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인 겸 목사 귀농 10년 깨달음 "잡초가 참 귀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환영의 책과 사람] (15)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 고진하

문인, 학자, 한 아내의 남편인 저자는…
넋 나간 듯 한 곳만 바라보는 사람

부부가 함께 잡초연구에 매진
아내와 한 방향 보며 사는 게 즐거워

주변 분들에게 구호처럼 전하는 메시지
흔한 것들 귀히 여기고 또 ‘낭비’하자

자본주의가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들  
귀하게 여길 때 우리 삶이 풍요로워져

고진하 저자는 목사, 문인, 학자, 강연자, ‘권포근 잡초요리연구가의 남편’으로 살아간다. 그는 ‘물끄러미’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물끄러미’는 “우두커니 한 곳만 바라보는 모양”이다. ‘우두커니’는 또 뭘까. ‘우두커니’는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한자리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저자가 귀농∙귀촌 생활 시작한 지 벌써 10여년…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는 10여년 ‘물끄러미∙우두커니’ 생활 양식의 기록이다.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 고진하 지음, 마음의숲

책 속 이런 내용이 눈을 사로잡는다.

- “나는 내가 속한 종교에서도 자유롭고 싶은 사람이다.”
- “사실 그때까지 난 비단옷이나 비단이불도 구경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가난했다.”
- “저 엄혹한 독재 시절 나는 정부가 불온시하던 시집이나 철학서를 몰래 빌려다 필사했다.”
- “창조주에게는 매 순간이 태초이다. 이런 자각이 있다면 우리는 자기 삶의 순간마다 태초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잡초 이야기가 책에 많이 나온다. 이런 말도 나온다. “본래 잡초가 다른 식물들보다 강한 건 아니다. 잡초는 약한 실물이다. 약함에도 불구하고 잡초가 건재할 수 있는 까닭은 자기보다 더 강한 식물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때문이다.”

고진하 시인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를 요약하고 편집한 결과.

- ‘직업’이 여러 개다.  
“제 이름 뒤에 붙는 호칭이 여러 개 있는데, 시인으로 불리는 게 제일 좋다. 시만으로는 생계가 안 되니까 산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좀 많이 썼다. 잡초요리를 연구하는 아내와 오염된 먹거리의 대안으로 잡초연구에 같이 매진하고 있다. 아내와 한 방향 바라보며 살아가는 게 굉장히 즐겁다.”

- “잡초를 인류 미래 식량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우리는…”이라는 내용이 책에 있다. 독버섯이 있듯이 독성이 있는 잡초가 있는 게 아닌가?
“모든 풀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약간의 독성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나는 잡초들은 몇 종류 제외하면 대체로 독이 없다. 식용으로 적합한 20~30종류만 알아도 오늘날 맛과 영양이 떨어진 채소를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 꽃잎을 따서 화전(花煎)을 부쳐 먹을 수도 있다고 책에 나오는데 꽃도 거의 독성이 없는가?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많이 해오던 것이다. 예컨대 진달래는 참꽃, 즉 ‘먹는 꽃’이다. 저희 경우는 진달래뿐만 아니라 토끼풀꽃이나 제비꽃을 화전으로 만들어 먹는다. 진달래 필 무렵에 나는 꽃들은 거의 독성이 없다. 물론 더러 있는 것도 있지만, 화전 놀이하면 정겹다. 그야말로 도시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산골에서 누릴 수 있다.”

- 일반 슈퍼마켓 같은 데 안 가고 자급자족이 가능한가?  
“가끔은 간다. 채소 중에 홍당무 같은 게 필요하면 사러 간다. 먹을 수 있는 잡초가 40~50종 정도 되니까 채소 대신 먹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늘날 마트에 나오는 대부분의 채소는 비닐하우스 등에서 속성으로 대량 생산된다. 영양가가 자연에서 햇볕과 비와 바람을 제대로 맞으면서 자라는 식물하고는 천양지차다. 척박한 땅에서 나는 식물이라야 ‘피토케미컬’이라는 식물성 화학물질을 많이 함유한다. 피토케미컬은 항산화 작용, 노화 예방을 한다. 면역력을 증가시키고 항암 작용을 한다. 잡초를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먹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저희가 연구하고 책도 내고 그랬다.”

- 책에 보니까 무릎에 좋은 잡초도 있는데 상품화됐는가?
“이미 상품화된 것도 있다. 무릎에 좋은 우슬초, 오메가3가 많은 쇠비름… 이런 것들은 이미 상품화됐다. 집 주변에도 많이 나는데도 사람들이 먹으려고는 안 한다. 문제는 잡초요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쇠비름은 오메가3가 가장 많은 식물인데 특유의 풀 비린내가 난다. 잘못 요리해 놓으면 먹을 수 없다.”

