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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따세’ 20년 … 초등생도 주부도 ‘나만의 책’ 폭풍처럼 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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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호 11면

올해로 활동 20년을 맞은 책따세 운영진이 지난 26일 서울 신촌에 있는 후원카페(더나더나)에 모였다. 왼쪽부터 조영수 책따세 공동대표(창문여중 교사)·허병두 이사장(숭문고교 교사)·한윤실 간사·임효순 교사(예일여중)·박윤주 씨(전 중평중 교사)·유연정 교사(안양초)·이현호 씨(가톨릭대 국어국문과 4학년)·홍승강 교사(환일고). 이들이 그동안 발간한 책을 손에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경빈 기자]

올해로 활동 20년을 맞은 책따세 운영진이 지난 26일 서울 신촌에 있는 후원카페(더나더나)에 모였다. 왼쪽부터 조영수 책따세 공동대표(창문여중 교사)·허병두 이사장(숭문고교 교사)·한윤실 간사·임효순 교사(예일여중)·박윤주 씨(전 중평중 교사)·유연정 교사(안양초)·이현호 씨(가톨릭대 국어국문과 4학년)·홍승강 교사(환일고). 이들이 그동안 발간한 책을 손에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경빈 기자]

한희자(52)씨는 올해 2월 『19금(錦) 부천 문해(文解)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부천 지역 복지관 등에서 한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가르치면서 겪은 19년 간의 일화를 담았다. 30일엔 부천시의 책쓰기 프로그램 지도자 양성과정을 수료한다. 한씨는 “연수를 받기 전인 1년 6개월 전만 해도 책을 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며 “책따세와 만나면서 비단(錦) 같은 19년을 담은 나의 책을 쓰게 됐고, 이제는 다른 사람이 책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사가 됐다”고 말했다.

고교 교실서 출발해 시민 교육으로 #수동적 독서 넘어 능동적 책 쓰기 #자기만의 주제 쓰며 삶의 주체 돼 #부천 등 지자체와 시민작가 양성 #방학 땐 추천도서 선정, 교사 연수 #성과로 나온 책 저작권 기부도

책따세는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의 준말이다. 1998년 서울 숭문고 허병두 교사가 시작한 교사 모임이 2007년 시민단체(사단법인)로 확장됐다. 초·중·고교 학생은 물론 일반인까지 스스로 책의 저자가 되도록 돕고, 그 성과로 나온 책을 남을 위해 기부하는 저작권 기부활동을 펼친다. 한희자씨는 경기도 부천시와 책따세가 함께하는 ‘1인1저 책쓰기 프로그램 지도자양성과정’을 이수한 시민작가 24명 중 한 명이다.

독서운동을 펼치는 교사모임이나 단체는 여럿 있다. 시민운동으로 독서를 활성화하자는 단체도 있다. 하지만 책따세는 책을 읽자는 데 멈추지 않고 책을 쓰자고 한다. 그렇다면 왜 책을 쓰자고 할까.

허병두 이사장(현재 숭문고 교사)은 “책을 쓰자고 하면 누구나 똑같이 처음엔 당혹스러워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만의 주제를 찾기만 하면 완전히 달라진다. 폭발적으로, 미친듯이, 열정적으로 밤을 새워가며 책쓰기에 몰두한다. 좀 더 잘쓰고 싶다는 열정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기 생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에 빠진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으로 책을 쓰자고 한 대상은 1997년 당시 고3이었다. 그 해 고교 작문 시간에 대입이 코앞에 닥친 학생들에게 책쓰기를 말했다. 허 이사장은 “논술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에겐 대학논술 해설집을, 공부엔 관심을 잃고 뒷자리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에게도 관심사를 잡아 책을 쓰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때 경험을 바탕으로 교사들을 가르쳤고, 책따세 취지에 동의한 교사들과 활동을 함께 했다.

책쓰기는 논술과 같은 글쓰기와 다른 걸까. 허 이사장은 “논술 같은 글쓰기는 주체와 서술 방식, 분량, 시간까지 똑같이 주어진다. 똑같은 걸 주고 창의적으로 쓰라고 요구를 받다보면 글쓰기는 답답하고 괴롭게 여겨진다. 하지만 책쓰기는 자신만의 문제의식과 감수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능동적인 과정이 담겨 있다. 주어진 책을 수동적으로 읽는 독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따세의 역사

책따세의 역사

책따세와 책쓰기 교육을 진행한 한혜정 부천상동도서관장은 저자가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한 관장은 “저자가 된 사람 중엔 통장도 있고, 주부도 있다. 이들이 책을 내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출판할 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힐링을 경험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책쓰기에서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책따세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연정 안양초등학교 4학년 담임 교사는 초등학생도 저자가 되는 걸 돕는다. 아이들에게 “책을 쓰자”고 하면 아이들은 “책이요?”하면서 깔깔 웃는다고 한다. 그래서 관심 범위를 좁혀주고 그 범위 안에서 책을 쓸 소재를 찾아보게 한다. 그런 다음 6쪽 정도로 책을 내게 한다. 유 교사는 “아이들도 처음엔 막막해 한다. ‘이런 거 해도 되요?’라고 여러차례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책을 쓰면 스스로에 대해 자랑스러워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활동 20년을 맞는 책따세의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교사와 학부모 등은 현재 총 180여 명. 공동대표 2명과 운영진 70명이 머리를 맞대고 활동을 벌여 왔다. 책따세 활동 중엔 2000년 겨울방학 때부터 읽으면 좋을 책 목록 선정·발표도 있다. 책 선정 작업에 참여해온 박윤주(70·전 중평중 교사)씨는 “방학 때 25~30권을 추천하는데 출판사에 검토용 책을 요청하거나 연락하지 않는다. 책 선정 과정에서 외부의 영향력을 배제하는데 신경을 써왔다”고 말했다.

책따세는 또 방학 때마다 교사를 대상으로 독서교육 연수를 한다. 2008년 대구에서 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책쓰기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우동기 전 대구교육감이 벌인 ‘대구 학생 저자 10만명 양성’과 같은 교육정책이 나오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대구교육청의 학생 저자 양성 정책이 대입에 유리한 스펙 쌓기 활동(소논문 쓰기)과 결부되면서 책따세는 대구와의 관계를 절연했다. 소(小)논문이란 학생부의 진로활동으로 기록될 수 있는 학생의 연구활동 실적 자료. 대입 수시비중이 커지자 사교육업체가 돈을 받고 대필을 해주는 일이 벌어지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허 이사장은 “대입에 유리하도록 소논문을 쓰는 활동은 책쓰기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부천 등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책쓰기 교육을 펼치고 있다. 고3 교실에서 시작한 책쓰기 교육이 교육청과 지자체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책따세와 이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이 지금까지 펴낸 책은 총 70권. 책따세가 낸 책의 인세는 전액, 활동가들이 따로 낸 책의 인세는 일부가 운영비로 기부된다. 사교육업체 등 외부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원들의 회비와 공식 후원 카페(서울 신촌의 더나더나 카페)의 지원금, 회원들의 자원봉사로 이 단체가 굴러간다. 조영수 책따세 공동대표(서울 창문여중 국어교사)는 “책쓰기 교육이 학교와 같은 교육 현장에 한정되지 않고 지역 사회에 확대될 수 있게 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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