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감 투표용지만 번호도 없고 후보 배열 다를까

중앙일보

입력 2018.06.11 15:30

업데이트 2018.06.11 16:46

지난 9일 사전투표소를 찾은 이은희(65·경기도 성남시)씨는 자원봉사자가 건네준 투표용지를 살펴보다가 한 장이 잘못 인쇄된 것처럼 보여 깜짝 놀랐다. 도지사와 시장, 시·도의원 등을 뽑는 6장엔 후보자의 이름이 세로로, 즉 위에서 아래로 배열돼 있었다. 하지만 교육감 투표용지에는 후보자가 가로로, 즉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배치돼 있었다. 게다가 교육감 후보 이름 옆에는 번호도 없었다. 이씨는 “지지하는 정당의 번호에 맞춰 쭉 투표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교육감 투표용지를 보고 당황했다. 어떤 후보를 찍어야 할지 몰라 대충 투표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사용되는 교육감 투표용지. 후보자 이름이 가로로 배열돼, 다른 선거의 투표용지와 다르다. [중앙선관위]

올해 지방선거에서 사용되는 교육감 투표용지. 후보자 이름이 가로로 배열돼, 다른 선거의 투표용지와 다르다. [중앙선관위]

8, 9일 양일간 6·13 전국동시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마친 일부 유권자에게서 “교육감 투표용지 때문에 당황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당의 기호 순서에 맞춰 후보자의 이름이 세로로 배열된 다른 용지와 달리 교육감 투표용지에는 후보자의 이름이 가로로 배치돼 있다.
인천 서구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김연주(52)씨도 “교육감 후보 배열 순서도 시장이나 구의원 후보처럼 정당별 순서인 것으로 생각하고 찍었다”며 “투표를 마치고 확인해보니 그게 아니더라. 13일에 투표하는 유권자는 교육감만큼은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외우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6·13 지방선거 사전투표 둘째날인 9일 전북 익산시 남중동 사전투표소인 남중동 행정복지센터에서 한 시민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기표소 앞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뉴스1]

6·13 지방선거 사전투표 둘째날인 9일 전북 익산시 남중동 사전투표소인 남중동 행정복지센터에서 한 시민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기표소 앞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뉴스1]

시장·도지사 등 다른 선거 후보와 달리 교육감 후보자 이름을 가로로 배열한 것은 2014년 6회 지방선거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당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교육감 선거 투표용지의 후보자 이름 배열을 기존의 세로 나열식에서 가로 나열식으로 바꿨다.

여기에 더해 교육감 후보 이름 배열 순서를 기초의원 선거구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하는 교호순번제도 도입했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기초의원 선거구에 따라 서울교육감 투표용지에서 후보 이름 배열 순서가 제각각이 되도록 한 것이다.

서울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종로-가 선거구 유권자들은 조희연·조영달·박선영 순서로 된 교육감 투표용지를 받는다. 반면에 종로-나 선거구 유권자들은 조영달·박선영·조희연 순서로 기재된 투표용지를 받는다.

교육감 선거 투표용지. 선거구별로 후보자의 이름 기재 순서가 다르다. 첫 선거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후보자는 다음 선거구에서 맨 뒤에 배치되고, 첫 선거구에서 두번째 기재된 후보자가 다음 선거구에서는 가장 먼저 배치되는 교호순번제를 택하고 있다. [중앙선관위]

교육감 선거 투표용지. 선거구별로 후보자의 이름 기재 순서가 다르다. 첫 선거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후보자는 다음 선거구에서 맨 뒤에 배치되고, 첫 선거구에서 두번째 기재된 후보자가 다음 선거구에서는 가장 먼저 배치되는 교호순번제를 택하고 있다. [중앙선관위]

교육감 투표용지에 가로나열식, 교호순번제가 도입된 것은 후보별 기재 순서에 따라 특정 후보가 반사 이익을 누리는 등의 역효과를 막고 선거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정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후보가 소속 정당 없이 선거를 치른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선 일부 유권자들이 첫 번째 후보를 여당, 두 번째 기재된 후보를 제1 야당으로 착각해 이들에게 표를 몰아주는 '로또 선거' 부작용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선거 방식이 또다른 '로또 선거'를 부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권자 이지연(45)씨는 “지방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의 공약을 훑어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교육감 선거는 후보별 소속 정당이 없어 어떤 성향의 후보인지 모른 채 깜깜이로 찍게 된다”고 말했다.

교육감 선거를 제외한 다른 선거의 투표용지는 정당 기호와 정당 이름, 후보자 이름 순서로 기재돼 있다. [중앙선관위]

교육감 선거를 제외한 다른 선거의 투표용지는 정당 기호와 정당 이름, 후보자 이름 순서로 기재돼 있다. [중앙선관위]

법적으로 교육감 후보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향하지만, 실제 선거 운동에선 특정 정당과의 친근성을 내비치는 현실에 대해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감 후보들이 말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외치면서도 소속 정당이 분명한 시장·도지사 후보들과 공동 유세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자가당착(自家撞着)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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