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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평양의 맥도날드 지점 최소 두개면 수익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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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리처 미국 메릴랜드대 사회학과 교수. [메릴랜드대 제공]

조지 리처 미국 메릴랜드대 사회학과 교수. [메릴랜드대 제공]

 세계 최대 외식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의 평양 진출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김정은이 미국에 대한 호의적 의사 표현으로 서구식 햄버거 프랜차이즈(맥도날드)를 들여올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맥도날드 역시 “(북한 측) 요청이 올 경우 매우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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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세계의 관심은 ‘맥도날드가 북한에 자본주의 물결을 일으킬지’ 여부에 쏠려 있다. 이에 중앙일보는 저명한 사회학 석학인 조지 리처 미국 메릴랜드대 사회학과 석좌교수(78)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리처 교수는 지난 1993년 펴낸 저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를 통해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서구 자본주의의 폐해를 경고한 학자다. 그는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1864~1920년)의 합리성 이론을 바탕으로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 등의 특징을 지닌 ‘맥도날드화’란 개념을 소개했다.

 리처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소비자는 맥도날드에서 싼 가격을 지불해 고픈 배를 ‘효율적’으로 채울 수 있으며, 노동자 역시 ‘저임금을 받으며 효율적으로(경영자 입장)’ 일하게 된다. 세계 어디서나 같은 햄버거를 맛볼 수 있어 소비자의 행위 패턴은 ‘예측 가능’해지며, 소비자·노동자 모두가 계산된 동선 아래 고도의 ‘(자본주의의) 통제’를 받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요지다. 인간이 만든 합리적 시스템이 점차 구조화되면서 인간이 이 시스템에 구속되는 역설적인 현상을 그는 ‘합리성의 쇠감옥’이라고 표현했다.

 리처 교수는 인터뷰에서 “맥도날드가 평양에 진출하면 큰 수익을 내진 못 하겠지만 적어도 서구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상징성을 남길 것”이라며 “(맥도날드의 평양 진출은) 월마트, 아마존 등 미국 자본이 북한 사회에 진입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그는 맥도날드를 ‘작은 쇠감옥’에 비유하면서 “주민들의 자유가 착취당한 상태에서의 (맥도날드가 진출한) 북한 사회는 ‘끝없이 확장된 쇠감옥’으로 볼 수 있다”고 묘사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1995년 러시아가 모스크바 1호점을 냈을 당시 사람들이 줄서고 기다리는 모습.

1995년 러시아가 모스크바 1호점을 냈을 당시 사람들이 줄서고 기다리는 모습.

-서구 자본주의(맥도날드)의 공산주의 국가 진출은 무슨 의미가 있나.
“지난 95년 맥도날드가 모스코바에 첫 지점을 열었다. 그때 내가 현장에 있었다. 맥도날드의 러시아 진출은 하나의 현상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맥도날드 밖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며 줄을 섰다. 당시 이들의 구매력을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음식이었는데 말이다. 이들은 맥도날드에서 생일파티는 물론 결혼식까지 열었다. 마치 맥도날드를 신세계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북한·러시아·중국 등 주요 (구)공산주의권 국가의 중요한 특징은 (마르크스적 의미의) 진정한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중국은 겉으론 공산주의를 표방하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 자본주의에 가깝다. 서구 자본주의의 (공산주의 국가) 진출은 바로 이런 모순에서 시작된다.”

-맥도날드 평양점은 북한 사회에 영향을 줄까.
“북한 경제가 어느 정도나 폐쇄됐는지, 그리고 (김정은 정권이) 사람들의 (맥도날드 제품) 구매 행위를 제한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난 저서를 통해 효율성·계산가능성·예측성·자동화가 ‘맥도날드화’란 개념을 대표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서구 자본주의 가치들은 북한 사회와 충돌을 빚을 수 있다. (주체사상에 길들여진) 북한 주민들이 맥도날드의 평양 진출에 저항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슨 뜻인가.
“예시를 들겠다. 과거 한 사업가가 예루살렘에 맥도날드를 연 적이 있다. 한 어린이가 ‘맥도날드 대사가 된 느낌이 어때요? 내 모자에 사인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하자, 이 사업가는 ‘난 미국의 대사이지, 맥도날드 대사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어린이는 ‘내가 원하는 건 (미국이 아닌) 맥도날드 대사였다’며 모자를 돌려받았다. 이는 맥도날드 진출국에 ‘맥도날드’와 ‘미국’이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 주민들 역시 (이 아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북한처럼 폐쇄된 경제에서 맥도날드가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지난 90년대 (맥도날드의 러시아 진출 당시) 현지 유통망은 매우 부실했다. 관련 업종과 인프라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맥도날드가 진출하자 변화가 나타났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러시아 농촌에서 맥도날드 각 지점에 감자를 유통하려는 목적으로 감자 종(種) 크기를 (감자튀김 크기에 맞게) 생산한 것이다. 또 맥도날드 지점과 현지 직원 숫자가 늘어나면서, (내가 언급한) 효율성·계산가능성·예측성·자동화가 러시아 경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양에 맥도날드 지점이 최소 두 개 이상 들어선다면 비슷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맥도날드 지점과 진출국(國)의 추이. 1983년 7778곳에 머물던 지점 숫자는 지난해 3만 7241곳으로 크게 뛰었다. 진출국 역시 같은 기간 32개국에서 120개국으로 늘었다. [WP 캡처]

