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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준희 학대치사, 반인륜적 범죄" 친부·동거녀 징역 20~10년

중앙일보

입력

생전 고준희(사망 당시 5세)양 모습. [사진 전주지검]

생전 고준희(사망 당시 5세)양 모습. [사진 전주지검]

경찰이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전북 군산시 내초동 한 야산에서 발견된 고준희(5)양 시신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전북 군산시 내초동 한 야산에서 발견된 고준희(5)양 시신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다섯 살배기 친딸을 학대해 숨지게 하고도 법정에서 "때린 적 없다" "거짓말이다"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던 아이의 친부와 동거녀가 1심 재판에서 징역 20~1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친부의 신체적 학대가 사망 원인" #동거녀는 상습 폭행 보고도 방치 #단순 실종 사고로 꾸미려다 들통 #친부·동거녀 법정서도 네 탓 공방

전주지법 형사1부(부장 박정제)는 29일 아동학대치사와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준희(사망 당시 5세)양 친부 고모(37)씨와 고씨 동거녀 이모(36)씨에게 각각 징역 20년과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시신 암매장을 도운 이씨 모친 김모(62)씨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고씨와 이씨는 서로 '상대방이 신체적 학대를 가해 피해 아동(준희양)이 숨졌다'며 전혀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피해 아동의 갈비뼈가 골절됐다'는 국과수 부검 결과 등을 보면 고씨의 지속적인 신체적 학대 행위와 이씨의 방임으로 피해 아동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고 실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이씨는 피해 아동에게 직접적인 신체적 학대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이씨가 준희를 폭행했다'는 고씨 진술이 오락가락한 점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

고모(37)씨가 지난 1월 4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준희양 역의 마네킹을 이용해 폭행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고모(37)씨가 지난 1월 4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준희양 역의 마네킹을 이용해 폭행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재판부는 "고씨는 어린 딸을 폭행하고, 치료도 받지 못하게 해 숨지게 했다. 친부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잔혹하고 반인륜적인 짓을 했다"고 꾸짖었다. 동거녀 이씨에 대해서는 "피해 아동을 양육한 3개월 동안 아이의 머리가 두 번 찢어졌는데도 제대로 치료해 주지 않고, 고씨로부터 폭행당한 날 밤에도 (준희양이) 숨을 씩씩거리며 몸부림쳤는데도 사실상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 아동은 누구보다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할 자신의 친부와 그 동거녀로부터 잔혹하게 학대를 당한 끝에 고통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며 "그런데도 피고인들은 본인들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경찰에 허위 실종 신고를 하고 피해 아동(준희양) 앞으로 나온 양육수당을 받는 등 주변인들을 철저히 속였다"고 했다.

선고를 마친 박정제 부장판사는 "초미숙아로 태어나 선천성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던 피해 아동은 친모와 살 때는 꾸준히 치료를 받았다. 조금만 더 지속적인 치료를 받았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생전 고준희(사망 당시 5세)양 모습. [사진 전주지검]

생전 고준희(사망 당시 5세)양 모습. [사진 전주지검]

고씨 등은 지난해 4월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선천성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던 준희양을 학대·방임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같은 달 27일 오전 2시쯤 군산의 한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로 지난 1월 구속기소됐다. 재판부는 "친부와 동거녀의 학대로 몸 상태가 나빠진 준희양이 두 사람의 잇단 폭행으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가슴과 배 안에 피가 고일 만큼 손상을 입어 숨졌다"는 검찰 결론을 받아들였다. 또 이들에게 적용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유죄로 봤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30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고씨와 동거녀 이씨에게 무기징역, 이씨 모친 김모(62)씨에겐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당시 법정에 나온 김명수 전주지검 3부장 검사는 "피고인들은 갑상선 기능 저하증으로 고통조차 못 느끼는 준희를 무참히 짓밟아 죽음에 이르게 했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고 서로의 탓만 하고 있다"며 아동학대치사죄의 최고형을 요청했다.

지난 3월 14일 재판을 마친 뒤 법정을 빠져 나가는 준희양 친부 고모(37)씨. 전주=김준희 기자

취재진을 피해 황급히 법정을 빠져 나가는 고씨 동거녀 이모(36)씨. 전주=김준희 기자
재판을 마친 동거녀 이모(36)씨와 이씨 모친 김모(62)씨가 고개를 숙인 채 법정을 빠져 나가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실제 고씨와 이씨는 재판 내내 상대방에게 준희양의 사망 책임을 떠넘겨 공분을 샀다. 고씨는 "검찰이 (내가) 딸을 밟았다는 그날(지난해 4월 24일~25일)은 딸아이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몸 상태였다. 딸의 등과 옆구리를 짓밟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준희양을 폭행해 숨지게 한 직접적 책임이 동거녀 이씨에게 있다는 취지다.

이씨는 아예 폭행 사실조차 부인했다. 이씨는 "준희에게 단 한 번도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 외려 고씨가 (준희양) 사인이 갈비뼈 골절임을 알게 된 후 그 책임을 내게 전가하기 위해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맞섰다.

하지만 재판부는 "둘 다 아동학대치사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준희양의 갈비뼈 뒤쪽 골절은 국소적인 강한 외력에 의한 것이다. 이 골절로 준희양의 비장 등 복부 장기가 손상돼 복강(배안) 내 출혈 가능성이 있다"는 국과수 부검 결과를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고모(37)씨가 지난 1월 4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준희양 역의 마네킹을 이용해 폭행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고모(37)씨가 지난 1월 4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준희양 역의 마네킹을 이용해 폭행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완주=김준희 기자

당초 이 사건은 자폐증을 앓던 여자아이의 '단순 실종 사고'로 묻힐 뻔했다. 고씨와 이씨가 '완전범죄'를 꿈꾸며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다. 이들은 준희양이 숨진 지난해 4월 26일 오전 이씨 모친 김씨 집으로 가서 "'시신은 매장하고 김씨가 준희양을 양육하다 잠적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꾸미자"고 의논하고 이튿날 실행에 옮겼다.

지난해 7월 22일 준희양 생일에는 미역국과 갈비찜을 만들어 이웃에게 돌리고, 김씨 집에는 생전 준희양이 쓰던 베개와 빗에서 모아둔 머리카락을 뿌려놓았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8일 경찰에 '딸(준희양)이 실종됐다'고 경찰에 허위 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은 준희양이 실종됐다는 시점인 지난해 11월 18일 목격자가 없는 점, 3월 19일 이후 준희양의 병원 진료 내역이 없는 점 등을 토대로 강력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확대했다. 같은 달 28일 친부 고씨의 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이튿날 오전 전북 군산의 한 야산에서 보자기에 싸인 채 미라처럼 변한 준희양의 시신을 수습했다.

고모(37)씨가 지난 1월 4일 전북 군산시 내초동 한 야산에서 진행된 경찰 현장검증에서 준희양 시신을 묻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모(37)씨가 지난 1월 4일 전북 군산시 내초동 한 야산에서 진행된 경찰 현장검증에서 준희양 시신을 묻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한수 전주지검 차장검사는 지난 1월 25일 고씨 등 3명을 재판에 넘기면서 "준희양은 선천성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아 또래보다 발달이 늦을 뿐이지 체중도 다섯 살 여아 수준이고 정상이었다. 피고인들의 주장과 달리 눈이 사시(斜視)이거나 자폐증을 앓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친부와 동거녀의 학대가 없었다면 준희양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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