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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타일] 80년대식 낡은 빌라를 프랑스 농가 풍으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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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옆집에 가다 │ 공간디렉터 최고요씨 집 

셀프 인테리어 블로그를 운영하다 본격적인 공간디렉터로 일하게 됐다는 최고요씨. 두 마리 고양이와 사는 이 집도 그가 직접 꾸민 것이다. [변선구 기자]

셀프 인테리어 블로그를 운영하다 본격적인 공간디렉터로 일하게 됐다는 최고요씨. 두 마리 고양이와 사는 이 집도 그가 직접 꾸민 것이다. [변선구 기자]

“큰 집으로 이사 가면, 내 집이 생기면…예쁘게 꾸며야지.” 멋진 집을 보며 흔히 하는 다짐이자 소망이다. 공간디렉터 최고요(34)씨는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살고 있는 공간을 원하는 대로 꾸며보라”고 조언한다.

옛집 느낌 살리는 인테리어 주력 #강화마루 깔고 유럽식 샹들리에 #주방·서재 등엔 아기자기한 소품 #“거창한 데 산다고 꼭 행복하나요”

최씨는 대학시절부터 예쁜 집에 살았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호주 유학시절에는 도심의 좁은 원룸 대신 외곽으로 나가 같은 비용으로 방 4개, 거실 2개, 마당도 있는 큰 집을 빌렸다.  4~5명이 함께 나눠 쓰는 쉐어하우스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이다. 덕분에 공유 공간인 거실은 최씨가 원하는 대로 커다란 빨간 소파와 얼룩말 패턴 카펫으로 멋을 낼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원룸·옥탑방·오래된 빌라 등 주로 작은 공간에 살았지만 그때마다 최씨는 상황에 맞춰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집을 꾸몄다고 한다. 드레스 룸이 가지고 싶어서 원룸 중앙에 옷장을 놓은 적도 있다. “저렴한 옷장이라 옷장 뒤쪽이 형편없이 얇은 합판이었는데 거기에 미송 합판을 덧대 그럴싸한 벽이 되도록 했죠.” 옷장 뒷면을 벽 삼아 테이블을 놓고, 옷장을 파티션처럼 활용한 것이다.

비싼 프랑스 앤티크 소품들과 바닷가에서 주운 돌멩이, 마른 꽃 등을 섞어 집안 곳곳을 장식했다.

비싼 프랑스 앤티크 소품들과 바닷가에서 주운 돌멩이, 마른 꽃 등을 섞어 집안 곳곳을 장식했다.

최씨는 인테리어 아이디어들을 주로 인터넷 검색으로 얻는다고 했다. 핀터레스트(pinterest)에 ‘Small House’ ‘House Division’ 등의 검색어를 넣으면 멋진 공간 활용 사진들이 속출한다. 텀블러(tumblr)와 아임낫워디(imnotwordy)도 최씨가 애용하는 사이트다. “맘에 드는 공간 사진을 스크랩하다 보면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낼 수 있죠.”

최씨가 현재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은 나무 판을 댄 천장과 나무 창틀이 1970~80년대식 그대로 남아 있는 오래된 집이다. 부동산에서 집을 보여주며 “새로 고쳐줄 테니 감안하고 보라”고 했지만 최씨는 괜한 리모델링으로 오래된 집 특유의 모습이 사라질까 안타까워 오히려 ‘집을 고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집을 계약했다고 한다. “구조도 맘에 들었어요. 방이 3개인 데다 주방과 거실이 ㄱ자로 꺾여서 분리돼 보이는 구조가 좋았죠. 요즘 짓는 집들은 대부분 주방과 거실을 일렬로 배치해 공간은 넓어 보이지만 시야가 차단되지 않아 어수선한 면도 있거든요.”

최씨는 대대적인 공사를 하는 대신 옛날 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쪽으로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바닥에 강화마루를 깔고, 벽지는 하얀색으로 통일했다. 낡은 나무 창틀과 방범창은 그대로 두었다. 거실 천장의 나무판도 그대로 두고 조명은 유럽식 샹들리에로 바꿨다. 현관의 유리 조명은 오래된 느낌이 좋아 그대로 뒀다. 주방의 그릇장은 저렴한 소재를 골라 맞춤제작하고, 상판은 나무 소재로 힘을 줬다. 신발장과 현관문은 젯소(페인트의 발색을 위해 미리 칠하는 흰 물감)를 바르고 직접 칠했다. 집의 빈티지한 분위기와 어울리도록 주방·서재·욕실 등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놓을 수 있는 선반을 설치했다.

비싼 프랑스 앤티크 소품들과 바닷가에서 주운 돌멩이, 마른 꽃 등을 섞어 집안 곳곳을 장식했다.

비싼 프랑스 앤티크 소품들과 바닷가에서 주운 돌멩이, 마른 꽃 등을 섞어 집안 곳곳을 장식했다.

덕분에 최씨의 오래된 18평 빌라는 프랑스 농가 분위기가 난다. 가구와 소품의 출처를 물으니 다양한 가격대의 물건이 섞여 있다고 했다. 소파 앞의 동그란 사이드 테이블은 겨우 1만5000원이다. 오래 쓸 식탁은 가격이 좀 있는 빈티지 가구로, 수납장은 저렴한 것으로 구입했다. 소품 역시 프랑스 벼룩시장에서 구해온 앤티크 제품들과 바닷가에서 주워온 나뭇가지, 엄마가 써준 편지 등을 어울리게 진열했다. 옷 잘 입는 멋쟁이들이 가방과 코트는 좋은 것을 사고 티셔츠는 저렴한 것을 사는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예쁜 물건을 발견해도 어디에 놓을지 떠오르지 않으면 사지 않아요.” 맘에 드는 물건을 사 모았다가 짐이 됐던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다.

최씨는 호주에서 돌아와 벌써 다섯 번째 이사를 했지만 “낯선 동네, 낯선 집으로 이사 다니기가 하나도 두렵지 않다”며 “오히려 새로운 공간을 꾸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다”고 했다.

그녀는 어디서든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공간 철학을 담아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휴머니스트)라는 책도 썼다. 자신의 집을 꾸미는 과정을 블로그에 하나씩 기록했는데 ‘작은 집도 이렇게 할 수 있냐’며 사람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사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등의 질문에 열심히 답하고 도면까지 그려주다 그 기록들을 책으로 엮게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공간디렉터로서 사무실도 냈다. 그동안 전주의 게스트하우스, 배우 송재림의 아파트, 오금동·성북동의 작은 카페 등을 맡아 진행했다.

최씨는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라며 “언제라도 생각이 났을 때 바로 실천하고 작은 행복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이나래(프리랜서) wingn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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