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게르만 찬가’로 활용된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완, 전세아의 시시콜콜 클래식(5)

체코의 스메타나 현악 4중주단의 내한공연 모습. 두 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현악 4중주는 18세기 말부터 연주된 기악협주곡이다. [중앙포토]

체코의 스메타나 현악 4중주단의 내한공연 모습. 두 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현악 4중주는 18세기 말부터 연주된 기악협주곡이다. [중앙포토]

두 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첼로로 구성된 현악 4중주는 18세기 말부터 연주된 기악 협주곡이다. 제1 바이올린,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되는데 인간의 목소리에 비교하면 각각 소프라노, 테너, 알토, 베이스에 해당하는 악기라고 할 수 있다. 협주의 라틴어 ‘concertare’는 ‘경쟁하다’라는 뜻이지만 솔리스트 연주자 사이에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매력을 표현하는 실내악이다.

현악 4중주는 4개의 악장, 쉽게 말하면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자신감 있고 템포가 빠른 첫 번째 악장, 약간 조심스러우면서 노래하기에 알맞은 두 번째 악장, 적당히 밝고 춤추기에 좋은 세 번째 악장, 빠르거나 심지어 열정적인 네 번째 악장으로 이뤄져 연희, 파티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 순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간 바뀌기도 해서 어떤 작곡가는 세 번째 악장을 없애버리고 다른 악장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네 명의 지식인이 나누는 대화”

현악 2중주, 3중주, 4중주에 피아노가 첨가되면 피아노 3중주, 피아노 4중주, 피아노 5중주가 되기도 한다. 피아노 중주나 오케스트라 심포니가 팀파니 금관악기 등의 참여로 역동적인 음악적 요소를 쉽게 표현할 수 있다면, 현악 4중주는 오롯이 음악의 본질에만 집중해야 하는 큰 어려움이 있어 현악기 연주자의 기량과 실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독일의 문호 괴테는 현악 4중주를 두고 “네 명의 지식인이 나누는 대화”라고 했으며 일본 유명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오자와 세이지는 “한 작곡가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현악 4중주를 이해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현악 4중주는 가장 본질적인 음악을 담고 있는 정교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명의 연주자가 호흡을 맞춰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연주자 간의 관계도 중요하다.

1781년 하이든이 현악 4중주 처음 작곡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년) [사진 wikimedia commons]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년) [사진 wikimedia commons]

현악 4중주의 토대를 제공한 사람으로는 교향곡의 아버지인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년)이 꼽힌다. 현악 4중주라는 명칭은 1781년 하이든이 작곡한 작품 33의 6개 4중주곡에 처음 붙었기 때문이다.

100여 곡의 교향곡과 70여 곡의 현악 4중주곡을 남긴 하이든은 1732년 오스트리아의 동쪽 한 시골 마을 로라우(Rohrau)에서 가난한 마차 수리공 아버지와 귀족 부엌에서 요리하는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누나를 둔 12형제의 장남이었다.

집안 형편 어려웠던 하이든의 부모는 음악에 소질이 있는 아들을 소년합창단에 보낸다. 그는 당시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총애를 받는 빈의 성스테파노 대성당의 소년합창대에 들어가 1749년 변성기 때까지 활동했다.

이후 합창대에서 나와 빈에서 자유롭지만 불안정한 생활을 시작했다.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한 하이든은 생계형 음악가가 되어 귀족들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하이든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작곡, 오케스트라 지휘, 성악가의 개인 지도부터 쳄발로(피아노의 전신인 건반악기)의 조율까지 가리지 않았다. 궁정악장으로도 단원과 사이가 매우 좋았다. 부지런하며 사교적인 그의 성품과 음악적 재능 덕분에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게 됐다.

그는 솔리스트 연주자들과도 친분이 좋았는데 교향곡 외에도 단원을 독주자로 하는 협주곡과 실내 악곡도 많이 썼다. 어린 모차르트는 그를 파파 하이든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그에게 곡을 헌정하기도 했다. 그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일찌감치 인정한 음악가이기도 하고 베토벤이 존경한 인물이었다. 그의 76세 생일 파티의 총 예술감독은 살리에리가 맡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나치를 거쳐 지금도 독일 국가로 쓰여

하이든의 4중주 76번(Haydn 'Emperor' Quartet, Op.76, No.3)은 ‘황제’라 불리는데 이러하다. 그는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공격받는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2세를 위해 ‘신이여 황제를 지켜주소서’라는 가곡을 썼는데 바로 이 곡 2악장의 선율을 주제로 사용한다.

“신이여 프란츠 황제를 지켜주소서.  
 우리의 훌륭한 황제 프란츠를!  
 행복이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영원히 있게 해주소서.  
 빛나는 영예의 관을 씌워 주소서.”  
 -‘황제 찬가’ 중

이 곡은 같은 해 2월 12일, 프란츠 황제의 생일을 기념해 오스트리아 국가로 공식 선포된다. 그래서 이 곡은 ‘황제’라는 이름을 얻어 역사의 현장 곳곳에 등장한다.

2악장 포코 아다지오 칸타빌레(Poco adagio cantabile: 조금 느리고 노래하듯이)가 시작되면 오스트리아의 국가인 ‘황제 찬가’의 선율이 화음을 이루며 위엄 있게 연주된다. 장엄하게 반복하는 첼로의 주선율과 천사들의 축복처럼 들리는 바이올린의 연주 기법은 4중주만으로도 왕실의 위상을 표현한다. 황제의 주제를 변주곡으로 선율의 원래 형태를 유지하되, 여러 번 반복하는 주선율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원무궁한 발전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곡은 독일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나치 정권까지 독일의 번영과 통일 열망을 담은 국가로 채택되어 ‘모든 것 위에 있는 독일’이란 제목으로 불렸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1, 2절은 삭제되고 3절만 지금도 독일 국가로 사용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을 국가로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박완 뮤지컬 배우, 전세아크로스오버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로듀서 cultureqooom@naver.com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