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웹툰 플랫폼 네이버웹툰이 한국영화 제작에 나선다. 국내 처음 중국 자본과 손잡은 투자·배급사도 출범한다. 이를 비롯한 국내외 큰손의 가세로 CJ·롯데·쇼박스·NEW, 4대 투자·배급사 위주이던 영화시장이 지각변동을 맞게 됐다.
네이버웹툰 영화 제작 뛰어들어 #20일 개봉 ‘여중생A’가 신호탄 #중국 거대자본도 충무로 들어와 #할리우드 주연급 배우 섭외 추진 #정체된 영화시장에 자극제 될까
네이버에서 지난해 독립한 자회사 네이버웹툰은 공동제작한 첫 영화 ‘여중생A’를 오는 20일 개봉하는 데 이어, 웹툰 영화화를 전문으로 하는 콘텐트 기획·개발 법인을 올해 안에 설립한다. 법인 대표엔 올 초 CJ E&M에서 퇴사한 권미경 전 한국영화사업본부장이 내정됐다. 권 전 본부장은 역대 흥행 1·3·4위 작품 ‘명량’ ‘국제시장’ ‘베테랑’ 등을 투자총괄한 실력자. 웹툰 원작 영화의 힘은 200억 원대 대작 ‘신과함께-죄와 벌’이 올 초 1000만 영화가 되며 다시 주목받은 바다. 네이버웹툰이 권 전 본부장을 영입한 건 이에 육박하는 블록버스터급 프로젝트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네이버웹툰의 첫 제작 영화 ‘여중생A’는 여중생(김환희 분)이 가상 게임 세계에서 사귄 친구(수호 분)를 실제로 만나며 펼쳐지는 성장담. 만점 가까운 네티즌 평점(9.9)을 받은 동명 웹툰을 총제작비 15억원으로 스크린에 옮긴 저예산 영화다. 네이버웹툰 측은 이처럼 검증된 웹툰을 다양한 규모와 장르의 영화로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네이버웹툰 관계자는 “일반적인 영화제작사라기보다 원작 웹툰의 의도와 설정을 잘 살려, 영화시장의 주요 파트너와 협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브릿지 컴퍼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탄탄한 기획력과 마케팅, 작품에 대한 선구안으로 해외자본의 막강한 물량 공세를 돌파해, 영화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네이버 계열사 스노우와 네이버웹툰이 공동출자한 콘텐트 제작사 플레이리스트도 지난 4월 영화사업부 세미콜론 스튜디오를 출범했다. 미국영화 ‘루비 스팍스’를 수입해 지난달 개봉했고, 한국영화 기획·개발 인력도 두 자릿수로 모집 공고했다. 플레이리스트는 누적 조회 수 5억 뷰의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 같은 자체 성공모델과 유튜브·SNS 등을 활용해 새로운 온라인 영화 마케팅 콘텐트를 개발, 사업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최대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 화이브라더스는 유정훈 전 쇼박스 대표와 손잡고 다음 달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를 창립한다. 유 대표는 지난해 1000만 영화 ‘택시운전사’, 올해 깜짝 흥행에 성공한 저예산 호러 ‘곤지암’ 등 장르·규모를 가리지 않고 실속 있는 작품에 투자·배급해온 흥행사로 통한다.
유 대표는 “드라마와 영화가 합쳐진 하이브리드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며 “영화감독이 드라마 작가와 함께 만들고 수익구조를 서로 접목하는 등 새로운 형태가 될 것”이라 말했다. 예컨대 10부작까진 TV 드라마로 방영하다 최종회는 2시간짜리 영화로 극장에서 보는 방식. 유 대표는 “방송국과 극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기업들이 많아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했다.
메리크리스마스는 전통적 방식의 영화·드라마를 포함, 매년 5~6편의 작품에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유 대표는 연간 투자 규모를 300~400억 원대로 내다봤다. 그는 “시장에 콘텐트가 범람하며 소재 고갈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큰 예산보단 장르적으로 충실하고 기획·소재가 신선한 작품을 선택·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화이브라더스의 할리우드 펀드와 네트워크를 활용, 할리우드 주연급 배우와 글로벌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한·중 양국 간에 아이템을 교류하는 합작 방식도 검토 중이다.
새로운 투자·배급사들은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국내 영화시장이 연간 극장 관객 2억 명 대에서 5년째 정체돼 있기 때문. 드라마 제작에 이어 최근 영화사업을 본격화한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이재향 본부장도 “기존 4대 투자·배급사 못지않은 규모로 장기적인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바이오의약기업 셀트리온의 이 자회사는 2년 전 ‘인천상륙작전’으로 영화 투자를 시작, 현재 가수 비가 주연인 일제강점기 실화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가제)을 제작 중이다. 향후 투자·배급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토종 화장품 브랜드 AHC를 매각, 1조원을 번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도 영화 투자·배급사를 연다. 정현주 전 쇼박스 투자제작본부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돼 다음 달쯤 공식 출범한다. 김용화 감독이 이끄는 VFX 전문회사 덱스터 스튜디오도 김 감독이 연출한 ‘신과함께’의 공동제작에 이어 여러 한국영화 제작 및 투자·배급에 나설 전망. ‘설국열차’ ‘아가씨’ 등을 프랑스에 소개한 프랑스 배급사 조커스필름도 최근 아시아 대표를 선임, 한국영화 공동제작 및 투자 가능성을 열어뒀다.
제작사들은 투자처가 다양해지는 걸 반기는 분위기다. ‘신과함께’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다양한 작품을 만들 기회가 더 많아졌다”며 특히 중국 자본 유입에 대해 “문화적·정서적 유대가 높은 아시아 시장 진출이 한층 원활해질 수 있다”고 기대했다. 최근 성적이 부진한 한국영화계에 좋은 자극이 되리란 말도 나온다. 투자·배급사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이정세 영화사업본부장은 “저마다 취향과 색깔이 반영된 보다 다채로운 영화가 시장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투자·배급 관계자는 “보도된 곳 외에도 많은 자본이 영화계에 유입되고 있는데, ‘한탕’을 노리는 투자처도 적지 않다”며 “동력이 많아진 건 반갑지만, 기회를 얻은 영화가 관객에게 제대로 닿게 하는 것이 영화인들의 숙제”라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