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쉬면서 일해라? 보육교사 '휴게시간 의무화’ 앞둔 어린이집의 황당 지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보육교사의 휴게시간을 의무화하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7월 1일)을 앞두고 어린이집 단체가 소속 회원들에게 배포한 휴게시간 지침이 논란을 일으켰다. 수원어린이집연합회는 29일 연합회 홈페이지에 ‘보육교직원 휴게시간 적용’이란 제목의 지침을 게시했다. 해당 지침은 지난 26일부터 소속 어린이집 교직원들에게 프린트물로 뿌려졌다.

지침은 휴게시간을 오전 11시30분~오후 2시로 정하고 순차적으로 교사 휴게 적용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보육교직원은 휴게시간을 이요해 원외에서 자유롭게 식사한다 ^휴게시간에 교사: 아동 비율은 개정된 보육안내지침에 따라 규정한다 ^보조교사는 휴게시간에는 휴게시간에 담임교사의 업무를 대행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 휴게시간을 대체하는 늦은 출근과 조기 퇴근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근로기준법 조항을 명시했다.

수원어린이집연합회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보육교직원 휴게시간 적용 지침. "근로계약상 휴게시간이 명시돼 있는데 본인이 휴게시간동안 열심히 일을 하였다면 상관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독자 제보]

수원어린이집연합회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보육교직원 휴게시간 적용 지침. "근로계약상 휴게시간이 명시돼 있는데 본인이 휴게시간동안 열심히 일을 하였다면 상관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독자 제보]

문제가 된 부분은 지침 하단 ‘법규 준수요건’이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휴게시간을 제공하지 않으면 2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 부과된다. 이에 대해 연합회는 ‘근무 중 휴게시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원장이 직접 종용했다면 처벌대상이나 휴게시간 대장 관리에 서명근거가 있으나 교사가 휴게시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상관없음. 근로계약상 휴게시간을 명시되어 있는데 본인이 휴게시간동안 열심히 일을 하였다면 상관없음’이라고 규정했다.

지침을 받은 보육교사들은 “쉬면서 일하라는 말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보육교사 김모(45)씨는 “쉬었다는 기록만 남기고 사실상 일을 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냐. 원장들이 휴게시간을 주지 않았다가 처벌을 받을까봐 꼼수를 부리고 있다. 보육교사들의 근무 시간만 더 길어지게 됐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린이집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도 수원 지역보육교사들의 민원이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권병기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과장은 “휴게시간을 점심시간대로 특정해버리거나, 법에 나와있지 않은 내용을 단정적으로 명시해 문제의 소지가 있다. 수원어린이집연합회에 게시물을 내리도록 이야기 했다”고 말했다.

유혜영 수원어린이집연합회장은 “원장은 휴게시간을 준다는 것이고 교사가 원하는 경우(휴게시간에 일할 수 있다는 것)를 말한 것이다. 복지부나 고용노동부가 정확하게 공지를 했다면 이런 혼란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장이 범법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김용희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장은 “원장이 나서서 ‘휴게시간에 일지 좀 쓰면 어때’라고 말하면 큰일이지만, 휴게시간을 분명히 줬는데, 교사가 낮잠시간에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낮잠을 자고 싶다거나 본인이 일지를 쓰고 싶다면 그걸 원장이 막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보육 현장에선 근로조건을 개선으로 하려고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는데, 오히려 보육교사들의 처우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명자 전국보육교사연합회 대표는 “아이들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기 어렵고, 점심식사도 배식ㆍ식사지도를 해야해 쉬기 어렵다. 휴게시간 주기 어려운 어린이집의 경우 근무시간 도중 쉬지 않고 8시간 일하는 대신 1시간 늦게 출근하거나, 1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