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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가마 탄 성춘향, 활 쏘는 이순신…VR 신세계

중앙일보

입력

시민들이 춘향전을 각색한 '성춘향 VR'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시민들이 춘향전을 각색한 '성춘향 VR'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VR 게임 메카…역사·스토리 있는 '가상 현실' 

"방자가 춘향이를 가마에 태우고 변 사또를 피해 도망가는 장면입니다."

전라북도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가보니 #VR·AR·인공지능 ICT 기업 21개 입주

지난 20일 전북 전주시 만성동 '전라북도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1층 콘텐트 테스트베드 존에서 박정호(38) ICT 사업팀장이 '성춘향 VR'을 시연했다. 박 팀장은 "4D(4차원) 시뮬레이터에서는 바람도 나오고, 이용자가 실제 가마를 끄는 느낌을 받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춘향전을 각색한 이 VR(가상현실) 게임은 남원 광한루에도 들어가 있다"고 덧붙였다.

콘텐트 테스트베드 존은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에 입주한 기업들이 만든 VR 게임들을 전시하고, 일반인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머리에 쓰고, 컨트롤러(조종 장치)를 손으로 작동하면 누구나 과거로 돌아가 최무선이 돼 화약을 만들고, 이순신 장군처럼 활을 쏠 수 있다. 콘텐트 테스트베드 존은 아직 비공개지만, 다음 달부터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할 예정이다.

한 남자아이가 청자 만드는 VR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한 남자아이가 청자 만드는 VR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작지만 강하다' 전북 문화 산업  

전북 지역 문화 산업은 작지만 강하다. 이 분야 사업체수·종사자수·매출액은 전국 중하위권이지만, 아이디어·기술력은 대기업에 밀리지 않는다. 한 해 1000만 명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 등 특색 있는 관광지와 풍부한 문화유산도 장점이다. 기업으로선 사업의 잠재성을 가늠해 보거나 실험적인 콘텐트를 만들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갖춘 셈이다.

전북도는 이런 지역의 문화자원과 게임·음악·출판 등을 접목해 문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16년 1월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을 출범시켰다. 진흥원은 문체부 공모로 선정된 지역거점형 콘텐츠기업육성센터 및 글로벌게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전북도는 국비 48억원 등 총 123억원을 들여 전주시 만성동(1695㎡)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전북콘텐츠기업육성센터를 완공했다. 진흥원은 센터가 문을 연 지난 4월 12일 만성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콘텐트 전시관 및 창작소, 다목적 스튜디오 등으로 구성된 진흥원에는 VR·AR(증강현실)·AI(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 주로 ICT 분야에 속하는 기업 21개가 둥지를 틀었다. 60%가량이 전북 출신이 운영하는 토종 기업이다. 나머지 40%가 외부에서 왔다. 직원은 업체당 5명~30명으로 전체 직원은 200여 명에 달한다.

최훈 ICT 융합본부장이 콘텐트 전시관에서 VR 게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최훈 ICT 융합본부장이 콘텐트 전시관에서 VR 게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콘텐트의 보고(寶庫)…기업이 몰린다

알짜배기 기업도 적지 않다. 올해 초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에 지사를 낸 '예쉬컴퍼니'는 전국에 120여 개 VR존 매장(오프라인 테마파크 매장)을 둔 회사다. 지난해 12월에는 진흥원과 VR 유통과 관련한 MOU를 맺었다. 전국 300여 개 PC방에 VR 게임을 유통하는 'TBK'(테크노 블러드 코리아)도 지난해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에 지사를 냈다. 박 팀장은 "예쉬컴퍼니의 경우 호남권·충청권·경북권까지 전북지사를 중심으로 영업 관리를 한다. 직원들 월급 수준도 서울과 똑같다"고 귀띔했다.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이 각 지역 문화유산을 VR이나 AR·홀로그램 등으로 구현한 '1시·군 1 사업'도 인기를 끌고 있다. 부안 청자박물관에 있는 VR 콘텐트는 청자를 만드는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에선 전통장류 발효 과정을 VR로 재현했다. 박 팀장은 "자녀가 '게임을 한다'고 하면 부모들은 '게임 중독에 걸린다'고 말리지만 VR을 교육용으로 활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현실에서는 과거를 못 가지만, VR로 1시간만 체험하면 역사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모아지오'가 만든 전신을 활용한 VR 격투기 게임.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모아지오'가 만든 전신을 활용한 VR 격투기 게임.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KT 관계자 "VR 제작물 퀄리티 최고"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은 전북에서 제일 최신식 시설을 갖췄지만, 임대료는 주변 시세보다 싸다. 기업 입주 공간은 10평(33㎡)~40평인데, 월세는 1㎡당 2000원이다. 보증금(3개월 치)은 40평 기준 약 100만원이다. 이곳에 입주하면 국가 공모 사업에 대한 정보도 빠르게 알 수 있고, 가산점도 받을 수 있다. 진흥원은 창업 지원에 그치지 않고 수요처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콘텐트에 목마른 대기업과 지자체를 입주 기업과 맺어주는 역할이다.

