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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원택의 퍼스펙티브

비서실 중심 국정 운영, 제왕적 대통령 우려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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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 비서실

최근 경제 정책의 주도권을 두고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간에 일어난 미묘한 갈등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의 특성, 나아가 한국 대통령제의 작동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원론적으로 본다면 ‘국무’를 담당하는 국무위원, 곧 각 부서 장관이나 이들을 통괄하는 국무총리가 정책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실질적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청와대 비서실의 영향력이 국무위원들보다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 과거 정권에서도 이른바 ‘실세들’이 청와대 비서실에서 각종 중요 업무를 맡으며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경우가 많았다.

청와대 비서실의 영향력 증대는 #대통령 개인의 지배를 강화해 #제왕적 대통령제 부작용 낳아 #대통령 지지도가 높은 상황에서 #비서실에 힘이 몰리면 #대통령에 기대 모든 걸 하려는 #그릇된 판단 생길 수 있어 #문 대통령, 내각과 집권당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자원 가진 만큼 #국정 운영 방식에 큰 변화 필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비서실의 정치적 영향이 처음부터 컸던 것은 아니다. 1949년 1월 6일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비서관 직제로 만들어진 비서제도의 첫 비서관장은 이기붕이었으며 인원은 7명에 불과했다. 비서관장 아래 정무·공보·서무·문서를 담당하는 비서를 두었다. 내각책임제였던 제2공화국에서는 대통령의 역할 자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비서실의 규모나 역할도 미미했다.

대통령 비서실이 급격하게 확대된 것은 박정희 통치 시절이었다(그래픽 참조). 1961년 말 17명이었던 비서실 규모는 67년에는 137명으로까지 늘어났다. 1968년 이후 그 수는 227명으로 증가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그 규모는 더욱 확대되어 354명으로 비서실 규모가 많이 늘어났다. 그런데 사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는 정원 이외에도 각 부처에서 파견한 공무원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비서실 인원은 이보다 훨씬 더 많았다. 대통령 개인에게 권한이 집중되었던 권위주의 통치기에 청와대 비서실의 규모가 이처럼 대폭 증가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비서실 규모 늘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비서실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노태우 대통령 때는 384명으로 늘었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 375명으로 소폭 줄었지만,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 405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는 531명으로 다시 비서실 규모가 많이 늘어났다. 이후 다소 수가 줄어들어 이명박 대통령 때는 456명, 박근혜 대통령 때는 443명이 되었고, 이 숫자는 대체로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는 인력 증가와 함께 비서실 예산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63년 2500만원 정도였던 비서실 예산은 2018년에는 거의 900억 원 수준으로 증가했다(그래픽 참조). 그 기간 비서실 예산은 3668배 늘어난 것이다. 인원과 예산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사이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과 영향력이 그만큼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 확대는 각종 정책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이끌고 나가겠다고 하는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확대된 비서실, 강한 청와대는 곧 강한 대통령제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청와대 비서실이 강화되는 만큼 내각이나 집권당의 역할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박정희 때 비서실의 규모가 확대되었지만, 처음부터 비서실이 국정을 주도해 갔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각제였던 제2공화국을 무너뜨린 5·16 쿠데타 이후 강력한 대통령제로 헌법이 개정되었다. 하지만 제3공화국 시기 박정희의 국정 운영은 청와대 비서실의 기획,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한 내각의 정책 주도와 집행, 그리고 민주공화당과 내각 간의 긴밀한 당정 협의라고 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당정협의회는 청와대에서 이뤄지는 내각과 당의 최고위급 인사들 간의 회의체로부터 지방 수준에서의 협의체까지 다양한 수준에서 이뤄졌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비서실·내각·집권당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통치 방식이었다.

