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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거부당하는 청년·장애인 이웃 … 그래도 희망을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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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의 사회탐구

청년 단체 ‘민달팽이 유니온’ 회원 등이 지난달 17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주거난 해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같은 때 근처에서 서울 성내동 주민들이 청년임대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뉴시스]

청년 단체 ‘민달팽이 유니온’ 회원 등이 지난달 17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주거난 해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같은 때 근처에서 서울 성내동 주민들이 청년임대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뉴시스]

지난 4월 서울 당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인근에 들어설 ‘청년임대주택’ 건립에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임대아파트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아파트 안에 붙인 안내문에는 ‘5평짜리 빈민아파트’ ‘아파트 가격 폭락’ ‘빈민지역 슬럼화’ ‘우범지역화 우려’ 등의 표현이 들어 있었다. 지난달 중순엔 서울 성내동에서 주민들이 청년임대주택 설립을 막아서는 집단행동을 시작했다. 지난달 말 대구 중리동의 한 빌라에서는 장애인들이 입주한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집 내부 공사를 못 하도록 주차장을 차량으로 봉쇄하고 엘리베이터 운행을 중단시켰다. 이 세 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리고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같이 좀 살자”는 사람들과 “왜 하필 여기냐”는 사람들이 맞서 있는 현장을 지난 7일과 8일에 살펴봤다.

청년 주거난 덜기 위한 임대주택 #주민들이 ‘결사반대’ 외치며 막아 #대구에선 장애인 ‘자립가정’ 공사 #이웃들이 방해하는 소동 벌어져 #청년·장애인 단체의 활동가들은 #“지지해주는 사람 늘어 희망 있다”

#서울 당산동

H아파트 정문을 지나자 왼편 107동 벽면에 걸린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하이마트 부지에 5평짜리 임대아파트 결사반대.’ 주민들이 ‘죽음을 각오하고(決死)’ 반대하는 것은 바로 옆 상가 부지에 세워질 19층 규모 청년임대주택.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40세 미만의 젊은 층이 거주할 집 626개가 생긴다. 전부 5평짜리는 아니다. 17㎡(5.15평)부터 41㎡(12.42평)까지 여러 크기로 구성된다. ‘큰 평수’는 신혼부부용이다. 임대료는 비슷한 조건의 오피스텔이나 원룸의 절반 수준이 된다.

쓰레기 분리장에 온 60대로 보이는 여성에게 반대 이유를 물었다. “자기 동네에 임대주택 들어오는 거 누가 좋아하겠어?”라는 퉁명스러운 대꾸가 돌아왔다. 이어 30대 후반쯤의 주민에게 물어보자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값 떨어지거나 덜 오를까 봐 그러는 거죠. 사실 저희처럼 전세 사는 사람들은 관심도 없어요. 플래카드 붙이고 그러는 거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반대의 중심에 집값 걱정이 있었다. 주민 설득 작업을 벌여 온 서울시 공무원은 “청년임대주택 대신에 뭐가 들어서면 좋겠냐고 물어보면 주민들이 ‘큰 평수 아파트와 편의시설이 함께 있는 주상복합 건물’이라고 한다. 고급 주거지역으로 동네 이미지가 형성되기를 원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주인은 “H아파트는 지하철(2호선과 5호선)이 바로 붙어 있고 최근 영등포 지역 아파트값 상승 분위기 덕을 봐 5, 6년 새 매매가가 거의 두 배로 뛰었다. 그 바람에 주민들의 기대감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H아파트 한 채(115㎡)는 7억원 안팎으로 거래되고 있다.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인근 부동산의 가치가 하락할까. 지난해 2월에 입주를 시작한 대학생 특화 임대주택인 서울 마포구 가좌지구의 행복주택 인근 아파트값은 최근까지 꾸준히 올랐다. “더 오를 수 있었는데 임대주택 때문에 덜 올랐다”고 주민들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실증적 근거가 제시된 적은 없다.

#서울 성내동

지하철 천호역에서 남쪽으로 3분 정도 걸어가자 3, 4층 빌라 옥상에 걸린 플래카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임대주택건설 결사반대’, ‘박원순 시장은 성내동 임대주택 철회하라’ 등의 문구가 있었다. 이곳 주민들 역시 ‘목숨을 건 투쟁’을 다짐했다.

주민들은 지난달 17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주민 동의를 받지 않았다’, ‘민간 업자(임대주택 건립 부지 주인)에게 특혜를 주는 사업이다’ 등이 반대 이유였다. 같은 시간 그 광장에서는 청년 정당 ‘우리미래’와 청년 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이 ‘청년들도 집에 살고 싶다’는 외침이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집회를 열었다.

성내동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자동차 정비소 부지에 들어설 990세대 규모의 청년임대주택이다. 당산동 사업과 유사한 서울시의 청년 주거난 대책의 한 부분이다. 대학생·사회초년생·신혼부부가 한 달에 20만∼30만원을 내고 그곳에서 살게 된다.

그 부지 뒤편 골목에서 만난 주민들은 ‘형평성’을 얘기했다. 한 중년 남성 주민은 “여기는 4층까지만 짓게 하고 거기는 35층짜리 건물을 짓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근에서 ‘청년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노철호씨는 “이 지역은 ‘3종 거주지’로 분류돼 있어 3, 4층 규모의 다세대주택이 밀집돼 있는데 바로 옆 지역은 ‘준주거지’로 돼 있어 최고 9층으로 건물 신축이 가능하다. 근처에 고층의 임대주택이 들어서게 되자 주민들이 용적률 제한 완화에 기대를 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 중리동

지난달 25일 대구시 서구 중리동 H빌라 앞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주민들이 실내공사 업체 차량의 진입을 막았다. 공사 자재 운반을 저지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멈춰 세우기도 했다. 현관에는 ‘각 세대주는 701호에 대한 장애인 입주를 결사반대합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대구 서구청은 지난달 초에 701호를 샀다. 주거비 마련이 어려운 중증장애인 3명이 공동으로 ‘자립생활가정’을 갖게 할 목적이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집단 거주 시설에 있는 장애인 중 사회생활이 가능한 이들을 일반 주거지역에서 살도록 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에서도 이미 20여 개의 자립생활가정이 생겨났다.

H빌라 주민 대표는 “우리가 집값 떨어질까 봐 그런다고들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701호는 맨 위층에 있다. 화재 등의 위험 상황을 피하기 어려운 곳에 장애인들을 살게 하는 것이 옳은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빌라 앞에서 만난 30대 남성 주민은 “지적발달 장애인들이 온다고 한다. 주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분별없는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명숙 대구시청 장애인복지과장은 “지적발달 장애인이 입주할지 신체적 장애인들이 살게 될지 정해지지도 않았다. 전문가 심사를 거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사람들을 선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공존·상생과 같은 단어들이 무색해지고 배제·차별 등의 표현들이 더 걸맞은 상황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에 매달려 온 사람들은 오히려 “희망의 싹이 보인다”고 한다. 최지희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은 “5년 전 서울 구의동에서 주민들이 공공기숙사 건립에 반대할 때만 해도 ‘혐오시설’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당산동·성내동에 가 보면 우리를 응원해주는 주민도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서준호 대구장애인인권연대 대표도 “장애인 입주를 반대하는 분들도 대놓고 집값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진심 여부를 떠나 장애인 안전 문제를 반대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다”고 말했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강병근 건국대 명예교수는 “청년임대주택 갈등은 과도기적 현상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그런 소규모 공간이 보편적 주거 형태가 되는 단계로 진입했다. 지금의 분쟁은 기성세대에게 훈련과 계몽의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좋아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