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아베 총리가 맞이할 진실의 순간 …독일까 약일까 '납치의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2018.06.13 16:43

(질문)CVID도,구체적인 비핵화 검증 방법도 문서엔 없는데.
(답변)“트럼프 대통령이 ‘검증은 할 것이고,프로세스가 시작됐다’고 하지 않았느냐. 회담 한 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문)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보다 회담 개최에만 집착한 것 아닌가. 이게 최선이냐.
(답)“일본에 미사일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은 확실히 없어졌다. 우리나라 안보상의 위험도 이번 회담으로 인해 과거보다 적어졌다.”
(문)작년엔 북한에 대해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이라 하지 않았나. 뭐가 달라졌나
(답)“지금 미사일이 날아온다고 생각하느냐. 실험을 안한다고 명확히 얘기하지 않았나. 핵도 포기한다고 명확하게 얘기했다.”

日 정부 "아베 총리가 전면에 나서 김정은과 직접 대화"
"미사일 안 날아온다"납치 해결 위해 북한 띄우는 일본
'납치 해결사'로 뜬 아베 총리, 납치로 3선고지도 밟나
일 정가 "요코타 메구미 송환 없이는 오히려 독될 수도"

북ㆍ미정상회담 다음날인 13일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그동안 일본 국내외에 익숙한 그의 말은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력 유지”,“완전하고,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 방법을 통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폐기(CVID)가 조건”“북한은 중대하고 긴급한 위협”,“(군사조치를 포함한)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 등 이었다.

 하지만 이날 그의 입에선 북한을 대변하는 듯한 말들이 계속 튀어나왔다.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의 시큰둥한 반응과 달리 일본 정부는 전날 북ㆍ미 합의에 대해 찬사를 쏟아냈다.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북·일간 최대현안인 납치문제를 거론한 것이 계기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완전히 한 배를 탄 뒤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납치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게 아베 총리의 야심이다.

이날 아베 총리와 오찬을 함께 한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김 위원장이 지금까지 ‘납치문제는 이미 끝난 문제'라고 말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그런 반응은 없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일본으로선 아베-김정은 회담을 통해 납치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보고있다.

현지시간 9일 아베 총리가 G7정상회의가 열린 캐나다 퀘벡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현지시간 9일 아베 총리가 G7정상회의가 열린 캐나다 퀘벡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실 납치문제는 과거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이자,아베 신타로의 아들’정도로만 취급받던 아베 총리를 정치적으로 한 단계 성장시킨 테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방북때 관방 부장관 자격으로 수행단에 포함된 그는 평양에서 “납치 문제에 대한 김정일의 사죄가 없다면 북ㆍ일 공동선언 서명없이 무조건 귀국하자”고 고이즈미 총리를 몰아부쳤다.

 결국 두 사람의 대화를 도청한 김정일로부터 납치문제 사과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주가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이후 2004년 북한에서 일시 귀국한 납치 피해자 5명에 대해 “돌려보내선 안된다”라고 주장해 관철시킨 이도 아베였다.  그래서 ‘납치의 아베’로 불리며 2006년 총리직까지 거머줬다.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왼쪽)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과 인사하는 모습. 관방 부장관이었던 아베 신조 총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제공=일본기자단]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왼쪽)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과 인사하는 모습. 관방 부장관이었던 아베 신조 총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제공=일본기자단]

게다가 이번엔 9월 자민당 총재 3선 도전까지 앞두고 있다.
아베-김정은 회담을 성사시켜 납치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푼다면 총재 경선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게 아베 진영의 판단이다.

스가 관방장관은 13일 “아베 총리가 직접 김 위원장과 회담할 용의가 있다. 이제부터는 일본이 전면에 서서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현재 일본 정부가 공식인정한 납치 피해자는 모두 17명이다. 일본 정부는 귀환한 5명을 뺀 12명의 송환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12명 중 8명이 이미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북한에 입국한 적이 없다고 맞서왔다.

북한과 일본은 아베 총리의 재집권 뒤인 2014년 스톡홀름 합의를 맺었다. 북한이 납치 문제 재조사에 나섰지만 이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일본의 제재로 흐지부지됐다.

아베 내각의 기대와 달리 일본 정가엔 “납치문제가 아베 총리에게 꽃길만 깔아주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일본 국민들의 기대수준만 잔뜩 올려놓고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특히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납치 문제 진전 없이 북한에 대한 막대한 경제적 지원에만 나서는 시나리오가 최악이다. 납치 문제가 약이 아니라 독이 되는 케이스다.

1977년 일본 니가타현 해안에서 북한에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당시 13세)의 아버지 시게루 씨와 어머니 사키에 씨가 2005년 딸의 사진을 걸어 놓고 집회에 참석했을 당시의 모습. [지지통신]

1977년 일본 니가타현 해안에서 북한에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당시 13세)의 아버지 시게루 씨와 어머니 사키에 씨가 2005년 딸의 사진을 걸어 놓고 집회에 참석했을 당시의 모습. [지지통신]

현재 일본 정부의 목표는 “재조사를 통해 납치 피해자 전원을 귀국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선 납치 문제의 상징적 존재인 요코타 메구미(橫田 めぐみ·77년 실종 당시 13세)가 차지하는 존재감이 너무 큰 것이 아베 총리에게도 부담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주 미ㆍ일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을 찾았을때도 “아름다운 항구마을 니가타(新潟)에 설던 불과 13세 소녀가 북한에 납치된 지 41년이 지났다. 가족들은 오로지 그의 생환 하나만을 바라며 기다려왔다. 양친은 고령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호소했다.

북한이 “이미 1994년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요코다 메구미의 생존이 확인되거나 이에 필적하는 반전 드라마가 없을 경우 “납치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뿐 결과적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아베 총리에게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일본 정가 일각에선 “그동안 아베 총리가 북한과의 대화에 소극적이었던 건 재조사를 하더라도 납치문제의 진전이 어렵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니냐”는 정체불명의 소문까지 돌고 있다.

납치문제로 성장한 아베 총리,납치 문제 해결의 적임자로 그를 지지해온 일본 국민들이 대면할 납치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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