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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맹신은 위험 … 박원순 IQ도 101·91·116 들쭉날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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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호 03면

[SPECIAL REPORT] 흔들리는 IQ 시대

서울 목동에 사는 30대 주부 김혜영씨는 아들 생각만 하면 늘 아찔하다고 했다. 2년 전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의 IQ 검사를 해보니 95가 나왔다. 김씨는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들이 학교에서 ‘IQ 두 자리’라고 놀렸고, 아이가 한동안 주눅 들어 지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해 우연히 또다시 검사했더니 120이 나왔다. 김씨는 “검사 당일 컨디션이나 문항에 따라 얼마든지 편차가 있다더라. IQ 지수만 믿고 절망했던 나 자신이 한심했다. 지금은 아이도 매우 활달해지고 자신감도 커졌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IQ 95 나온 초등생, 1년 뒤엔 120 #주눅 들거나 자만할 필요 없어 #“IQ 높아야 공부도 잘해”도 편견 #아이에 ‘딱지 붙이기’ 부작용 여전 #잠재력 어떻게 키우느냐가 중요 #지적장애·수학영재 판별엔 유용

여고 1학년인 이모(16)양은 3년 전인 중1 때 IQ 검사에서 90을 받았다. 평소 말주변이 없어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없던 터였다. 말도 잘 못하는데 IQ도 낮게 나오자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됐다. 학교 성적이 안 좋아도 IQ가 나빠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지난해 다른 지능 검사를 해보니 오히려 인간친화적 능력이 높게 나왔다. 그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어휘력이 좀 부족해도 당당하게 내 생각을 표현하면서 교우 관계도 한층 좋아졌다”고 말했다. 앞으로 진로도 다른 사람을 상담하거나 돌보는 일을 하는 쪽으로 잡았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IQ=인간 지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의 수치로 나타나는 IQ 지수가 인간의 지능을 가장 정확히 대변한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는 오해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게 학계의 일치된 정설이다. 이미 과학적으로도 오래전에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IQ에 대한 맹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교육 전문가들도 “이 같은 잘못된 편견이 오히려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과 발달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외 학계에서도 IQ 지수가 근본적 결함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발표돼 왔다. 런던 사이언스뮤지엄의 로저 하이필드 박사 연구팀은 2012년 전 세계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12가지 지능 테스트를 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 결과 단순히 수리나 언어 능력뿐 아니라 각자 독특한 능력을 가진 여러 요소가 모여 인간의 지능을 구성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인간의 지능은 IQ 테스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IQ 지수가 낮게 나온 사람도 다른 방면에서는 얼마든지 천재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게 통계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연구팀은 “인간의 뇌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다고 하면서도 단순히 IQ 테스트만으로 뇌 기능을 측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모순”이라며 “인간의 지능을 수치화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시도”라고 경고했다.

또한 IQ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환경에도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류숙희 다중지능연구소 연구이사는 “IQ 테스트도 종류에 따라 수리력과 기억력, 학습능력 등 검사 대상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아는 게 많이 나오면 120이 나오고 운이 나쁘면 90이 나와 평생 머리 나쁜 아이로 낙인찍히게 된다”며 “하지만 창의성이나 문제 해결력 등은 IQ 지수와 관계가 없으며 한마디로 IQ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스티브 잡스의 창조적 능력이나 박지성의 축구 능력은 시중에 나와 있는 IQ 검사도구로 측정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IQ가 초등학생 때 101, 중학생 때 91, 고등학생 때 116으로 각각 달랐다는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선 학교도 IQ 테스트를 중단한 지 오래다. 1980년대까지는 일부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시행됐지만 90년대 이후로는 적성검사나 진로검사로 대체된 상태다.

안광복 중동고 교사는 “IQ 테스트의 평가 항목이 창조력·감성·적응력 등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과는 맞지 않다 보니 IQ 지수에 대한 신뢰도 낮고 교사들도 거의 참고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당초 취지와 맞다는 점에서 지적장애아나 수학 영재 여부를 판별하는 데는 여전히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일부 학부모들의 과도한 기대가 IQ 지수에 대한 맹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IQ 검사가 극히 일부의 수학 영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반 학생들의 지능을 평가하는 데는 별 소용이 없음에도 ‘우리 아이는 영재이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사설 영재교육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고 그러다 보니 IQ 검사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실정이다.

이는 IQ 지수에 따라 아이를 재단해 버리는 이른바 ‘딱지 붙이기 효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적잖은 부작용을 노출하고 있다. ‘IQ가 높으면 똑똑하고 낮으면 머리가 나쁘다’는 잘못된 편견을 갖고 IQ가 낮은 아이를 대할 경우 교육적으로도 나쁜 영향을 주기 십상이다. 류 이사는 “아이가 낮은 IQ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낄 경우 자존감 상실이나 학습 의욕 저하, 심하면 일탈 행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자아 정체성이 확립되는 청소년기에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잠재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대로 IQ가 기대보다 높게 나올 경우 자만심에 빠져 노력을 게을리하는 아이도 적잖다고 한다.

IQ 검사 자체의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사설기관이 시행하는 IQ 검사 중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같은 검사지를 사용하는 경우도 발견됐다. 몇몇 인터넷 IQ 검사는 성인용과 청소년용 검사 문항이 똑같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지숙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일회성 검사 수치가 평생 자신의 능력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된 편견일 뿐”이라며 “각자의 잠재된 능력을 어떻게 발현시키느냐가 중요해진 시대에 IQ 지수만으로 아이를 규정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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