인사 #헌재, 내년에도 2명 임기 끝나 #9명 중 최소 6명 진보인사 가능성 #“김선수 대법관 후보 편향적 인사” #한국당은 이틀째 비판 이어가
대표적인 진보성향 법률가인 김 변호사에 대한 논란은 법원 안팎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법시험 수석(제27회) 출신으로 노동법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며 ‘법정의 신사’로 불릴 만큼 인품도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지만 대법관이 되기엔 편향된 인물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당시 변호인 단장을 맡았던 이력 등이 도마에 올랐다.
전날 김 변호사 임명 제청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던 자유한국당은 연일 공세를 이어갔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3일 “대법관에 편향적인 인사가 들어간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한 전직 대법관은 “김 변호사는 법리적 판단력에 결코 모자람이 없는 법조인으로 양승태 법원에서 대법관이 됐다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추 역할을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미 운동장이 진보 성향으로 기운 상황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이 퇴임하고 11월 김소영 대법관까지 임기를 마치면 대법관 13명 중 8명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로 채워진다.
대법원과 함께 최고법원의 지위를 갖고 있는 헌재도 대대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재판관이 9월 19일 임기가 만료돼 재판관 과반 이상이 교체된다.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관 인사와 달리 헌법재판관은 국회가 3명을 선출하고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각각 3명씩 지명하도록 돼 있다. 오는 9월 임기가 끝나는 재판관 5명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2명, 새누리당 1명, 민주통합당 1명, 여야 합의로 1명을 지명해 임명된 인사들이다. 비교적 보수적 색채가 뚜렷하게 반영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임명될 재판관들은 정반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명의 지명권을 행사하고 여당 1명, 야당 1명, 여야 합의로 1명을 지명한다. 최소 3명의 재판관이 진보적 성향의 인사들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4월엔 박근혜(66) 전 대통령이 지명했던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이 임기를 마친다. 이들의 후임 재판관은 문 대통령이 지명권을 행사한다. 문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진보적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유남석 재판관을 지명해 임명했다. 내년 4월 이후 헌재를 책임질 재판관 9명의 면면을 예상해 보면 ‘쏠림’ 현상이 더 뚜렷해진다. 양 전 대법원장이 지명했던 이신애 재판관과 올해 야당이 지명할 한 명을 제외하면 7명의 재판관이 문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 여당, 여야 합의 지명으로 임명된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보수 성향 법관들이 사법부를 채웠던 것처럼 앞으로는 진보 성향의 법관들이 대법원과 헌재를 장악할 수 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나온다.
최근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과 관련해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선 합헌을 선고했고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향후 ▶동성애 ▶국가보안법 ▶사형제 ▶최저임금제 같은 주요 이슈들이 헌재의 판단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한 전직 고법 부장판사는 “정권의 성향에 따라 사법부의 구도가 급변하는 일은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늘 반복돼 왔다”며 “정권에 관계없이 흔들림 없는 굳건한 사법부를 기대하는 일은 아직 요원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