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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맺은 40년 우정, 유쾌한 미술관으로 오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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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격조' 주재환(오른쪽) 작가와 '품격' 김정헌 작가가 2인전 '유쾌한 뭉툭'이 열리는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 앞에서 만났다. 시종일관 농이 오가는 유쾌한 자리다. 정재숙 기자

'격조' 주재환(오른쪽) 작가와 '품격' 김정헌 작가가 2인전 '유쾌한 뭉툭'이 열리는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 앞에서 만났다. 시종일관 농이 오가는 유쾌한 자리다. 정재숙 기자

1980년 ‘현실과 발언’ 동인 시절부터 묵묵히 서로를 지지해온 두 화가 주재환(78) 김정헌(72)씨가 뭉쳤다. 10일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막을 올린 ‘유쾌한 뭉툭’(7월8일까지)은 두 사람이 40년 가까이 공유해온 가치를 확인하는 동시에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의 같고 다름을 견주어보는 2인전이다. 화단에서 ‘유쾌한’ 주 선생과 ‘뭉툭한’ 김 선생으로 통할만큼 허물없이 선후배들과 어울리는 성격 덕일까. 전시장을 찾은 이들은 왁자지껄 명랑 분위기에 바로 전염된다.

“오랜만이요, 주격조 선생.” “어이, 김품격 선생 반가워요.” 서로를 ‘격조’와 ‘품격’이라 부르는 두 주인공은 시종일관 농을 주고받으며 출품작 품평에 나섰다. 옛 여관 자리를 되살려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기에 웬만한 그림이 걸리면 풀이 죽을 만큼 기가 센 터이지만 에너지 넘치는 두 작가의 작품은 묘하게 어울리면서 오히려 힘을 얻는다.

주재환(왼쪽) 작가와 김정헌 작가는 "남북의 새날을 맞아 우리 미술도 더욱 힘차게 밀어나가자"고 말했다. 정재숙 기자

주재환(왼쪽) 작가와 김정헌 작가는 "남북의 새날을 맞아 우리 미술도 더욱 힘차게 밀어나가자"고 말했다. 정재숙 기자

“주격조 선생은 옆에 비켜 앉아 가끔 한마디씩 던지는데 대개 촌철살인이지. 그림도 파격이야. 오랫동안 출판사 편집 일을 맡아 한 이력이 밑천이 된 ‘편집미술’이 일품이지. 껌딱지 같은 꾀죄죄한 폐품들을 소재로 한 이른바 ‘1000원 예술’은 내공이 쌓여 들여다볼수록 우주를 품고 있어요.”(김정헌)
“내가 비좁은 울타리에서 헤매고 있을 무렵 대형전시와 문화사업을 구상하고 밀어붙이는 김품격의 역량이 돋보였지. 흥이 나면 얼쑤 어깨춤, 통 크게 술값 쏘는 걸출한 품격의 사내 정헌이여. 남북의 새날을 맞아 더욱 힘차게 나아가시게나.”(주재환)

주재환씨는 육십 나이가 되도록 전시회 한 번 열지 않았는데 결국 후배 몇이 등을 떠밀어 회갑 무렵에 연 개인전 제목이 ‘이 유쾌한 씨를 보라’였다. '광대형 작가'라 자임하는 그는 저자거리에서 누구나 어깨 겯고 '다 같이 차차차'를 부르고 싶은 그림을 지향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타이틀매치: 주재환 vs 김동규’ ‘주재환‧성능경 2인전 도르래미타불’을 잇따라 열며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으니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노자(老子) 말씀은 주격조 선생을 위한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김정헌씨는 역사 속 인물을 오늘로 불러내 현실 비판적 메시지를 담는 작품에 매진해왔다.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9가지 기억 등 서사미술의 이미지를 진부하지 않게 불러내는 솜씨가 좋았다. 정작 그는 때와 장소를 근거로 해 치러냈던 작업이 ‘과제미술’처럼 여겨진다며 회한에 잠겼다. 그럼에도 자신의 작품 ‘미술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옆에 서서 “아무렴, 그래도 계속 그려야지” 했다.

주재환(오른쪽) 작가는 '편집미술', 김정헌 작가는 '서사미술'을 선보였다. 정재숙 기자

주재환(오른쪽) 작가는 '편집미술', 김정헌 작가는 '서사미술'을 선보였다. 정재숙 기자

이번 2인전의 핵심은 일종의 ‘동료 비평’이다. 두 작가의 한참 후배들인 강신대, 이우성, 홍진훤씨가 각기 퍼포먼스, 오디오가이드, 웹사이트 세 가지 색다른 형식으로 대선배들의 작품을 평한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젊은 비평가들 앞에서 주재환씨는 "사람은 누구나 외로워, 관계는 노력하는거야. '당신 생각은 그렇군요'라고 말할 줄도 알아야지"라며 오히려 반가워했다. “민중미술에 대한 막연한 칭송이나 근거 없는 비판에서 비롯되는 지루함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박수지 큐레이터의 기획의 변이 신선하다. 주격조 선생은 취재수첩을 들고 그림 앞을 오락가락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 형, 거 후라이 까지 말고 좀 쉽게 써. 목에 힘 빼고 말이야.”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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