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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경제수석 교체, 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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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청와대 경제수석의 교체는 가끔 경제 정책의 방향 전환이나 출구 전략용으로 쓰였다. 김대중(DJ) 정부 때가 대표적이다. DJ는 정부 출범 3개월도 안 돼 진보성향 학자인 김태동 경제수석을 경질했다. 후임은 정통 관료 강봉균이었다. 그 인사로 모든 것은 아니지만 제법 많은 것이 바뀌었다. 지지부진하던 외환위기 극복 실천 과제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기준금리 인하, 미국과의 협상, 재벌 압박에 유능한 경제 관료들이 손발처럼 움직였다. 잃은 것도 있다. 외환위기의 또 다른 주범이요, 청산 대상으로 꼽혔던 관료 개혁이 물 건너 갔다. 관료는 개혁 대상에서 개혁 주체로 탈바꿈했다. 강봉균은 훗날 “남북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외환위기 조기 졸업을 원했던 DJ가 속도와 실질을 선택한 결과였다”고 돌아봤다.

대외 경제, 갈수록 험난 #거시 항해사 꼭 필요한 때

홍장표 전 수석의 교체도 예사롭지 않다. 정책실장이 따로 있어 과거 정부보다 경제수석의 힘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문재인 청와대지만 홍장표의 존재감은 특별했다. 그가 주창한 소득주도 성장이 문재인 경제 철학의 뿌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홍장표를 관료 출신 윤종원으로 교체한 것만으로 정책의 뿌리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소득주도 성장을 더욱 속도감 있게 실행하기 위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이번 경제수석 교체가 잘된 인사라고 생각한다. 우선 청와대에 거시 경제 정책의 조율자가 생겼다는 점이다. 지금 대외 환경은 최악이다. 미국과 금리가 역전돼 차이가 0.5%포인트로 벌어졌다. 연말쯤엔 1%포인트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1500조원의 가계부채와 맞물려 우리 경제가 심각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발 통상 분쟁은 글로벌 무역 전쟁으로 번질 조짐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엔 이보다 악재가 없다. 이럴 때 국제·거시 경제에 경험 많은 경제수석의 존재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나는 1년 전 출범 때부터 청와대와 경제팀에 ‘거시 경제 항해사가 안 보인다’(2017년 6월 22일자)고 지적했다. 진작 이런 인사를 했더라면 지난 1년 환율·통상·금리 정책의 미흡함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관료 사회에 긍정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관료 패싱(건너뛰기)’과 연결된다. 대통령 스스로 “개혁에는 관료가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18개 부처 장관 중 관료 출신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한 사람뿐이다. 전 정권 때 인사 개입을 이유로 산업통상자원부 국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관료들은 ‘JP(적폐) 지수’란 말까지 만들어가며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다. 이래서야 천하의 문재인 정부인들 일이 될 리 없다. 관료 사회를 다잡는 ‘윤종원 효과’를 기대해 본다.

대신 두 가지를 당부한다. 첫째, 윤종원을 구색 맞추기로 쓰지 말라는 것이다. 청와대엔 가뜩이나 시어머니가 많다. 정책실장부터 일자리·사회·경제 수석에 경제보좌관, 재정기획관까지 층층시하다. 어느 때보다 거시·국제 경제가 중요한 시기다. 윤종원이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간과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둘째, 그럴 리 없겠지만 윤종원을 ‘김동연 패싱’의 도구로 활용해서도 안 된다. 김동연은 이 정부 핵심 정책에 건전한 비판·조정자 역할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장하성과 불화설도 불거졌다. 벌써 세종 관가에선 청와대가 윤종원을 대항마로 내세워 김동연을 건너뛰고 관료 사회를 직접 장악하려 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가뜩이나 만기친람 소리를 듣는 청와대다. 자칫 내각은 복지부동, 청와대 혼자 용을 쓰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손발 없이는 청와대 문턱조차 넘을 수 없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