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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헌법의 ‘동물권’과 보편적 인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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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학기 수업에서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읽히고 100명이 넘는 수강생들로부터 논평을 받았다. 이후 한반도 화해 국면과 지방선거 등을 부산하게 겪은 탓인지 대통령 개헌안 제출이 불과 석 달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은 믿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당시 학생들의 열의는 매우 뜨거웠다.

헌법 개정안에 든 동물 보호 조항 #이 조항은 동물에 대한 것을 넘어 #공동체로서 우리가 공감해야 할 #고통의 범위를 묻는 것일 수 있다 #헌법은 때론 현실이 가지 않은 길 #밝혀줄 때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학생들은 다양한 주제들, 정부 형태에서 시작해서 지방분권·기본권·토지공개념, 그리고 선거연령에 이르기까지 언론에서 익히 다루었던 매우 다양한 토픽들에 대해 열심히 뭔가를 써서 제출했다. 그러나 정작 내 눈에 띈 것은 개정안에 포함돼 있던 ‘동물권’ 조항에 관해 쓴 J양의 글이었다. 더 ‘중요한’ 문제들에 묻혀 개정안에 그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또 너무나 사소하면서 동시에 래디컬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안되었던 헌법 개정안은 명시적으로 “국가는 동물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제37조 3항)”고 선언하고 있다. 오늘 이 지면에, 이미 국회에서 표결되지도 못한 채 폐기돼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헌법 개정안, 그것도 그 귀퉁이에 누군가가 알지 못할 이유로, 혹은 독일 헌법이나 스위스 헌법에 있다는 이유로 살짝 포함시켰을 ‘사소한’ 동물 보호 조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것이 우리의 헌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박원호칼럼

박원호칼럼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J양도 인정하는 것처럼 동물 보호 조항은 아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특히 찬성보다는 반대 의견이 우세할지 모른다. 가장 간단하게는 시민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굳이 동물까지 걱정할 여유가 있는가, 즉 ‘사람이 먼저’라는 항변에서부터, 국가가 굳이 개인 ‘소유물’인 동물을 헌법에 적시하여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동물권이 있으면 식물권은 왜 없는가, 등심 스테이크를 먹는 것은 동물권을 침해하지 않는가 등의 주장들도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란이 벌어지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는 이 사소하고 비현실적인 문제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이 때로는 현실이 가지 않은 길을 밝혀줄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침해받을 수 없는 권리를 타고났다는 계몽주의적 천부인권의 사상을 누군가가 세계 최초로 법적 문서에 포함시켰던 미국 헌법은 사실 인구의 7분의 1이 노예이며 여성참정권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것이 백인 성인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과 소수자와 어린이들이,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보편적인 인간이 동일하게 누려야 할 권리로 확장된 것이야말로 인류사의 발전이 아니었던가. 그  출발점은 미국 헌법에 그 문구들이 새겨진 순간이었다.

J양은 ‘국민’의 권리가 ‘사람’의 보편적 권리로 확장되어 온 것처럼 ‘동물’ 혹은 ‘생명’의 존중으로 넓혀지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질문한다. 아마 헌법에 해당 조항이 있건 없건 동물실험과 개농장과 고양이 학대가 쉽사리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확실한 것은 고양이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웃의 고통과 나아가 나와 같은 보편적 인간의 고통에 대해 이해하고 같이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의 동물 보호 조항은 사실 동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말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기성세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전히 ‘사람’의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난민 문제로부터 벗어나 있는 줄 알았던 우리에게 예고 없이 예멘 난민 500명이 제주도에 상륙한 것이 지난주였으며, 난민신청을 받지 말자는 국민청원이 22만 명의 서명을 모으는 데 단 5일이면 충분했다. 해당 기사에 달려 있는 댓글들을 읽어 보면 우리가 감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의 범위는 자기 손톱 아래의 가시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을 책망하거나 비판하거나 가치판단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가 앞으로 쓰게 될 헌법은 비현실적일망정 이상적인 요소도 있으면 좋겠다. 그 헌법은 현실의 반영이면서도 우리 공동체의 보다 나은 미래상을 제시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이를 위한 열띤 토론이 시작되어야 할 시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