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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10명이 '전교조'···교육정책 급좌회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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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외노조 철회 등을 요구하는 전교조 조합원들. [연합뉴스]

법외노조 철회 등을 요구하는 전교조 조합원들. [연합뉴스]

17개 시도교육감 선거 개표 결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진보 성향 당선자 14명 중 10명이 전교조에 몸을 담았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선 위원장 출신중 처음으로 장석웅 후보(전남)가 교육감 자리에 오르게 됐다. 나머지 4명의 진보 당선자들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등 친전교조 성향을 보이는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향후 교육정책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보수의 참패’다. 정당과 연계되지 않은 교육감선거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선거에선 보수 후보들의 난립으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됐지만 이번 선거에선 보수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진보 후보들이 약진했다. 경기도의 경우 보수는 임해규 후보(23.5%)로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후보가 난립한 진보 진영의 이재정 후보(40.8%)가 여유 있게 당선됐다. 그 정도로 ‘보수의 무덤’ 현상이 심각했다는 이야기다.

교육감당선자

교육감당선자

 특히 각 지역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며 탄탄한 조직을 일궈놓은 전교조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실제로 이번 교육감선거 당선자 17명 중 10명이 전교조 위원장 또는 지부장을 지냈다. 이번에 전남에서 당선된 장석웅 후보는 평교사 시절인 1979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 후 1988년 전교조 결성을 주도했다. 2011∼2012년엔 위원장을 지내며 당시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강경한 투쟁을 벌였다.

 또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울산에선 전교조 울산지부장을 지낸 노옥희 후보가 당선됐다. 울산은 지금까지 한 번도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적 없었다. 직전에 있던 보수 성향의 김복만 전 교육감이 지난해 공직선거법 위반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무주공산이 됐다. 이 자리를 노 후보가 치고 올라오면서 승리의 영예를 안았다. 인천도 전교조 인천지부장 출신 도성훈 후보가 여유 있게 당선됐다.

장석웅 당선자가 전교조 위원장 시절인 2011년 이주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장석웅 당선자가 전교조 위원장 시절인 2011년 이주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나머지 7명의 전교조 출신 당선자들도 ‘현직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쉽게 연임에 성공했다. 재선 고지에 오른 이석문 당선자(제주)는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다 해직됐다 복직됐다. 역시 연임에 성공한 김지철 당선자(충남)는 초대 전교조 충남지부장을 지냈고 2006·2010년 도 교육위원을 지냈다. 김병우 당선자(충북) 역시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이번에 재선됐다.

 전교조 출신이 아닌 4명의 진보 당선자들도 친전교조 성향을 띤다. 4명 모두 교수 출신인데 이 중 조희연(서울)·김석준(부산)·김승환(전북) 당선자는 모두 민교협에서 임원·회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조희연·김석준 당선자는 서울대 사회학과 75학번 동기다. 진보 교육감의 맏형 역할을 해온 이재정(경기) 당선자는 성공회대 총장을 지낸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13일 오후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자가 수원시 팔달구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로부터 축하 꽃다발 받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재정 후보 선거캠프]

13일 오후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자가 수원시 팔달구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로부터 축하 꽃다발 받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재정 후보 선거캠프]

 결과적으로 17개 시도 중 보수가 승리한 곳은 TK(대구·경북) 지역과 ‘현직 프리미엄’이 작용한 대전 3곳뿐이다. 진보 교육감, 특히 전교조 출신들의 권한이 더욱 커지면서 향후 교육정책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더군다나 ‘진보 정권 + 진보 교육감’ 조합으로 교육정책이 편향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엔 정권과 교육감의 철학이 달라 한 쪽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었는데, 이젠 모두 진보여서 한쪽에 치우친 교육정책이 펼쳐지진 않을까 우려 된다”고 말했다.

 당장 교육계 이슈 중에선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선거과정에서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진보 후보들의 상당수는 이 문제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사립고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 접하는 전교조 교사들의 결속력은 매우 크다”며 “전교조 출신 교육감들이 많아졌으니 법외노조 문제부터 해결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전교조. [중앙포토]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전교조. [중앙포토]

 더불어 전교조 출신의 진보 교육감들이 향후 교육부를 끌고 가는 상황이 더욱 많아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진보 교육감들은 국정기획자문위에 외고·자사고 폐지 문제를 건의했는데, 교육부가 이에 따른 후속 조치로 외고·자사고와 일반고의 동시모집 결정을 내렸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부가 교육감에 끌려 다니는 교육감 독주 시대가 펼쳐질 것”이고 전망했다. 이로써 그 동안 진보 진영에서 주장해온 외고·자사고 폐지, 수능 절대평가 전환, 혁신학교 확대 등 정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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