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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창밴드도 비보험 … 가정돌봄에 쓰는 건보 예산은 0.2%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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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가정돌봄 환자 100만 시대 <중>  

서울 마포구에 사는 정성일(76)씨가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 정만복(100)씨에게 오후 간식을 먹여드리고 있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정씨는 18년째 부모와 한집에 살며 돌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서울 마포구에 사는 정성일(76)씨가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 정만복(100)씨에게 오후 간식을 먹여드리고 있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정씨는 18년째 부모와 한집에 살며 돌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전북 익산시의 김재주(56)씨에게 18년 전 갑작스레 루게릭병이 찾아왔다. 개인택시 일을 그만둬야 했다. 택시를 처분하고 비상금을 보태 1년여를 버텼다. 하지만 더 버틸 수 없었다. 부인 최금옥(48)씨가 돌봄에 매달리면서 돈 벌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발병 1년여 만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현재 김씨는 인공호흡기를 꽂고 있다. 누워서 꼼짝하지 못한 채 의식과 감각만 살아 있다. 최씨가 한시라도 곁을 떠날 수 없다.

건보 보장, 병원 입원 환자에 집중 #집에서 요양 땐 호흡기 등 대여비만 #특수영양식·기저귀 모두 환자 부담 #루게릭병 간병, 기초수급자 된 40대 #“매달 50만원 나가 … 병원이 덜 들어”

김씨는 진료비의 10%만 부담하는 산정특례 환자다. 그런데도 혜택을 보지 못한다. 아무리 아껴도 특수영양식 등 소모품 구입에 매달 50만원 이상 고정적으로 들어간다. 집에서는 건보 혜택이 없다. 최씨는 “병원에 가면 돈이 별로 들지 않는데 집에 있으면 돈이 든다”고 말했다.

가정에서 돌봐야 할 환자가 생기면 주소득원이 끊길뿐더러 배우자나 부모가 돌봄에 매달리면서 부소득원마저 끊긴다.

대구의 교통사고 마비 환자 가정 한 구석에 가득한 약과 소모품들. 기초수급 가정이지만 각종 소모품 비용 등이 만만치 않게 든다고 호소한다. 대구=송봉근 기자

대구의 교통사고 마비 환자 가정 한 구석에 가득한 약과 소모품들. 기초수급 가정이지만 각종 소모품 비용 등이 만만치 않게 든다고 호소한다. 대구=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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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소모품 비용도 짓누른다.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환자들이 먹는 특수영양식, 인공호흡기 환자에게 필수적인 카테터(관), 와상 환자가 거의 매일 쓰는 욕창 치료용 밴드, 일회용 기저귀 등 대부분의 필수 소모품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와 가족이 부담한다.

건강보험이 지원해 주는 것도 있긴 하다. 자가 호흡이 어려운 환자에게 인공호흡기·산소발생기·기침유발기·당뇨병 재료 등 6가지 비용을 지원한다. 이런 것도 도입한 지 1~2년밖에 되지 않는다. 말기암 환자 가정호스피스, 대형병원 퇴원환자 가정간호 서비스 등을 더하면 건강보험이 지난해 가정 의료에 지원한 돈은 1239억원이다. 지난해 건보의 의료비(57조2913억원)의 0.2%에 불과하다. 건보 제도가 병원을 떠나면 맥을 못 춘다. 급한 치료를 마친 가정 환자에겐 무용지물이다.

또 재난적 의료비 지원, 본인부담금 상한제, 희귀난치병·4대 중증질환 산정특례 같은 장치가 있지만 이 역시 병원 진료비 위주로 적용된다.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라서 가정에서 장기 투병을 하는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료제도가 가정 환자를 돕지는 못할망정 병원행을 부추기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가정 환자 돌봄은 마라톤이다. 호승희 국립재활원 건강보건연구과장이 2005년 뇌졸중이 발생한 4만9726명을 추적한 결과 병원 치료는 발병 후 1년 안에 집중됐다. 발병 10년 되는 해에 1507명만 병원을 이용했다. 대부분 집에서 돌본다. 이 과정에서 서서히 무너져 간다.

경기도 광주시 이영춘(53)씨는 뇌졸중 남편(60)을 10년째 돌보고 있다. 쓰러진 직후 희망을 갖고 1년 반 동안 1억8000만원을 쏟아 재활치료를 했지만 허사였다. 그 이후 가정에서 돌보면서 의료비·돌봄비용 등이 끝없이 들어갔다. 발병 전에는 남편이 공무원이었고 이씨도 제조업체 근로자였다. 이씨는 “발병 전만 해도 먹고살 만했다. 10년 간병하느라 빌라를 팔고 월셋집으로 옮겼다”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아들 소득이 생기면서 장기요양보험 본인부담금 경감이 사라졌다. 이씨는 “월 8만원 부담이 늘었는데 180만원처럼 느껴진다”며 한숨 지었다.

호승희 과장은 “가정에 있는 뇌졸중 환자 중 독립생활을 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사는데 사회경제적 비용이 많이 들고 빈곤층으로 떨어지거나 계층이 하락한다”고 말한다.

인천에 사는 뒤센근이영양증 환자의 마른 손. 근육이 점점 소실되면서 마우스로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정종훈 기자

인천에 사는 뒤센근이영양증 환자의 마른 손. 근육이 점점 소실되면서 마우스로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정종훈 기자

가족들은 휴식을 갈망한다. 4년 전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은 남편(55)을 돌보는 김모(48)씨는 올 2월 평창 겨울올림픽 때 아들·딸과 강릉의 컬링경기장 나들이를 다녀왔다. 스마트폰 화상 통화를 연결해 놓고 남편만 두고서다. 너무 불안해 오전 11시에 나갔다가 오후 5시에 돌아왔다. 김씨는 “바다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장기요양보험은 치매환자에게 연 1회 6일 휴가를 제공한다. 24시간 요양보호사가 와서 대신 환자를 봐준다.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해 115명밖에 이용하지 않았다. 장기요양 1, 2등급 치매 환자 중 망상 같은 특이증상이 있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서다. 올해 1~5등급 치매환자로 풀었지만 1~4월 50명에 불과하다. 여전히 단기보호시설을 이용한 적이 없어야 하는 등의 조건이 붙어 있어서다. 게다가 중풍·파킨슨병 등 다른 질병은 이용할 수도 없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픈 사람이 생기더라도 가족이 원래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국가·지자체가 지원해 줘야 한다. 가족에게 돌봄 부담을 떠넘기면 가정의 소득이 줄어들고 계층 하락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정돌봄 환자의 서비스를 다양화해야 하다고 권고한다. 노인부부 가정 돌봄 환자 중 식사 준비가 어려울 경우 식사를 배달하거나 영양식을 제공하고 이동이나 외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문턱 제거, 출입구 확장, 경사로 설치 등의 주택 개조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가정 돌봄 가족 말말말

● 서점순(72)씨 - 교통사고 마비 환자 부인
“이가 많이 빠졌는데
돈과 시간이 없어 치과 가는 것도 미룬다”
● 최금옥(48)씨 - 루게릭병 환자 부인
“주변의 환자 가족들도
소득 수준이 한 단계씩 내려가더라”
● A(80)씨 - 치매 환자 부인
“고작 5만~7만원 없어서 주간보호센터 못 보내”
● 서모(48)씨 - 근이영양증 환자 부인
“식당 알바라도 하고 싶은데 간병 때문에 불가능”
● 박모(53)씨 - 뒤센근이영양증 환자 어머니
“나라 예산도 중요하지만
가정만은 안 무너지게 하면 좋겠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ㆍ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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