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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한국 보수는 재생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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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6·13 지방선거에서의 기록적 패배 이후 보수 재건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선거 결과는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교육감, 국회의원 재·보선 네 수준 모두에서 보수의 참패였다. 대통령 탄핵에 이은 제2의 탄핵에 가까운 응징이었다.

한국의 보수는 냉전·친미·반북 #지역주의·재벌체제가 중심 기반 #보수가 이 패러다임 극복 못하면 #현 집권층의 실패나 쏠림현상만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가 될 뿐

참패의 제일 요인은 한국 보수가 아직도 촛불광장과 대통령 탄핵의 의미와 충격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데 있다. 민주화 이후 최초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초래한 촛불시위는 6월항쟁 이후 최대의 민의 폭발로서 보수 갱생의 절호의 기회였다.

국회의 압도적인 탄핵 통과는 보수정당들의 민의 수용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는 국정 농단과 절연하기 위한 6·29 선언에 버금가는 보수정당의 반성의 결과였다. 그러나 막말·색깔론·파벌투쟁·탄핵부인을 포함해 탄핵 이후 보수정당들의 정치 행태는 즉각 과거 회귀적이었다. 품격의 파탄은 특히 두드러졌다. 금번 선거는 촛불·탄핵·대선패배에도 불구하고 환골탈태하지 못한 데 대한 연속 회초리였다.

선거 시기와 의제도 중요했다. 정부의 주요 정책 실패가 없는 국정 초반인 데다 핵심 의제가 적폐청산·과거처벌·정상회담·평화체제와 같은 비(非)갈등의제여서 대통령·정부·여당의 지지가 매우 높았다. 임기 초의 선거는 정부를 심판하기보다는 기대투표의 성격이 강하다.

끝으로는 역사적 경험이다. 즉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초기에 보수정당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질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데 대한 학습효과로 인해 한번 제대로 된 개혁을 해보라는 민의의 표출이었다. 따라서 이번 선거 결과는 문재인 정부에는 기회인 동시에 큰 부담이다.

한국의 보수는 재생이 가능할까? 물론이다. 민주주의는 진보-보수의 균형 위에서 발전한다. 제도적으로도 현재의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보수와 진보의 순환적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쏠림과 역(逆)쏠림의 주기적 순환을 말한다. 3당 합당 이후 1.5정당체제 도래를 전망하던 담론들을 포함해 보수나 진보의 장기집권을 예상한 진단들은 모두 실패했다. 헌법과 제도요인 때문이다.

박명림칼럼

박명림칼럼

한국은 대통령선거와 의회선거가 모두 불비례성에 기반한 단순다수 대표(승자독식) 선거제도인 데다 워낙 낮은 득표율로 집행부(대통령)와 입법부(여당)를 장악하기에 국정의 안정과 성공을 위해서는 타협·협치·연합이 필수다. 그러나 낮은 득표율-승자독식-높은 여야갈등의 조합으로 누가 집권해도 정책의 효율성과 성취도는 높을 수가 없다. 게다가 임기 후반에는 모든 여당이 반드시 ‘대통령당’[현재권력]에서 ‘후보당’[미래권력]으로 급변해 대통령은 의회 기반을 상실한다. 입법 지원 없는 정책 성공은 불가능하다. 진보·보수를 넘어 헌정체제가 제공해 주는, ‘낮은 득표-승자독식-높은 갈등-낮은 정책수행-야당 재생’의 조합이다.

그러나 제도가 곧 재생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한국 보수는 냉전·친미·반북·지역주의·재벌체제가 중심 기반이었다. 민주화 한 세대를 지난 이제는 민주보수·평화보수·평등보수·통합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특히 반북과 종북, 친미와 반미의 냉전적 이분법에서 벗어나라. 평화공존 노선을 종북·반미로 공격해 국내 정치적 이익을 얻던 색깔론과 흑백논리의 시대는 지났다. 2030세대에서 보듯 세습·북핵·독재·인권억압을 비판하면서도 비핵평화·남북공존·교류협력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악화된 세계 최고 수준의 양극화·비정규화·불평등화 사회에서 공공성과 평등의 제고에 대한 대안 제시는 필수다. 보수의 토대를 놓은 이승만의 사회민주적 헌법 조항과 토지개혁, 박정희의 빈곤퇴치와 평등교육 정책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평등은 원래 초기 한국 보수의 중심 가치였다. 최악의 불평등국가에서 보수는 기득세력 위주의 정책을 넘어 자유와 평등, 성장과 복지의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지역주의 탈피 역시 긴요하다. 보수는 지역주의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금번 선거는 역(逆)3당합당 선거였다. 호남 고립을 초래한 3당합당 이후 민주화 30년 만에 대구·경북(TK)이 고립되는 정반대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탈지역주의는 노무현 당선 이후 계속 강화된 보편적 현상이었다. 지역주의는 이제 한국 정치의 핵심 결정요인이 아니다. 정상적 민의 반영은 물론 보수 생존을 위해서라도 지역주의와 절연해야 한다. 선거제도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전면 혁신해야 하는 이유다.

만약 보수가 냉전 이데올로기·지역주의·기득 패러다임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조기 재생은 쉽지 않고, 다만 정부 실패와 쏠림현상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