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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밭이 국내 최대 R&D단지로…마곡밸리, 새 성장엔진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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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마곡 R&D 단지 내에 있는 코오롱 미래기술원(왼쪽)과 LG그룹의 R&D 기지인 LG사이언스파크. 최준호 기자

마곡 R&D 단지 내에 있는 코오롱 미래기술원(왼쪽)과 LG그룹의 R&D 기지인 LG사이언스파크. 최준호 기자

 김포공항 옆 서울 지하철 5호선 마곡역과 9호선 마곡나루역은 요즘 출근길 러시아워가 두 차례다. 첫차가 도착하는 오전 5시 반 전후, 작업복을 입은 건설현장 인부들이 쏟아져 내린다. 두 번째 러시아워는 세 시간 뒤인 오전 8시 반. 이땐 캐주얼 차림의 젊은 연구인력들이 분주히 발길을 내디딘다. 오랜 기간 들판 한가운데 버려졌던 두 마곡역이 최근 하루 수만 명이 타고 내리는 분주한 곳으로 변신하고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서울시내 마지막 남은 논밭이었던 마곡지구 366만5000㎡(약 100만 평)가 국내 최대의 민간 연구개발(R&D) 단지로 떠오르고 있다. 테헤란 밸리, 판교 밸리에 이은 이른바 ’M(마곡) 밸리’다. LG그룹은 지난 4월 축구장 24개 크기인 17만여㎡의 부지에 LG전자 등 8개 그룹 계열사의 연구기능을 모은 ‘LG사이언스파크’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LG의 연구인력만 1만7000여 명이 집결했다. 코오롱그룹도 같은 달 ‘미래기술원’ 간판을 내걸고 코오롱 인더스트리 등 3개 핵심 계열사의 연구인력 1000명을 한곳으로 모았다. 롯데그룹은 앞서 지난해 6월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던 중앙연구소를 마곡으로 이전하면서 규모를 5배 키워 ‘롯데 R&D센터’로 확대해 문을 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외에도 넥센타이어와 이랜드·귀뚜라미 등이 R&D센터를 건설 중이고,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최대주주인 S오일, 일본계 도레이, 미국 웰스바이오 등 외국 기업들도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곳에는 대기업 46개, 중소기업 90개 등 총 136개 기업의 R&D센터가 입주를 확정했다. 삼성그룹이 경기도 수원과 용인을 중심으로, 현대차그룹이 화성 일대에 그룹 계열사들의 연구소를 모으고 있지만, 여러 민간기업 연구소들이 이렇게 대규모로 한곳에 모이는 것은 마곡이 처음이다.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과 중소기업을 위한 시설도 대거 들어선다. 서울시는 2022년을 목표로 마곡단지 내 입주기업을 위해 특허·법률·마케팅 등을 지원하는 공공지원센터와 연구개발을 위한 R&D센터, 스타트업이 업무뿐 아니라 숙식까지 해결할 수 있는 ‘도전숙’ 등을 건설하고 있다.

 한성수 코오롱 미래기술원장은 “여러 기업 R&D 인력이 한곳에 모여 협업하면, 화학적 융합이 일어나고 창업과 투자, M&A로 이어지는 생태계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기업 연구소들이 왜 갑자기 지금 마곡으로 몰려들까. 전문가들은 마곡이 가진 최적의 입지조건을 꼽는다. 과학기술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우스갯소리 중에 ‘평택이 남방 한계선’이란 표현이 있다. 엘리트 집단인 연구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수도권 이남으로 내려가는 것을 꺼린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공기업과 정부 산하 연구소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적지 않은 연구인력이 퇴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내년 말 충북 진천으로 이전을 앞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도 최근 연구인력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고급 연구인력을 유치하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서울 시내에 자리 잡은 마곡 R&D단지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마곡은 서울시내에서도 손꼽히는 교통요지라는 장점도 있다. 지하철 5·9호선과 인천공항철도가 단지를 관통해 지나간다. 김포공항이 전철로 두 정거장 옆이며, 올림픽도로가 단지를 끼고 뻗어 있다. 이외에도 한강 건너편에 상암미디어시티가 자리 잡고 있고, 국내 최대 규모의 전시공간을 갖춘 일산 킨텍스도 멀지 않다. 금융기업들이 모여 있는 여의도까지는 10여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마곡엔 주거·근무의 쾌적함도 보장된다. 오는 10월에는 여의도공원 2배 규모에 호수공원까지 포함된 초대형 공원(50만3431㎡)인‘서울식물원’이 문을 연다. 이곳은 5000종의 식물을 갖춘 식물원뿐 아니라 열린숲마당·호수공원 등이 합쳐진 세계적 수준의 ‘보타닉 파크(Botanic Park·식물원과 결합한 공원)’로 조성된다.

  서울시는 이런 뛰어난 입지 조건 외에도 토지 조성 원가 수준의 분양가(3.3㎡)와 세제 혜택을 통해 기업 유치를 유인했다. M밸리는 또한 정부출연기관이 몰려 있는 대덕 연구단지와는 태생부터 다르다. 대덕단지는 국가 주도 개발시대인 70년대 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들었다.

 이석봉 대덕넷 대표는 “대전의 대덕연구단지가 정부 R&D 기지로서 20세기를 이끌어왔다면, 서울의 마곡 R&D단지는 국내 최대 민간 R&D 기지로서 대덕과 함께 21세기를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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