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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돕는 병원 사람들, 책에서 마음 여는 길 찾아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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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울재활병원 ‘끈나비’ 회원들. 왼쪽부터 송소연·민후경·배지은·이지영·전민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재활병원 ‘끈나비’ 회원들. 왼쪽부터 송소연·민후경·배지은·이지영·전민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93년생 이지영이 말했다. “요즘 내 고민이, 말의 의도가 잘못 전달돼 오해가 생기고 상처받는 경우가 있다는 건데,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골라봤어요.” 그러면서 이기주의 베스트셀러 『말의 품격』을 꺼내 들었다. 이청득심(以聽得心), 말하기보다 열심히 들어줘야 상대의 마음을 얻는다는, 책에서 발견한 공감 가는 대목을 소개하기도 했다.

책 읽는 마을 ⑤ 독서모임 끈나비 #20대 회원 다섯이 돌아가며 리더 #“말하기보다 듣기의 가치 깨달아” #서울재활병원에 15개 모임 활동

92년생 전민희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여러 가지 손대다 보니 정작 결과물이 없고 마무리가 잘되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꼭 필요한 일을 선택해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자기계발서 『신경 끄기의 기술』. 전민희는 “책의 조언에 따라 내 가치관 분석을 위해 마인드맵을 그려 일의 우선순위를 따진 결과, 수원의 부모님을 좀 더 자주 찾아봬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갈현로의 서울재활병원. 병원 내 독서모임 ‘끈나비’ 회원들의 토론 모습이다. 끈나비의 독서활동은 리더가 구심점이 돼 굴러가는 일반적인 독서모임과는 좀 다르다. 정해진 리더가 없다. 5명 회원이 한두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독서모임의 리더를 돌아가며 맡는다. 리더의 취향에 따라 토론 방식이 그때그때 다르다. 이날 토론의 리더는 90년생 배지은. 병원의 인사교육 담당이다. 배지은은 각자의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스스로 정한 다음 책에서 얻은 교훈을 실천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얘기해보자고 지난번 모임에서 제안했다. 소아물리치료사 이지영, 소아작업치료사 전민희가 각각 엉뚱한 책 얘기를 했던 건 그래서다. 93년생 송소연(소아물리치료사)은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를, 신앙 문제로 고민이 많은 92년생 민후경(소아물리치료사)은 『아더 핑크의 구원 신앙』을, 배지은은 책을 세 권이나 들고 왔다. 『다이어트 불변의 법칙』 『오늘 또 일을 미루고 말았다』 『페이버』, 이렇게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다 보니 세 권을 읽게 됐다고 했다.

25~28세. 꿈과 가능성으로 통통 튀기만 해도 모자랄 나이지만 걱정과 고민 또한 누구보다 많은 시기다. 아직까지 직장 생활이 낯설게 느껴지고, 생각이 수시로 흔들린다. 1~10세 장애 아이들을 치료하는 일도 버겁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들의 부모와 ‘라포(rapport·상호 신뢰)’를 형성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끈나비 회원들은 그런 당면한 어려움들을 독서를 통해 조금씩 풀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송소연은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불행한 상태라는 느낌이 2개월 정도 지속됐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곰돌이 푸…』를 구입했다고 했다. ‘모든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첫 번째는 나를 사랑하는 거에요’…. 책이 전하는 행복비결은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런데도 전민희는 ‘가끔은 좋아하는 것에 흠뻑 빠져보라’는 책의 조언에 따라 수영·산책·등산을 열심히 하고, 남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로 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했더니 조금씩 삶이 바뀌는 것 같다고 했다.

끈나비는 서울재활병원 나비 무리의 하나다. 이지선 원장이 2015년 도입한 독서경영의 하나로, 역사·경제 독서모임 ‘역경나비’ 등 모두 15개의 나비 모임에 전체 직원 200명의 절반 이상이 참가하고 있다. 나비는 ‘나로부터 비롯되는 변화’, 끈나비는 끈끈한 나비라는 뜻이다.

병원 이지선 원장은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인간의 고통과 고난, 약함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 방편으로 독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는 얘기다.

끈나비가 생긴 지는 1년 남짓이다. 그 기간 20여 권을 읽었다. 배지은은 “독서토론은 책을 읽기 위한 거지만 결국 사람이 보이더라”라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책읽는 마을’은 제보를 받습니다. 본지 지식팀(02-751-5379) 또는 2018 책의 해 e메일(bookyear2018@gmail.com)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책의 해 행사는 홈페이지(www.book2018.or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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