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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PGA 돌풍 일으킨 박성준, 3년만에 US오픈서 복귀

중앙일보

입력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라커룸에서 포즈를 취한 박성준. [성호준 기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라커룸에서 포즈를 취한 박성준. [성호준 기자]

한국 골프계에 박성준(32)은 미스터리같은 인물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인데 2015년 PGA 투어 카드를 따더니 시즌 초인 1월 휴마나 챌린지에서 2위에 올랐다.

5월 그린브라이어 클래식에서는 최종라운드를 공동 선두로 출발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대단한 선수가 출현한 듯 했다. 그러나 대회 마지막 라운드 75타를 치면서 밀려났다. 이후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그 박성준이 3년 만에 US오픈에 나타났다.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시네콕힐스 골프장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박성준의 표정은 밝았고 여유가 있었다.

박성준은 “3년은 뜨겁게, 3년은 차갑게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부터 일본투어, 미국 2부투어, PGA 투어로 도약했다. 3년 연속 비시즌에 Q스쿨을 치르느라 쉬지를 못했다. 2015년 PGA 투어에서 경기할 때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우승 경쟁을 한 그린브라이어 클래식 최종라운드에서는 피니시가 안되더라. 아픈 어깨로 시즌 말까지 무리하게 경기하다가 악화됐고 그 해 말 숟가락을 들기도 어려울 정도여서 메디컬 이그젬션(medical exemption: 몸이 아픈 선수가 일정 기간을 쉬도록 하고 출전권은 유지해 주는 제도)을 냈다”고 말했다.

박성준은 재활을 하다 2016년 1경기, 2017년 2경기에 나갔다. 그러다 왼쪽 어깨까지 다쳤다고 한다. 박성준은 “평생 운동하다가 가만있으려니까 너무나 괴롭더라. 매일 먹던 밥을 먹지 않는 것 같았다. 조급하게 경기에 나서면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기다리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군생활 보다 긴 재활의 시간을 거쳐 한 달 전부터 스윙을 시작했고 지난 4일 US오픈 미국 서부지역 예선에서 3위로 대회 출전권을 땄다. 올해 US오픈 예선은 9049명이 참가해 경쟁률 130대 1의 바늘구멍이다. 박성준이 과거 PGA 투어에서 뛰었지만 2년여를 쉰 선수가 US오픈 참가자격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현 PGA 투어 선수 중에서도 US오픈 참가자격을 얻지 못한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일본에서 함께 뛴 김형성은 박성준을 두고 “공을 똑바로 치며 쇼트게임 재능이 있고 특히 나쁜 것을 빨리 잊어버리는 집중력이 좋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박성준은 “아마추어 때는 옆에 무슨 차가 지나가는 지 다 알 정도로 예민했다. 그러나 요즘은 내가 하는 것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필요 없는 일을 쉽게 잊을 수 있는데 그러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며 웃었다.

US오픈은 가장 어려운 대회다. 박성준은 복귀전이자 자신의 첫 메이저를 US오픈에서 치르게 된다. 박성준은 “일단 어깨가 잘 버텨주는 것이 우선. 그 다음이 성적이다. 골프는 잘 되는 때도 있고 안 되는 때도 있다. 기회가 오면 잡는 것이고 아니면 더 기다리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기가 죽은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대회와 비교해 대회 명칭만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코스가 더 어렵고 출전 선수의 수준이 훨씬 높지만 내 실력에서 가장 좋은 스코어를 낸다면 어떤 대회에서도 우승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성준은 탄도가 낮은 편이어서 바람이 불수록 더 유리할 거라고도 생각하며 운이 좋다면 6언더파 정도를 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박성준은 이런 여유와 자신감으로 긴 재활 기간을 견뎌냈다. 함께 연습라운드를 한 임성재는 "어깨가 아팠다고 하는데 공도 멀리 치고 쇼트게임도 아주 잘 하시는 선배"라고 했다.

박성준은 “고교 2학년 때까지 뉴질랜드에서 유학을 했다. 이후 군에 다녀오고 일본 투어에서 뛰면서 국내 팬들에게 인사할 기회가 적었다. 한국 대회에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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