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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시장서 나전칠기 세계화 꿈꾸는 강정원 장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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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5)

국제시장은 부산의 중심지에 있다. ‘국제’라는 이름도 미국산, 일본산, 한국산 물건들을 한데 모아 거래한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보여주듯 한국의 중요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시장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이자 지역 공예품, 더 나아가 명품이랄 수 있는 나전칠기를 전통방식으로 만들며 팔기도 하는 장인을 만났다. 강정원 장인(69)이다.

국제시장에서 나전칠기를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강정원 장인(69). [사진 이정은]

국제시장에서 나전칠기를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강정원 장인(69). [사진 이정은]

‘나전’은 조개껍데기, ‘칠기’는 옻칠을 뜻한다. 목기를 소재로 나전을 가공, 부착해 옻칠한 공예품이 바로 나전칠기이다. 나전칠기는 아름다운 광채가 나는 자개 조각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혀 있는 한국의 대표 공예품이다.

그러나 천연 옻칠로 작업해 가격이 비싼 데다 1960~70년대보다 시장 수요가 줄어 많은 나전칠기 공방이 문을 닫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38년째 나전칠기 공방 운영 

강정원 장인이 부산에 온 지 올해로 벌써 44년 됐다. 장인은 고향인 경남 통영인 고향에서 부산으로 터를 옮긴 뒤 나전칠기의 천재 회화가 고 이성운 장인에게 약 6년 동안 사사 받고 자립했다. 1980년부터 송원 칠공방을 설립해 지금까지 작업도 하고 때로는 판매도 하면서 어렵게 지키고 있다.

강정원 장인(좌)과 고 이성운 장인(우)의 모습. [사진 강정원]

강정원 장인(좌)과 고 이성운 장인(우)의 모습. [사진 강정원]

그는 오랫동안 부산 국제시장 ‘미술의 거리’에서 문화예술의 창작 활동과 전통공예의 명맥을 이어오며 나전칠기의 보존과 발전에 앞장서 오고 있다. 전통제작기법을 접목한 생활용품을 개발하는 한편 지역 특화 문화상품, 관광 상품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공방도 소규모에서 대규모로 확대해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합니다. 선진국처럼 핸드메이드 제품이 인정받을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합니다. 전통공예 장인의 기술에 현대적 감각을 살려 제품 개발에 나서면 명품으로 자리 잡을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너무 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40여년 지나오면서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외제 선호 사상에 젖은 국민의 인식도 바뀌어야 하고요."

전통이란 단순히 옛 기법과 양식을 원형 그대로 보존시키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수요에 맞게 현대적 재창조의 작업으로 걸러질 때 참다운 계승의 의미를 갖게 된다. 옛 정신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간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장인의 대표작품으로는 2013년 제작한 '고려 나전칠기 연주함'이 있다. 중앙의 원형작품은 고려 시대 나전국 당초문합(국립박물관 소장)을 재현한 것으로 문양과 형태는 실물과 똑같이 제작하려고 노력했다.

고려나전칠기연주함(좌)과 칠합학죽문(우). [사진 강정원]

고려나전칠기연주함(좌)과 칠합학죽문(우). [사진 강정원]

강정원 장인의 스승인 고 이성운 장인은 2017년 2월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77년 TBC-TV 일일연속극 ‘언약’이 그를 소재로 한 드라마다. 그 시대 나전칠기 분야 최고의 인물로 평가받았다.

은퇴 후 취미로 나전칠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강 장인은 말한다. 그들 모두 제자이지만, 장인은 평생 이 업을 직업으로 삼아 자신의 대를 이을 제자를 찾고 있다.

"아담한 작업장이라도 만들어 제자들을 모아 죽을 때까지 작업하는 것이 저의 평생 소박한 꿈이에요. 나전칠기로 국위를 선양하는 데 소명의식을 두고 있습니다. 나전칠기의 세계화가 꼭 이뤄지리라 믿어요."

다양한 가격대에서 상품화가 이뤄져야  

강정원 장인의 공방에 있는 나전칠기들. [사진 이정은]

강정원 장인의 공방에 있는 나전칠기들. [사진 이정은]

부산에서 나전칠기 역사를 매일 화분에 물 주듯이 이어가고 있는 장인의 노력에 감동하였다. 명품의 핵심은 수공예 솜씨와 전통을 지키려는 장인정신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인자한 웃음을 띤 사람 좋은 장인을 만나고 나니 행복했다.

나전칠기는 단순히 박물관이나 전시회에서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또한 단순히 관광상품에 머물러서는 본질적 아름다움을 지켜낼 수 없다. 일본과 중국의 공예품과의 차별성을 가지고 한국의 진정한 관광상품, 지역 공예품,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으로 다양한 가격대에서 상품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나전칠기 장인들의 숙제다.

이정은 채율 대표 je@chey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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