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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손뼉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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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호 35면

성기완 뮤지션·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

성기완 뮤지션·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

손뼉은 손바닥과 손가락을 합친 전체 바닥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손바닥 더하기 손가락이 손뼉이다. 손뼉은 손 전체로 이루어진 벽이다. 손의 벽을 서로 부딪치면 소리가 난다. 벽이 벽을 깨부술 때 소리가 난다.

손뼉치기는 언제나 촉각과 청각에 동시적으로 작용한다. 손뼉치기는 공감각적이다. 손뼉을 치면 손바닥만 얼얼한 게 아니라 귀도 얼얼하게 자극된다. 손뼉치기는 이른바 어택(attack)이 강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어택은 음원이 발생하여 최고조의 음량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어택이 짧을수록 강렬한 타격음이 된다. 손뼉은 염소가죽을 통나무에 씌운 젬베만큼이나 얼얼한 파열음이다.

손뼉 치는 걸 한자로는 ‘박(拍)’이라 한다. 손 수 변에 흰 백을 쓰는 ‘박’은 형부(形符)인 ‘손’이 성부(聲符)인 ‘백’과 만난 형성자다. ‘백’ 소리가 나도록 양 손뼉을 마주치면 ‘박’이 된다. 이 ‘박’은 음악의 기본이다. 영어로는 비트(beat)라고 한다. 멜로디와 리듬, 즉 선율과 장단 중에서 장단이 더 기본이다. 심장의 박동, 맥박, 호흡의 주기, 낮과 밤, 계절의 순환 등 몸과 우주의 생리적인 주기들이 리듬의 원천이다. 음악은 그 주기들을 찬양하고 재현·반복하면서 우주의 주파수에 존재를 튜닝한다.

삶의 향기 6/16

삶의 향기 6/16

손뼉은 존재의 모든 떨림에 내재하는 원초적 주기로서의 장단을 가장 직접적으로 가시화하는 몸의 수단이다. 손뼉을 친다는 일은 엄청난 행동이다. 손뼉치기는 가장 원초적인 음악행위다. 리듬을 중시하는 음악들에서 박수 소리의 질감은 너무도 중요하다. 최신 테크노 음악에서도 손뼉은 매우 중요한 리듬의 재료다. 예를 들어 아날로그 드럼 머신의 지존 중의 하나라 할 롤랜드(Roland)사의 고전적인 ‘TR-808’ 드럼 머신의 박수 소리는 전자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질감을 누구나 기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의 테크노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다 펑크(Da Funk)’의 박수소리를 참 좋아한다. ‘TR-909’ 계열의 음원에 섬세한 이펙팅을 가미해서 나왔을 그 소리는 한 마디로 힘차기도 하고 우아하기도 하다. 그 둘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유의 질감이 있다. 소리 하나 하나에 천착하는 미니멀한 집중력이 다프트 펑크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손뼉치기는 본능적인 행동이다. 아기야말로 본능적으로 손뼉을 친다. 보드랍고 토실토실한 손을 놀리며 곤지곤지 잼잼 도리도리 짝짜꿍하는 아기는 얼마나 이쁜가! 슬플 때 손뼉을 짝짝 치는 사람은 드물다. 반면 기쁘거나 재미나면 어르신도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친다. 손뼉을 쳐서 벌게지도록 손을 자극하고 피를 돌게 한다. 손뼉은 피의 순환과 직결된다. 손뼉을 치면 흥분된다. 손만 빨개지는 게 아니라 얼굴도 빨개진다. 손뼉은 손의 자극이자 귀의 자극이고 궁극적으로는 심장의 자극이다. 손과 귀와 심장이 하나가 된다. 손뼉을 치다 보면 황홀한 상태가 된다. 황홀경에 이르는 통로가 먼 데 있지 않고 나와 가장 가까운 손바닥 안에 있다.

손뼉 치는 행동은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친다. 종교는 반드시 손뼉을 사용한다. 어쩌면 유사종교들이 더 그러는지도 모른다. 박수치고 노래하다 울며불며 황홀경에 빠지는 집단적인 행동은 위험하다. 전체주의도 박수를 활용한다. 여러 사람이 박수치면 그 소리는 놀라운 것이 된다. 그래서 ‘우레와 같은’ 박수라고 하지 않나.

올여름의 한반도는 그야말로 손뼉 칠 일이 많다. 기쁘기 그지없다. 이 평화와 화합의 시대에, 억지로 박수를 강요하여 얼얼하게 만든 다음 교묘하게 민중을 끌고 가는 정치세력은 이제 남과 북 그 어디에도 발붙이기 힘들다는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 역사의 거대한 전환을 이끈 작은 손들에 경의를 표하며 서로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 어떨까. 올여름의 음악 축제들이 기대되는데, 때마침 철원 일대 DMZ에서 펼쳐지는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부터 동참하고 싶다.

성기완 뮤지션·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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