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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으로 배운 수채화 … 역사를 담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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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건배 화가가 지난 22일 인천 중구 율목동의 작업실에서 현재 그리고 있는 수호지 일러스트레이션북 그림 컷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인천 출신인 그는 인천 차이나타운에 삼국지 벽화를 그렸다. [임명수 기자]

김건배 화가가 지난 22일 인천 중구 율목동의 작업실에서 현재 그리고 있는 수호지 일러스트레이션북 그림 컷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인천 출신인 그는 인천 차이나타운에 삼국지 벽화를 그렸다. [임명수 기자]

지난 22일 오후 찾은 인천시 중구 율목동의 한 빌라. 전용면적 49㎡ 규모인 빌라엔 방이 3개 있다. 큰방에는 200여 점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 나머지 두 개의 방엔 물감, 화구, 액자들이 있었다. 그림 그리는 방이다. 화실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남성이 책상 위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김건배(71) 화가다. 5년여 전부터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차이나타운 벽화 그린 김건배 화가 #‘삼국지’‘수호지’ 이어 한국사 다룰 것 #88올림픽·63빌딩 기념 달력 제작도

그가 그리던 그림은 중국 역사소설 『수호지』였다. “만화를 그리시느냐”는 물음에 그는 “만화 같지만, 만화는 아니다”며 “수채화로 그린 역사화,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 북’”이라고 했다. 수채화로 만화와 같은 책을 만드는 것은 국내에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그가 수호지를 그리게 된 것은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에서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길목(150m 구간)에 그려진 중국 역사소설 『삼국지』 벽화와 인연이 있다. 김씨는 “2004년 후배의 제안을 받아 1년 넘게 제작했는데 이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호지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간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개인전을 열었다”고 했다.

물론 그가 국내에서 활동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화가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더 알려졌다. 1980~90년대 주로 활동했다. 88올림픽 캘린더 그림, 63빌딩 준공기념 캘린더 그림(1991년) 등이 그의 작품이다. 당시 국내 대기업 광고에 쓰인 그림도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쳤다. 최근 작품 중 하나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걸린 13컷의 병원 역사화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역사를 담은 역사화 중 한 장면. [사진 김건배 화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역사를 담은 역사화 중 한 장면. [사진 김건배 화가]

김씨는 국내보다 미국에서 더 알려져 있다. 수채화가로서다. 95년 미국에 정착한 그는 수채화를 주로 그렸다. 여행차 갔다가 정착하게 됐다. 김씨는 “미국인들은 유화(油畵)는 곧잘 그렸지만 수채화는 못 그렸다”며 “나를 어필 할 수 있으려면 수채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개인전시를 갖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미국의 아트페스티벌에서 수채화 대상을 비롯해 17회에 걸쳐 상을 받았다. 인체의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지역 TV에도 출연했다.

그는 “그림은 수학”이라고 했다. 김씨는 “서양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따라 그려봤는데 아무리 그려봐도 그들의 색을 따라 할 수 없었다”며 “그들은 어떻게 색을 냈을까 고민하며 4년을 연습해 나만의 방법을 만들어 냈다”고 했다. 그가 만든 방법은 물감을 섞는 게 아닌 색을 차곡차곡 발라 겹치는 과정을 통해 색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는 “덧칠 횟수, 어떤 색을 더 강하게 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그림이 된다”며 “또 사물과 여백의 비율, 어떤 색을 얼마나 쓸 것인지 등 수학적 계산에 기초해서 작업했을 때 좋은 그림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47년 인천에서 3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할머니가 말을 그려보라고 한 것이 그림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할머니는 처음 1년간 말만 그리게 시켰다고 한다.  그는 “할머니의 혹독한 훈련(?) 덕분에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이 생겼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독학으로 화가가 됐다.

김씨는 자신을 ‘화쟁이’라고 불렀다. 그는 “화쟁이가 그림 그리면서 살아야지”라며 남은 삶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수호지 북을 마무리 짓고 난 뒤 우리나라 역사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아직 기획 단계고 역사학자들과 어떻게 할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정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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