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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도 차를 세울 곳 없다니”…주차장 확보율 130%라면서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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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성동구의 원룸에 사는 직장인 윤정근(28)씨는 최근 고향인 대전에 차를 두고 왔다. 매일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주차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26세대가 원룸에 살고 있지만 주차 공간은 4곳뿐이다. 건물주에게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면 지정 주차가 가능하지만 그것도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다.

#2. 개인택시 기사인 이재윤(54)씨는 퇴근 후 집이 아닌 주유소에 주차한다. 서울 은평구의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LPG 충전소다. 집 근처 골목에 주차가 여의치 않자 10년간 단골이었던 충전소 사장에게 읍소해 얻어낸 소중한 공간이다. 이씨는 “너무 피곤할 땐 택시기사인 내가 택시를 타고 집에 갈 때도 있다”며 웃었다.

#3. 서울 광진구의 한 공영주차장은 유료 월 정기주차를 신청하면 “배정에 4년 정도 걸릴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위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근처 다른 공영주차장들도 배정에 최소 6개월 이상 걸릴 정도로 좀처럼 빈 자리가 나지 않는다. 여의도공원에 있는 한 공영주차장은 2014년에 월 정기주차를 신청한 ‘1번 대기자’가 아직도 배정을 받지 못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주택가. [뉴스1]

서울 종로구의 한 주택가. [뉴스1]

약 1000만명이 사는 도시, 서울의 ‘주차 전쟁’은 시민들에게 흔한 풍경이 됐다. 서울시의 주차장 확보율은 130.1%(지난해 12월 기준)다. 차가 100대라면 주차장은 130면이 있다는 얘기다. 모든 구가 100%를 넘는다. 그래도 항상 주차난이 일어나는 이유는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시 25개 구 중 9개,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 100% 미만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시의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은 101.9%다. 주택가 주차장은 아파트 등 주택의 건축물 부설주차장과 노상·노외주차장을 말한다. 25개 자치구 중 9개의 구는 100%가 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구는 중구(78.8%)이고, 영등포구(80.6%)·금천구(82.7%)·종로구(82.7%)가 뒤를 이었다.

서울시의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 [자료 서울시]

서울시의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 [자료 서울시]

이렇게 사무용 빌딩 등 야간에 사실상 주차장 기능을 할 수 없는 곳들을 제외하면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시민들은 집 앞 골목이나 도로에 상시적인 불법 주차를 하는 경우도 많다. 금천구의 주차관리과 관계자는 “주택밀집지역은 사실상 주차 단속을 하지 못하고 있다. 주차장이 부족해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차를 세우는 상황인 것을 알기 때문”이라며 “어떤 주민들은 ‘차를 샀는데 주차할 공간이 없으니 해결해달라’고 무작정 민원 전화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근 나대지를 매입해 주차장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구 차원에서 지속해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천구는 초·중·고등학교나 교회, 웨딩홀 등과 야간에 주차장을 개방하는 계약을 맺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주차장법 강화하고 일본식 차고지 증명제 고민해야”

현재 건축 공사 중인 금천구 독산동의 한 건물은 40세대 규모지만, 주차장은 기계식 주차장 7면이 전부다. 건축주가 관련 주차장법에 따른 최소 면수만 마련했기 때문이다. 구청 관계자는 “주택 공급을 우선시하면서 그동안 주차장 마련 기준을 몇 번 완화하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이제는 주차장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물 성격에 따라 면적당 주차면 수를 정하는 방식도 사용되고 있는데 무조건 가구당 일정 주차면 수를 만들어야 하는 방식이 필수인 시대가 왔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주차계획팀 관계자는 “차를 살 때 주차장을 마련해 놨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일본식 차고지 증명제 도입도 고려해봐야 한다"며 "서울시가 주차장 확보를 위해 하는 거주자우선주차제와 부설주차장 공유사업 등도 차고지 증명제가 정착되기 위한 중간 단계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송우영·김현수·정용환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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