맥도날드 지점과 진출국(國)의 추이. 1983년 7778곳에 머물던 지점 숫자는 지난해 3만 7241곳으로 크게 뛰었다. 진출국 역시 같은 기간 32개국에서 120개국으로 늘었다. [WP 캡처]

-맥도날드 평양 1호점은 세계에 무슨 의미를 주나.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이 ‘골든아치 이론(맥도날드가 진출한 국가 사이엔 상업적 교류가 형성돼 있어 전쟁 위험이 줄어든다는 이론)’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북한과 주변국 간의 갈등이 상당히 줄 것으로 본다. 가까운 미래에 월마트, 아마존이 북한에 진입하게 된다면 군사·외교적 갈등은 더더욱 줄어들 것이다. 만약 북한에 자본주의에 더해 디지털 바람까지 일어난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는 더욱 앞당겨질 수 있다.”

-당신은 저서에서 “맥도날드화를 통해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가 진행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이미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북한엔 강력한 체계와 질서가 세워져 있다. 맥락은 다르지만 비슷한 개념이 아닌가.
“‘맥도날드화’란 개념은 북한 사회의 질서와 체계에 비해 좀 더 유연성이 있다. 예컨대 서구 사회에선 (내가) ‘쇠감옥’이라고 부르는 물리적 공간(맥도날드)에서 벗어난다면 일시적으로 ‘맥도날드화’에서 해방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강력한 통제와 동시에 비인간성이 사회 전반에 스며든 곳이다. 김정은 자신도 고모부(장성택)를 대포로 쏴 죽이지 않았나.이런 맥락에서 난 북한 사회를 극단적 형태의 쇠 감옥이라고 부르고 싶다. 마치 (맥도날드 같은) 작은 쇠 감옥이 끝없이 연결된 사회 말이다.”

-북한에 진출한 맥도날드의 철수 가능성은.
 “몇 년 전 자메이카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나라는 맥도날드가 사업 철수를 결정했던 곳이다. 한 가지 놀라웠던 건 자메이카의 지역 상점이 모두 맥도날드의 비즈니스 모델을 따라했다는 점이다. 메뉴, 메뉴판, 계산대 등 모두 흡사했다. 결국 주변 상점과 차별화가 어려워진 맥도날드는 수익이 크게 떨어졌고 끝내 철수 결정을 내리게 됐다. 이런 상황(자메이카)이 북한에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맥도날드가 수익성을 고려했다면 애당초 북한 시장 진출을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맥도날드의 북한 진출은 서구 자본주의의 상징적 승리 측면에서 평가해야 한다.”

지난 2010년 방한했던 조지 리처 교수. [연합뉴스]

지난 2010년 방한했던 조지 리처 교수. [연합뉴스]

-맥도날드의 평양 진출이 북한 주민의 삶에도 변화를 줄까.
“미국 기준으로 맥도날드의 기본 임금은 평균 근로자 임금에 턱없이 부족하다. 아마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일 것이다. (맥도날드 평양점의 임금이 비슷하다고 가정시) 주변 북한 근로자의 임금과 삶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될까.
 “결국 모든 건 정치에 달려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두 나라 간에 교류가 활성된다면 더 많은 미국 프랜차이즈가 북한에 진출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북한이 ‘작은 경제’라는 사실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북한은 미국에 비해 훨씬 실익이 클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논하기에 앞서 비핵화가 선행돼야 한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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