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빵을 만들고 사라진 노병·풍운아 김종필(JP)의 마지막 가는 길은 전날 억수같이 내리던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었다. 김 전 총리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김 전 총리의 위패와 영정, 태극기로 감싼 관이 영결식장 안으로 들어왔다. 김진봉 운정재단 이사장의 김 전 총리의 약력 낭독, 이한동 전 국무총리의 조사,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 아들 나카소네 히로부미의 아버지 조사 대독, 박형규 전 의원의 만사 등이 이어졌다.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 조가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영결식이 끝난 뒤 김 전 총리의 유해는 청구동으로 이동, 부인 박영옥 여사와 함께 살았던 자택으로 갔다. 영구차로 향하는 길에 딸 예리 씨와 아들 진 씨는 하염없이 눈물 흘렸다.
오전 8시 50분쯤 운구차가 청구동 자택에 도착했다. 노제는 10여분가량 진행됐다.
김 전 총리는 웃으며 자택으로 들어섰다.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 전 총리를 찾아와 대선을 도와달라고 했던 1층 응접실은 아직도 김 전 총리의 체온이 남아있었다.
박영옥 여사가 작고한 2015년까지 김 전 총리가 함께 사용했던 2층 침실은 박 여사의 사진들로 가득했다. 살아생전 그는 “나는 사랑하는 아내가 누워 있는 양지바른 고향 땅에 가겠다”고 했다. “한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에게(Once, only once, and for one only)”라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로 프러포즈했다는 김종필과 박영옥의 낭만적 순애보는 널리 알려져 있다.
2층 서재는 평생 애독한 책들이 빼곡했다.
영결식부터 김 전 총리의 마지막 가는 길에 동행했던 전영기 칼럼니스트는 이 사진들을 보내며 ‘JP 청구동의 비밀의 공간, 문은 닫혔다. 더 이상 열릴 일이 없다’고 했다.
서울 추모공원으로 이동한 운구차는 이어 김 전 총리가 졸업한 공주고와 부여초 교정, 고향 부여 시내를 거쳐 부여군 회산면가족 묘원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김 전 총리는 부인 곁에 묻힌다.
전영기 칼럼니스트,조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