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내셔널] 동네골목이 오페라 무대로…주민들이 만드는 '사랑의 묘약'

중앙일보

입력 2018.06.13 00:01

들어보시오! 인류의 구원자요, 만병통치자. 며칠 있으면 대구의 모든 병원이 텅 빌 거요. 온 세계에 건강을 팔죠. 치통에 특효약이요. 곤충을 박멸하고, 허약한 70세의 노인이 다산왕이 되었죠. 아니 앞으로 10명은 더 가능합니다. 애인을 항상 곁에 두고 싶소? 특별히 싸게 드릴 테니 이 약을 사세요. (약장수 태현의 '들어보시오' 아리아 中)

카페 ‘선댄스팜’의 바리스타 병룡은 옆 건물에서 B갤러리를 운영하는 큐레이터 지은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지은은 병룡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병룡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던 중 헬스 트레이너인 봉석이 나타나 지은에게 프러포즈한다. 병룡이 안절부절못하던 그때 사이비 약장수 태현이 등장한다. 태현은 병룡에게 자신이 파는 사랑의 묘약을 마시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한다. 이를 믿은 병룡은 헬스 트레이너 봉석에게 돈을 빌린 뒤 사랑의 묘약을 산다….

제2회 방천골목오페라를 앞두고 이병룡 성악가가 '사랑의 묘약'의 아리아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선보이고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제2회 방천골목오페라를 앞두고 이병룡 성악가가 '사랑의 묘약'의 아리아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선보이고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골목에서 오는 16일 오후 8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아리아가 골목길을 가득 메운다. 14~16일 3일간 열리는 제2회 방천골목 오페라 축제의 피날레 공연이다. 카페 선댄스팜의 야외무대에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다.

‘사랑의 묘약’은 가에타노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가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의 대본을 바탕으로 작곡한 오페라다. 원래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시골이 배경이지만 제2회 방천골목 오페라 축제에서는 대구 방천골목으로 무대가 바뀐다.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야외에서 진행하는 실경오페라로 국내에서는 지난해 1회에 이은 두 번째 시도다.

제2회 방천골목오페라 공연을 위해 연습 중인 주민들과 성악가들. [사진 방천골목오페라추진위원회]

제2회 방천골목오페라 공연을 위해 연습 중인 주민들과 성악가들. [사진 방천골목오페라추진위원회]

야외 오페라인만큼 골목 건축물을 그대로 활용했다. 주인공들도 골목 분위기에 맞춰 직업을 바꿨다. 네모리노 역의 병룡은 원작에서는 성실한 농부지만 대구에서는 선댄스팜 카페 바리스타다. 농장주의 딸인 아디나 역의 지은은 큐레이터가 됐다. 지은에게 고백하는 헬스트레이너 봉석은 원작에서는 하사관이다. 주로 무대를 이끌어 가는 약장수만 역할이 동일하다. 대신 약장수 태현은 아리아를 불어가 아닌 한국어로 각색해 부른다. 오페라를 보러오는 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본인이 직접 가사를 고민해 바꿨다.

주요 배역은 성악가들이 맡았지만, 뒤에서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 30명은 대구시민들이다. 지난해 1회 오페라에서 주최 측은 방천골목 주민들로만 합창단을 구성했다. 올해는 지원자들이 많아 대구시민들 중에서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다. 합창단원들은 16일 공연을 위해 연습 중이다.

제2회 방천골목오페라 공연을 위해 연습 중인 주민들과 성악가들. [사진 방천골목오페라추진위원회]

제2회 방천골목오페라 공연을 위해 연습 중인 주민들과 성악가들. [사진 방천골목오페라추진위원회]

올해 방천골목오페라 축제에서는 본 공연에 앞서 아마추어 성악가를 뽑는 경연대회도 진행한다. 야외에서 관객이 참여하는 칸초네 경연대회는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대구 중구 김광석소극장에서 14일 예선을 거친 뒤 15일 오후 7시 선댄스팜 야외무대에서 본선이 진행된다. 본선이 끝나고 이날 오후 8시부터 갈라 콘서트 및 가든파티가 열린다.

김상환 방천골목오페라추진위원회 위원장과 이현 총감독 등은 지난해 4월 함께 저녁 식사자리에서 작은 오페라를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했다. 처음엔 김광석 거리의 작은 콘서트홀에서 시작해보자고 했지만, 요리사이자 방천골목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던 김 위원장이 주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골목 오페라를 제안했다. 두 달 만에 제1회 방천골목 오페라 축제가 열렸다. 주민들이 모여 오페라 '카르멘'을 선보였다.

제1회방천골목오페라. [사진 방천골목오페라추진위원회]

제1회방천골목오페라. [사진 방천골목오페라추진위원회]

김 위원장은 "혹시 비가 올까 걱정하는 분도 계신다. 그런데 비 맞으면 좀 어떤가 싶다. 그저 멀게만 느껴졌던 오페라를 골목에서 주민들과 함께 즐기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번 기회를 통해 방천골목 오페라를 즐거운 마을 문화로 함께 키워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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