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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대, 취업 무경험 실업자 8만9000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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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산업부 차장

손해용 산업부 차장

취업포털 ‘사람인’이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한국의 ‘취업 무경험 실업자’는 올 1분기 현재 10만4000명이다. 2030세대가 8만9000명으로 전체의 85.6%를 차지한다. 2016년 말에는 이 수치가 5만4000명이었다. 일자리 경험이 전무(全無)한 젊은 구직자가 그만큼 많고 계속 늘고 있다는 얘기다.

1분기 실업자 수가 125만7000명으로 2000년 이후 최대치라는데 이 정도가 뭐가 대수냐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쏟아지는 수백 개의 e메일 가운데 이 자료가 눈에 들어온 것은 ‘청년 일자리’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이는 일해볼 기회조차 잡지 못한 청년 백수가 크게 늘었다는 뜻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청년 구직자들이 고학력화되면서 이들의 눈높이를 맞출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하다. 기업들은 ‘즉시 전력’인 경력직을 선호하는 추세가 짙어지고 있다. 취업 ‘현역’이 재수·삼수생과 경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청년 고용시장은 갈수록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가장 창조적으로 능력을 쏟아부을 청년들이 좌절하게 되면 한국 경제·사회는 활력을 잃게 된다.

물론 최근 ‘청년 고용 쇼크’는 인구 구조적인 요인이 크다. 2차 베이비붐 세대(1968~74년생)의 자녀들인 에코붐 세대(1991~96년생)가 2014년부터 구직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로 인해 지난해부터 2021년까지 20대 후반(25~29세) 청년층은 총 39만 명 늘어난다. 일자리 공급은 제자리니 청년 실업률이 치솟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 ‘올인’해도 모자랄 판에 되레 악영향을 주는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은 채용을 줄이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이미 직장 울타리 안에 들어선 사람만 좋았지, 새로운 취업의 문을 좁게 만든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은 자동화 확대와 공장 해외 이전이라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진다. 모두 기업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급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생긴 부작용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지난달 실업률이 18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2.7% 오르는 등 고용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각종 규제를 없애고 법인세율을 내리는 등 기업 활성 정책을 밀어붙인 효과다. 투자 및 채용이 늘고, 이는 새 일자리와 소득 증가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진 것이다.

현상에 대한 이견은 있겠지만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경제 주체는 기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금처럼 기업 부담을 전가하는 정책이 쏟아지는 국내 경영 환경에서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에 눈 돌릴 여력이 없다.

손해용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