지난 4월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을 방문한 KT 관계자들은 VR 게임 개발업체 '모아지오'의 VR 기술과 그래픽 수준을 보고 "지금까지 나온 VR 제작물 중 퀄리티가 최고"라고 했다. VR존 구축 사업을 하는 KT는 VR존에 들어갈 콘텐트를 찾기 위해 진흥원을 찾았다고 한다. 최훈(43)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ICT융합본부장은 "대기업들이 전북을 찾는 것은 그만큼 전북이 VR 개발 속도가 빠르고 퀄리티가 높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전북은 이미 3~4년 전부터 온라인·모바일 게임을 만들던 회사들이 VR 게임으로 업종을 바꿔 다른 지역보다 기술 수준이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4월 12일 전북콘텐츠기업육성센터 개소식에서 송하진(오른쪽) 전북도지사와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가 VR 게임을 체험해 보고 있다.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지난 4월 12일 전북콘텐츠기업육성센터 개소식에서 송하진(오른쪽) 전북도지사와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가 VR 게임을 체험해 보고 있다.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잘 만든 디지털 콘텐트, 일자리·관광객 늘린다  

전북 지역 VR 산업은 전통문화를 소재로 하고, 스토리가 강한 게 특징이다. 최훈 본부장은 "잘 만든 VR 콘텐트는 전북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며 "전통문화와 관광자원을 활용한 사업과 연계하면 관광객과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VR 게임 시장에서 '멀미왕'으로 불리는 장진기(38) VR 크리에이터는 "전북은 전통 문화유산을 활용한 VR을 국내에서 제일 많이 만드는 곳으로 앞으로 활용할 분야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북은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에 이어 지난달 한국GM 군산공장마저 문을 닫자 '패닉'에 빠졌다. 전북도는 산업 구조 재편에 나섰다. 전북 주요 기업들이 대기업의 분공장(branch plant) 형태여서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는 판단에서다. 대기업과 제조업에 의존한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신산업을 발굴하고, 작지만 강한 기업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은 VR 등을 기반으로 한 문화 산업을 전북 경제를 이끌 신산업으로 보고 있다.

아이들이 아동용 '도띠잠뜰 VR'을 하고 있다.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레이스룸 VR 시연 모습.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스크린양궁 VR 시연 모습.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승마 MR(혼합 현실·Mixed Reality) 시연 모습.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이경범 모아지오 대표 "4차 산업혁명은 콘텐트 싸움"

이미 대기업과 해외 바이어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기업도 늘고 있다. '모아지오'가 대표적이다. 성춘향 VR을 만든 모아지오는 세계 최초로 전신을 활용한 VR 격투기 게임을 개발했다. 손만 쓰는 일반 VR과 달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쓴다. 지난해 무주 세계태권도대회 때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이경범(45) 모아지오 대표는 "VR은 체험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도구"라며 "피아노에 VR과 인공지능을 집어넣으면 방과 후 수업 시간에 모차르트에게 피아노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선 일반적인 테마파크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과학·국방 등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 장애인인 주인공이 아바타 세상에 들어가서 전쟁도 하고, 사랑도 한다. 이런 메커니즘이 5년 후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경범(오른쪽) 모아지오 대표가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회의하는 모습.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이경범(오른쪽) 모아지오 대표가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회의하는 모습. [사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그는 "4차 산업혁명은 결국 콘텐트 싸움"이라며 "전북의 풍부한 문화자원을 디지털로 체험할 수 있게 만들면 문화 산업과 관광 산업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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