5년 단임이 비서실에 권력 집중

그러나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을 집중시킨 유신 이후 집권당의 역할은 사실상 사라졌고, 정책 주도와 관련해서도 비서실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유신 이후 형성된 청와대 비서실 중심의 국정 운영 방식은 또 다른 권위주의 체제였던 전두환 정권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계승되었다.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제 역시 이러한 기반 위에서 출발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러한 관행이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차적으로는 김영삼·김대중과 같은 카리스마적 통치자의 집권과 관련이 있다.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였지만 이들 역시 매우 ‘권위적’ 통치자였고 ‘대통령 개인의 지배’로서의 대통령제를 선호했다. 또한 5년 단임 대통령제로 인해 모든 대통령은 5년이라는 짧은 임기 내에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 관료 조직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비서실을 통해 정책을 주도하고 집행해 가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더욱이 5년 단임과 정권 교체의 가능성으로 인해 과거 박정희 시대처럼 관료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대통령의 리더십에 따라올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즉 국회나 언론, 관련 이익단체의 눈치를 보거나 복지부동하는 관료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청와대 비서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관심사와 관련하여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이 효율적이고 요긴한 경우도 있다. 부처 간 상이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비서실이 전반적인 정책의 그림을 그리고 정책을 조정해 갈 필요성이 존재한다. 노태우 대통령 때의 북방정책이나 이명박 대통령 때의 녹색성장 정책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비서실이 일반적인 국무를 모두 다 챙기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제왕적 대통령이 막강 비서실 낳아

미국의 대통령제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의 참모 조직은 대통령 업무지원실(Executive Office of President, EOP)과 백악관 비서실(White House Office, WHO)로 이원화되어 있다. 이 두 가지 조직을 합쳐 ‘대통령부(presidential branch)’라고 한다. 업무지원실(EOP)은 대통령이 여러 행정부처를 조정·통제할 수 있도록 기획·정책·조직 등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백악관 비서실(WHO)은 대통령의 개인적 참모 조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 비서실은 원래 백악관 비서실의 역할로 시작되었고, 미국의 대통령 업무지원실에 해당하는 역할은 한국에서는 국무총리실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참모 조직이었던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과 영향력이 점차 증대되어 오면서, 우리 정치에서 내각과 비서실 사이에 역할 갈등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각종 국정의 주요 이슈에 대해 형식적으로는 총리가 관장하게 되어있지만, 청와대 비서실이 주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매 정부 때마다 책임총리제를 말하고 있지만, 국무총리와 장관의 역할이 애매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청와대 비서실의 영향력 증대는 ‘시스템’으로서의 대통령제라기보다 대통령 개인의 지배를 강화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 제왕적이라고까지 불리는 강력한 한국 대통령제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막강한 비서실의 존재인 셈이다. 최근 『청와대 정부』라는 책을 펴낸 박상훈 박사는 “내각과 집권당을 통할하는 청와대 수석들의 권력은 법률에 근거한 것이 아닐뿐더러 근본적으로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신임에 매달려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임의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폐쇄적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이들의 최대의 관심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를 관리하는 데 모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협하는 집권세력 내부의 불만과 갈등을 차단하는 권력 통제 기능에 전념하게 되는 일도 피하기 어렵다. 이들은 국민을 앞세우고 여론조사에 매달리는 정부 운영을 심화시킨다”며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바 있다.

권력 집중은 오만과 독선 낳아

그래픽에서 보듯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청와대 비서실의 규모가 민주화 이후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는 노 대통령의 통치 방식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이른바 ‘당정 분리’를 정치 개혁으로 받아들였고 통치 과정에서 당시 집권당이던 열린우리당을 배제했다. 그것은 결국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 시기에 비서실의 규모가 많이 늘어난 것은 이러한 통치 방식의 결과였다.

그러나 임기 후반으로 가면 노 대통령은 당정 분리로 인한 통치의 어려움을 매우 격한 어조로 토로한 바 있다. 이는 처음에는 효율적인 것처럼 보여도 오로지 대통령의 판단과 지시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비서실 중심의 폐쇄적인 국정운영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가 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청와대 비서실 중심의 국정 운영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도 이전 정권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문 대통령처럼 지지도가 높고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비서실에 힘이 몰리게 되는 경우, 대통령에 기대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정치적 오만이나 그릇된 판단이 대통령 주변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에게는 비서실 이외에도 내각과 집권당이라고 하는 중요한 정치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집권 중반기를 맞이한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이 변화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