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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거래소 신고제 도입 … 검은돈 차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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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정부가 비트코인 등을 사고파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가상통화 취급업소’로 규정하고 신고제를 도입한다. 미신고 업소는 은행 거래가 차단돼 암호화폐 거래가 불가능해진다. 신고한 업소라도 법을 어기면 영업정지를 포함해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기존에는 사업자 등록만 하면 #암호화폐 거래 가능해 부작용 커 #금융정보분석원에 신고 의무화 #고객 신분증 확인 등 법으로 규정 #금융당국 감독·검사 권한 강화

금융위원회는 이런 내용으로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추진한다고 19일 밝혔다. 손성은 금융정보분석원(FIU) 기획협력팀장은 “가상통화 취급 업소(암호화폐 거래소)를 자금세탁 방지 체계의 직접적인 감독 대상에 포함하기 위한 입법”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검은돈’의 거래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실제로 국제 마약대금으로 의심되는 수십억원의 자금을 국내로 들여와 암호화폐 거래소의 계좌를 거쳐 현금으로 찾아간 사례도 있었다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관련 법안을 이미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시행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암호화폐의 법적인 용어는 ‘가상통화’로 정해졌다. 법안에서 가상통화는 ‘거래 상대방으로 하여금 교환의 매개 또는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것으로서 전자적 방법으로 이전 가능한 증표 또는 그 증표에 관한 정보’라고 정의된다. 가상통화 관련 정의가 국내 법 체계 안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다.

가상통화는 화폐의 네 가지 기능 중 ‘교환의 매개’와 ‘가치의 저장’ 두 가지만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정부는 화폐의 다른 기능인 ‘가치의 척도’와 ‘지불의 수단’으로서 가상통화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손 팀장은 “지난 1월 가이드라인에서 밝힌 가상통화의 정의와 같은 내용”이라며 “가상통화를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법안이 시행되면 가상통화 취급업소는 예외 없이 FIU에 신고해야 한다. 만일 미신고 업소가 확인되면 은행 등 금융회사는 신규 계좌는 물론 기존 계좌까지 거래를 중단해야 한다. 미신고 업소는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도 내야 한다. FIU는 정식으로 신고한 가상통화 취급업소의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현재 가상통화 취급업소는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만 하면 된다. 업종은 구분이 없지만 전자상거래업이나 통신판매업으로 신고한 경우가 많다.

앞으로 가상통화 취급업소에는 은행과 비슷한 수준의 고객 실명 확인과 자금세탁 방지 의무가 부과된다. 현재는 금융위 가이드라인에 따라 가상통화를 거래하는 투자자에 대해선 은행을 통해 간접적으로 실명을 확인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가상통화 취급업소는 직접 고객의 신분증과 주소 등을 확인해야 한다. 비실명 거래나 자금세탁이 의심되는 거래는 가상통화 취급업소가 FIU에 신고할 의무가 생긴다. FIU는 검찰·국세청 등에 의심거래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이들 기관이 필요한 경우 FIU에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도 있다.

고객이 맡긴 돈을 회사 재산과 별도로 관리하고, 고객별로 거래 내역을 분리해 보관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겼다.

제 의원은 “가상통화 관련 논란을 최소화하는 수준의 입법으로, 불법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거래 주체를 분명히 확인해 가상통화 거래를 안정시키면 소비자 보호와 업계의 질서 확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통화 취급업소는 금융당국의 감독과 검사도 받아야 한다. 위법을 저지르거나 금융당국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임원 해임 권고나 영업정지, 기관 경고, 시정명령 등을 받을 수 있다.

자금세탁 방지 관련 규제 강화는 국제적인 추세라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지난 3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선 가상통화에 자금세탁 방지 국제기준을 적용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암호화폐를 증권 같은 투자의 대상으로 제도화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코리아중앙데일리가 주최한 포럼에서 “(가상통화) 거래는 위험성을 고려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며 “세계적으로 봐도 법이나 제도를 통해 명확하게 하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최 위원장은 “소비자 피해 예방과 자금세탁 방지 문제는 관심을 갖고 보겠다”고 언급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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