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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생과 멸의 변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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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오늘이 가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리’. 지난번 소개한 필자의 장모가 쓴 시(詩)다. 병상에 누운 장모는 그 말을 평생 발설하지 않았을 게다. 시인이므로. 발설과 함께 사랑의 묘심(妙心)이 증발해버림으로. 그런데 선거 하루 전, 보수정당 정치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사랑했다고 말하라’. 내일이면 궤멸(潰滅)이다. 아니 전멸(全滅)이다. 아예 소멸(消滅)되기 전에 작별의 말이라도 남겨라. 그래야 먼 훗날 환생을 기약할 수 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유권자발(發) 사약(賜藥)을 피할 수 없는 오늘, 늠름한 유언이라도 남겨야 한다.

지방선거의 ‘박멸 투표’ 분위기 #북·미 회담 역시 생과 멸의 변주 #정상들 결단해 문명국가로 가야 #보수 야당도 오늘 가기 전 말하라 #사랑했으나 오만한 방식이었다고

선거는 사약 아니면 어사화(御賜花)다. 냉혹하다. 사 년 후 어사화를 다시 목에 걸지 의문이다. 표심이 돌개바람처럼 불어닥친다. 박근혜를 응징하는 집단심이 저리도 뼈 시리게 몰아치는 초여름에 작약 꽃 빨간 휘장에 무릎 꿇고 읍소해봐야 돌아오는 건 차디찬 눈초리뿐. 환국의 엇갈린 운명을 위무하듯 흐르는 한강에 투신하지도 못했고, 입에 발린 ‘석고대죄’의 모양새도 흉내 내지 못한 보수 야당을 누가 품어 주랴. 기초단체장이야 약간 뒤뚱거려도 지방선거의 꽃인 광역단체장은 세 곳 빼고 거의 전멸이다. 오늘 변란이 일어나도 표심은 끄떡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좀 이상하기는 하다. 드루킹 사건의 중심에 선 경남지사 김경수 후보의 고공행진은 그렇다 치고, 쌍욕과 패륜 혐의를 뒤집어쓴 경기지사 이재명 후보를 결사 옹립한다는 그 지독한 응징 표심이 말이다. SNS를 도배한 격분의 고발장을 그냥 괴서와 괴담으로 환치하고야 마는 유권자들의 결연한 표심은 분명 박근혜에게서 받은 치명적 화상(火傷)이 근원일 터, 그렇게라도 해독하고 싶은 심정이야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직선적 삶을 원하는 오십 줄 여배우의 절박한 토로, 딸의 가슴 저린 고백, 거짓과 기만이라면 단기필마로 돌진하는 공지영 작가의 폭로를 한낱 에피소드로 비하하는 섬멸(殲滅)의 표심은 결국 보수 정권의 해독제도 아니고 진보 정권의 생명수도 아님을 깨닫기에는 하루해가 짧다. 생(生)과 멸(滅)의 변주, 그 운명은 동정투표, 연민투표도 아닌 ‘박멸(撲滅)투표’로 마감될 공산이 크다.

송호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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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10시에 개막될 북·미 정상회담 역시 생과 멸의 변주다. ‘거지국가’ 북한이 ‘부자국가’ 미국의 상대가 될까 낙관하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핵보유국 간 담판은 문법이 전혀 다르다. 미국 하버드대 그레이엄 엘리슨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핵무기만은 예외다’고 썼다(『예정된 전쟁』).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효과 때문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덤비면 대책이 없다. 핵 개발에 올인하던 김일성이 미국의 핵 보복을 걱정하자 참모가 말했다. ‘그러면 지구를 깨뜨리면 되지요!’ 공화국이 없는 지구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그 야만적 아첨에 김일성은 충만한 웃음을 날렸다(『태영호 증언』).

엘리슨이 말한다.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 마주 앉은 부자 미국과 거지 북한은 분리 불가능한 샴쌍둥이라고. 등뼈가 서로 붙은 한 몸, 지구를 깨뜨리자고 덤비면 함께 죽는 길밖에 없다. 공멸(共滅)이다. 전함에 육탄 돌격한 가미카제 특공대, 폭탄 조끼를 입고 자폭하는 이슬람 전사에겐 트럼프 특유의 화법, ‘너, 해고야!’가 가능하지만, 상호확증파괴를 무릅쓰는 핵탄두 자멸(自滅) 공격엔 아무 효력이 없다.

뜻밖에 멀리 오긴 했다. 자멸에서 생존으로 선회한 김정은의 돌연한 변심이 좌충우돌 트럼프의 뚝심을 핵 담판의 세기적 문법으로 격상시켰다. 몇 시간 후면 밝혀질 거다. 정전협정, 비핵화, 체제보장, 경제지원 패키지가 일괄 타결된다면 ‘절멸 관계의 샴쌍둥이’는 공생의 집으로 주소를 옮긴다. 한국이 집주인이면 오죽 좋으랴만, 남·북·미 삼국협상은 아직 미지수, 신생(新生)을 확증하기엔 중국과 러시아의 눈초리가 매섭고, 변방을 맴도는 일본의 푸념도 성가시다.

담판과 선거의 공통점은 마음의 결단이다. 센토사 섬의 두 주역은 미국과 북한, 남한과 북한을 멸(滅)에서 생(生)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온갖 계산을 다 할 것이다. 불가역적 비핵화와 종전협정은 한반도를 이른바 ‘문명국가’로 진입시키는 입구다. 역으로 내일의 선거는 보수 야당을 생에서 멸의 극한지대로 내치는 출구다. 민주화 30년 만에 견제력이 소멸된 민주주의가 탄생할까 걱정이긴 하다. 생과 멸의 엇갈린 변주가 예상되는 오늘, 공생의 한반도 정치에 훗날 조금이라도 끼고 싶다면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오늘이 가기 전에 말하라. ‘사랑했다’고, 그러나 ‘사랑의 방식이 오만했다’고. 누가 알랴, 아직 큰 부피로 남아 있는 부동층이 동정과 연민을 보내 겨우 소생할지.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