고진하 시인

고진하 시인

- 책 제목이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인데 어떤 게 불편한가?
“불편도 익숙해지면, 불편하지 않다. 어느 날 어떤 분이 오셔서 ‘이 집 되게 불편해, 어떻게 살아?’라고 물었다. 그래서 사는 집에 ‘불편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불편도 즐기고 불행도 즐기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자는 뜻에서 붙인 당호다.”

- 책에 나오는 삶은 힐링이나 유행이 좀 지났지만, 웰빙과 관계되는 것 같다. 책이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어느 정도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일반 독자들이나 도시민들에겐 ‘아 이렇게 멋있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도 언젠가는 귀농∙귀촌해야지’하는 막연한 동경이나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
“제가 잡초를 먹고, 잡초와 친해지고, 잡초를 연구하면서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잡초처럼 흔한 것이 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생태환경이 점점 나빠지면서 옛날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공기를 의식하며 살게 됐다. 흔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삶을 살다 보니까 이렇게 온 것이다.
제가 추구하는 삶은 단지 ‘잘 먹고 잘살자’는 그런 일반에 회자하는 웰빙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조금 더 불편해지고, 조금 더 정말 이 흔한 것들을 ‘낭비’하자는 것이다.
저는 ‘시와 꽃과 예술과 하느님을 낭비하자’라는 말을 주변 분들에게 구호처럼 이야기한다. 잡초 같은 것들은 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실은 굉장히 귀한 것들이다. 먹거리일 뿐만 아니라 몸에 건강을 가져다주는 약성도 대단하다.
공기며 햇빛이며, 대자연이 우리에게 공짜로 거저 주는 이 선물을 우리가 정말 고마워하면서, 정말 아끼고 귀하게 여겨야 되겠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계는 비싼 것만 귀하게 여긴다. 값없는 것을 귀하게 여길 때 우리의 삶이 더 아름다워지고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게 아닌가?”

- 농촌이 아니라 대도시에 사시는 분들은 어떻게 해야 싼 것을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시골이든 도시든 마음가짐 문제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아주 흔한 것들… 이를테면 대자연뿐만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표현하면 우습지만, 제가 남자니까 제 아내… 평소에 생각하면 얼마나 흔해빠졌는가? 하지만 ‘흔한’ 아내 혹은 가족, 남편, 곁에 있는 사람… 너무 흔해서 마치 없는 것으로 때로 여기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람과 사물을 귀하게 여기자는 것이다. 보물을 우리가 멀리서 찾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서 찾자는 것이다. 귀한 것은 흔한 것이기도 하다.”

- 유럽과 미국은 포스트크리스천, 탈기독교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나 성당 또한 너무 흔해서 귀한 것을 모르는 것인가?  
“맥락이 좀 다른 것 같다. (웃음) 서양의 탈기독교 현상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한국 기독교도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지금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기독교가 그런 현상을 두려워한다면,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 본질은 예수의 정신이다. 사랑과 희생의 정신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기독교 최대의 적은 역시 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 교회 자체가 너무 자본주의화 됐다. 자본주의화 된다고 하는 것은 예수의 정신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멀어지는 현상이 지속하면 서양처럼 탈기독교화 되지 않겠나.”

고진하 시인

고진하 시인

- 신(神)에 대해, 볼테르는 “신이 없다면,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무정부주의자 바쿠닌은 “만약 신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신을 없애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저는 서양 철학이나 신학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신 개념보다는, 오히려 동양의 성자들이나 그런 사람들이 이야기한 신 개념에 더 가까이 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에게 신이라는 존재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의 뿌리, 존재의 뿌리’다. 제가 좋아하는 동학의 2대 교조 해월 최시형 선생(1827~1898)은 ‘천지 만물 가운데 천주를 모시지 않은 존재가 없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생태적 사유에도 맞아떨어진다.”

- 책에 신(神)을 하느님으로 표기했는데…  
“출판사의 요청도 있고… 사실은 ‘하느님이냐 하나님이냐’… 아직도 그런 구분을 하면서 그걸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참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을 자꾸 어떤 이름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웃기는 게 아닌가? 그런 개념이나 이름, 이런 표피적인 인식을 우리가 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 마지막 한 말씀…
“제가 그동안 이런저런 책을 썼지만, 이 책은 저 스스로 애정이 간다. 한 10여년 제가 아내와 더불어 한 방향으로 살았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가 시골에 들어가 살면서 되도록 단순하고 간단하고 소박한 이런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런 삶을 추구할 때 우리의 살림살이가 더 아름답고 풍요로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삶의 방향을 제가 이 책을 통해서 표현하려고 했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관련기사
〈김환영의 책과 사람〉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