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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나꼼수식 ‘깨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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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들어 사실상 지상파 TV와 라디오를 접수한 ‘나꼼수’ 멤버 중 한 사람인 주진우가 올 초 KBS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여기서까지 같이 출연하는 연예인을 은근히 깔아 보는 투로 “사회에 대한 생각이 깨어 있지 않으면 가까워지기 어렵다”고 한껏 폼을 잡았다. 전지적 시점으로 ‘나는 깨어 있으니 무지한 대중은 어서 깨어나라’는 식으로 온갖 이슈에 발언하며 침묵을 조롱하던 그가 돌연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대권까지 꿈꾸는 정치인 이재명과 배우 김부선의 엇갈린 주장 사이에서 기자 주진우가 취재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서건 진실을 덮는 개입을 한 게 그와 친했다던 소설가 공지영의 폭로로 드러난 뒤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본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공지영의 발언이 맞다 틀리다 딱 한마디만 올리면 될 것을, 굳이 다른 나꼼수 멤버 김용민의 팟캐스트 뒤에 숨어 ‘진실을 모른다는 게 진실’이라는 황당한 발언을 찔끔 내놨다. 그렇게 ‘침묵하지 말고 깨어나라’며 사회적 발언을 부추기던 그의 다문 입을 보면서 나꼼수식 ‘깨어 있는 생각’이 일반적 상식과 많이 달랐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는 사람이 많다.

일반적으로 ‘깨어 있는 생각’이라고 하면 나의 이념이나 진영, 성별과 무관하게 사회정의라는 관점에서 갖게 되는 문제의식을 말한다. 하지만 ‘깨어 있는’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나꼼수 같은 사람들에겐 끼리끼리 감싸주고 내 편이 아니면 황당한 유언비어라도 동원해서 사회에 불만을 퍼뜨리는 걸 의미했나 싶다. 세월호 사건 당시 왜 구조하지 않았느냐며 사고를 살인으로 몰아가고 대통령 탄핵 국면에선 박근혜의 섹스 동영상이 터질 것이라며 황당무계하고 저질스러운 소설을 쓰더니, ‘진실을 모르는 게 진실’이라는 궤변으로 진실 앞에서 침묵을 택한 걸 보면 말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사회적 정의에 대한 민감도(wokeness),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깨어 있는 생각’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모든 문제를 극단적으로 과장하면서 증오를 부추긴다고 걱정했다. 이런 사람들의 선동대로 움직이고 발언하지 않으면 유아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탓에 사회적 병폐가 해결되기보다 오히려 굳어진다고도 했다. 딱 나꼼수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도 이런 ‘깨어 있는 시민’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이번 선거는 뜻밖의 스캔들로 나꼼수식 ‘깨어 있는 시민’(깨시)의 실체가 대중에게 드러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