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기, 시진핑 전용기, 참매 1호 … 3대 함께 띄워 연막작전

중앙일보

입력 2018.06.11 01:29

업데이트 2018.06.11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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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탑승한 에어차이나 항공기가 10일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접근하는 모습을 시민들이 촬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탑승한 에어차이나 항공기가 10일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접근하는 모습을 시민들이 촬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로 오면서 이용한 비행기는 자신의 전용기인 ‘참매 1호’가 아니라 중국 민항기인 에어차이나(중국국제항공·CA) 여객기였다.

김정은, 왜 에어차이나 타고 갔나
북, 747면허 없어 중국 조종사 운항
한때 “위원장 목숨 못 맡긴다” 갈등

트럼프와 기싸움·안전 고려한 선택
“중고차 대신 대형 렌터카 고른 셈”
불시착·공격 우려, 중국 영공 통과

이를 두고 ▶북한이 ‘최고 존엄’인 김정은이 외국 항공기를 빌려 탄다는 체면 손상과 ▶외국 비행기 활용 시 도청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안위를 최우선적으로 감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이날 보잉 747-400 기종 한 대(B-2447)를 내줬다. 평소 CA가 여객기로 활용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전용기로 사용하는 두 대 중 하나다. 중국은 이를 위해 지난달부터 해당 기종의 운항을 중단하고 개조한 뒤 지난 8일 베이징-평양 노선에 투입해 시험운항을 거쳤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 전용기 참매 1호.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위원장 전용기 참매 1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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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이 전용기로 사용하는 ‘참매 1호’의 운항 거리는 제원상 9200㎞다. 또 2000년대 초반에 도입한 투볼레프(TU-204-300) 여객기(보잉 737급)도 보유하고 있다. TU-204의 운항거리는 6500㎞로 평양~싱가포르 거리(4800㎞)의 1.5배를 날 수 있다. 2016년까지 싱가포르와 국경을 접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까지 직항을 운영했다. 이론적으로는 일각에서 제기했던 ‘항공 안전상 직항이 어렵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북한이 중국의 대형 항공기를 동원한 건 궁금증을 낳는다. 북한과 중국은 지난달부터 시진핑 주석이 전세기로 사용하는 항공기를 제공하는 문제를 협의해 왔다고 한다. 참매 1호가 싱가포르까지 운항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보다 안전한 방법을 찾으려는 차원이란 추정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자는 “항공기는 비행시간에 따라 부품을 교체하기 때문에 운항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중국 항공기가 더욱 안전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최고 존엄’의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는 속성상 김 위원장의 첫 서방 세계 나들이에 보다 안전한 방안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참매 1호는 130여 명을 태울 수 있지만 전용기로 개조하면서 탑승 인원은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때문에 공식 수행원과 경호원, 경호 장비를 싣기엔 역부족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맞짱’을 앞둔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차원일 수도 있다. 각국의 전용기는 국력을 상징하고, 자존심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어포스원(1)이라 불리는 미 공군 1호기를 이용한다. 첨단 통신 및 방호 장비를 갖춘 2대의 항공기가 다닌다. 반면 김 위원장이 한참 뒤떨어지는 참매를 타고 등장한다면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참매 1호엔 회담 지원 인력과 통신 기술진 등이 탑승했고, 김정은보다 3시간 정도 먼저 도착한 화물기(IL(일류신)-76)엔 김정은의 전용 방탄차와 전용 화장실이 수송됐을 가능성이 있다.

외교의전을 담당했던 전직 당국자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하듯 외교에서 의전은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며 “중차대한 협상장에 소형 중고 자동차를 타고 등장하는 것과 렌터카라도 대형 승용차 뒷좌석에서 내리는 건 마음가짐이 다른 것 아니겠냐”고 비유했다. 위축되거나 주눅이 들지 않기 위한 차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려고 하는 중국의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번 북·미 회담 진행 과정에서 줄곧 정전협정 당사국으로서 역할을 강조해 왔다. 그런 만큼 자신들이 직접 회담장에 나서지는 않더라도 우방국인 북한에 시 주석의 전용기를 내준 것은 그 무엇보다 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존재감과 역할을 과시한 것일 수 있다.

다만 북한이 김정은의 목숨을 중국 조종사에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실무협의에서 진통이 있었다고 한다. 항공기는 기종별로 면허가 있는데 북한에는 해당 면허가 있는 조종사가 없어 중국인 조종사가 조종을 맡아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북한은 김정은의 싱가포르행에 겹겹의 연막작전을 폈다.

우선 에어차이나 CA122편이 이날 오전 8시30분(북한 시간 기준)쯤 평양 공항에서 출발했다. 이 비행기는 처음엔 목적지를 베이징으로 알렸다가 베이징에 인접해 갑자기 CA61로 편명을 변경한 뒤 기수를 내륙으로 돌려 오후 3시30분(한국 시간 기준)쯤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했다. 정작 김정은의 전용기 참매 1호는 에어차이나 여객기보다 1시간쯤 뒤 평양 상공을 날아올랐다. 전세계 항공기 궤적을 알려주는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다24’ 화면엔 출발지가 평양 순안공항, 도착지가 싱가포르 창이 공항으로 나타났다. 참매 1호는 CA기보다 약 한 시간 뒤에 창이 공항에 착륙했다.

이처럼 참매와 747기를 함께 띄운 것은 김정은이 어디에 타고 있는지 베일에 가리게 해 경호상 안전을 도모하려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 영공을 가로지르는 항로를 택한 것 역시 불시착이나 외부의 공격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김정은이 중국 대륙 상공을 지나는 동안에는 중국 공군이 경호 비행을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 정상급이 자국 영공을 통과할 때는 적당한 거리에서의 경호 비행을 통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국제 관례다. 국빈 방문의 경우에는 자국 전투기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외국 정상의 전용기와 나란히 비행하는 의전을 베풀기도 한다.

싱가포르=예영준 특파원, 정용수 기자 yyjune@joonag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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