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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기본기가 충실한 프로만이 감동을 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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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월드컵 축구는 4년마다 돌아오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누구를 응원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그러나 수억 명 시청자가 밤잠을 설치며 열광하는 진정한 이유는 꼭 응원하는 팀이 이겨서만은 아니다. 강하고 빠른 공격,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패스, 몸을 날리는 철벽 수비, 종료 직전에 터지는 극적인 골, 경기가 끝난 뒤의 포옹과 눈물까지 TV 모니터 속에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최상의 각본 없는 드라마가 전개된다. 이게 가능한 건 모든 선수가 인생에서 마지막일지 모르는 그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경기장에 쏟아붓기 때문이다. 그동안 익힌 기본기와 전술을 남김없이 집중력 있게 발휘하는 진정한 프로들이다. 그래서 각국 대표팀을 칭하는 멋진 별명이 축구만큼 많은 스포츠도 드물다. 전차 군단, 삼바 축구, 바이킹의 후예, 아트 사커, 빗장 수비, 무적함대, 그리고 태극 전사가 있다. 승패를 떠나서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에 그들은 진정한 프로다.

시장·변수 탓만 … 서로 비슷한 상품 #노인에 공격적 상품 권하는 경우도 #투자 성과 예측과 다르면 반성해야 #고객 자산은 초보의 실험 대상 아냐

달짝지근한 맛으로 손님을 많이 끌었던 요식업계의 유명인이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골목길 상권에서 새로 생긴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분석과 충고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등장하는 음식점은 대체로 규모가 작으며, 청년들이 창업했고, 나름대로 멋진 외관과 인테리어를 갖추고 뭔가 색다른 메뉴를 내놓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두세 번 시청하고 나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불의 세기와 조리 타이밍을 헷갈려 재료를 태우는 주방장, 해산물을 상온에 오래 내놓고는 잊어버린 요리사, 주문도 제때 받지 못하는 종업원, 맛이 이상하다는 데도 색깔이 고우니까 팔겠다고 우기는 주인까지, 한 마디로 기본기의 실종이다. 이쯤 되면 프로인지 여부는 거창한 얘기다. 비위생적이고 맛없는 음식으로 손님을 대하니 이런 곳은 성공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의 소중한 자산을 운용하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프로답지 못한 자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투자 성과가 나쁘면 시장이 자신의 예측과 반대로 움직여서 그렇다고 말하기 일쑤다. 아니면 자신의 투자 대상에 미처 드러나지 않은 위험 요인이 있었다는 변명도 늘어놓는다. 어느 시장에서 경쟁사가 좋은 성과를 올렸다면 너도나도 비슷한 투자 상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산을 맡긴 고객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투자 상품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팔십이 넘은 어르신의 자산을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공격적인 상품에 가입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시장 전망은 자산운용의 기본이다. 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변수를 가늠하는 것도 중요한 기본기다. 21세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투자 수익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예측하려고 한다. 따라서 경험 많은 전문가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예측의 오차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투자 대상에 관한 정보는 과거보다 훨씬 풍부하고 투명하게 시장에 공개되기 때문에 만약 투자 대상의 위험을 간과했다면 그건 운용하는 사람의 주의와 능력 부족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분야인데도 시류에 편승하여 겁 없이 새로운 상품을 출시한다면 남의 히트 상품을 흉내 내어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와 다를 게 없다. 무엇보다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고객의 연령과 현재 재산 상태는 물론, 미래의 자금 수요를 고려해서 투자 상품을 권하는 일이다. 금융 상품 판매의 기본이고 최소한의 직업윤리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 윤리와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남의 자산을 운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투자 성과가 예측과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면 스스로 프로가 맞는지 반성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패자부활전이 없다. 그래서 고객의 자산은 윤리 의식이 빈약하고 기본기가 부족한 아마추어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프로가 뛰는 월드컵에 감동하고, 프로가 만드는 음식을 즐기듯이, 프로가 운용하는 펀드를 기대한다. 국가 대표팀에 ‘전사’, ‘군단’, ‘함대’가 있으니 자산운용업에도 명가, 대가, 귀재라는 별명을 가진 기본기가 충실한 프로가 더욱 많아야 한다.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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