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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자유가 소극장 살릴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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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호 29면

삼일로 창고극장 재개관의 의미

20여 년 전 비좁은 소극장에서 1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숨죽이고 보던 추억이 떠오른 건 22일 재개관한 삼일로 창고극장 덕이다. 1975년 ‘에저또 소극장’이란 이름으로 탄생한 이 ‘최초의 민간소극장’은 운영난으로 개·폐관을 거듭하다 2015년 40년 역사를 접었는데, 서울시가 장기임대에 나서며 7번째 재개관 기념공연으로 연작 ‘빨간 피터들’(7월 22일까지)을 내세웠다. 1977년 배우 추송웅이 여기서 4개월 만에 전설의 6만 관객을 동원했던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에 대한 오마쥬 공연이다.

개인에서 공공으로 주인이 바뀐 첫 무대에 이 ‘전설’을 소환한 건 젊은 연극인들이다. 위탁운영을 맡은 서울문화재단은 민간의 힘으로 꾸려온 극장의 역사성에 주목, 민간 거버넌스 형태의 운영 방식을 도입해 30~40대 젊은 세대 6인의 운영위원회를 꾸렸다. 변방연극제의 이경성,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오성화, 아시아프로듀서네트워크의 박지선 등 실험적인 연극 플랫폼을 꾸려온 이들이다. 폐관 전 운영자가 정대경 한국연극협회이사장임을 상기할 때, ‘세대교체’라는 상징성에 주목하게 된다.

지금 기성 연극계는 카오스 상태다. 블랙리스트와 미투 사태에 관련된 백전노장들이 현장에서 사라져 새 판을 짜야 할 과도기다. 대학로 소극장들은 진작부터 상업화로 치닫고 있다. ‘로코물’이나 ‘대학로 황태자’급 스타를 확보한 일부 기획사에 편중된 시장에서 예술적 다양성은 실종됐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삼일로 창고극장이 세대교체의 바로미터로 떠올랐다. 과연 수차례 죽을 고비를 연명치료로 넘겨온 소극장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젊은이들의 묘안은 뭘까. 혼돈의 연극계가 새 피로 정화될 수 있을까.

삼일로는 창작의 실험성과 창작자간의 관계성에 방점을 찍었다. 극장을 설립한 극단 에저또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전면에 내세운 것. 확장된 공간에 오픈한 갤러리의 개관기념전 ‘이 연극의 제목은 없읍니다’는 배우 등장 없이 빈 무대만 보여줬던 에저또 초기작의 제목을 당시 표기 그대로 내걸었다. 1960~70년대 청년 저항문화의 산실이었던 소극장과 실험극 재조명을 통해 동시대 삼일로의 역할을 되묻는 의미다.

민간운영위원 6명은 2년 동안 각자의 컨셉트로 프로그래밍에 참여한다. “삼일로에서만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겠다”는 이들의 기획은 공연의 완성도로 말하던 기성세대 접근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소외된 창작자들에게 2주간 극장 공간 전체를 개방해 발표의 자유를 주는 ‘창고대방출’, 연극문화에 대한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는 ‘창고포럼’, 창작자간 네트워킹을 도모하는 ‘창고사랑방’ 등, 결과보다 과정에 포커싱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들이다.

공공의 지원을 업은 창작의 자유로 한계없는 실험을 한다니,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예술정책의 이상향이 여기서 실현될 수 있을까.

결과는 관객의 호응이 말해줄 것이다. 관객의 외면으로 폐관된 민간 소극장이 유례없는 민관협력 공공재로 거듭난 지금, 연극인들의 아지트 확보를 넘어 사실상 주인이 된 관객에게 무엇을 돌려줄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마침 재개관을 기념해 오마쥬하고 있는 ‘빨간 피터’도 인간의 자유에 대해 묻는 작품이다. 자유로운 실험이 연극인의 울타리를 넘어 더 큰 울림을 향할 때 세대교체의 의미가 빛날 터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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