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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권필의 에코노믹스] 이층버스 연료로? 돈내고 버리던 커피찌꺼기의 반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생태학(Eco-logy)과 경제학(Eco-nomics)이 같은 어원(Eco)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에코(Eco)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온 단어로 ‘집’을 뜻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집인 지구를 지키는 일이 인간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에코노믹스]는 자연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고 나면 14g의 커피찌꺼기가 나온다. 천권필 기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고 나면 14g의 커피찌꺼기가 나온다. 천권필 기자.

14g.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만들 때마다 버려지는 커피찌꺼기(커피박)의 양입니다. 원두의 0.2%만 커피를 내리는 데 사용되고 나머지 99.8%는 찌꺼기로 배출됩니다. 하루에 한 잔씩만 커피를 마셔도 한 달에 0.42㎏, 1년이면 약 5㎏의 커피찌꺼기를 버리게 되는 거죠.

[천권필의 에코노믹스] 돈 내고 버리던 커피찌꺼기의 반전

커피 소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해마다 버려지는 커피찌꺼기의 양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커피찌꺼기의 양은 12만 4000t이나 됩니다. 특히, 커피전문점이 몰려 있는 서울에서는 매일 140t의 커피찌꺼기가 쓰레기로 배출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커피찌꺼기는 다 어디로 갈까

서울 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점원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 [뉴스1]

서울 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점원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 [뉴스1]

대부분의 커피전문점은 커피찌꺼기를 따로 모아뒀다가 다른 생활쓰레기처럼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립니다. 이렇게 모인 커피찌꺼기는 매립하거나 소각 처리됩니다. 지역별로 종량제 봉투 가격은 300~800원 정도(20L)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커피전문점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커피찌꺼기를 버리는 셈이 되는 거죠.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커피찌꺼기의 가치가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커피에 들어갈 에스프레소만 추출하고 나머지를 버리기에는 커피찌꺼기의 재활용 가치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안성의 한 퇴비공장에 커피찌꺼기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경기도 안성의 한 퇴비공장에 커피찌꺼기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현재 국내에서 커피찌꺼기가 가장 많이 재활용되고 있는 분야는 퇴비입니다. 실제로 커피찌꺼기를 넣어서 퇴비를 만드는 경기도 안성의 한 공장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공장에 들어가자 창고 안에 커피찌꺼기가 10m 높이까지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돌멩이처럼 굳어 있는 한 덩어리를 집어 들자 가루로 부서지면서 은은한 커피 향이 났습니다.

경기도 안성의 퇴비 공장에는 일주일에 세 번씩 20t의 커피찌꺼기가 들어온다. [사진 안성퇴비]

경기도 안성의 퇴비 공장에는 일주일에 세 번씩 20t의 커피찌꺼기가 들어온다. [사진 안성퇴비]

아침에 들어온거라 아직 커피향이 남아있네요. 이틀 전에 온 것까지 40t(톤)의 커피찌꺼기가 보관돼 있어요. -박문재 안성퇴비 대표

박 대표는 재작년부터 스타벅스와 손잡고 커피찌꺼기를 활용한 친환경 퇴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나오는 커피찌꺼기의 절반 이상이 이곳으로 모여서 재활용됩니다.

커피찌꺼기를 톱밥, 축분과 섞은 뒤에 수증기 속에서 뒤집는 교반 작업을 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커피찌꺼기를 톱밥, 축분과 섞은 뒤에 수증기 속에서 뒤집는 교반 작업을 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퇴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커피찌꺼기가 모이면 톱밥과 축산 농가에서 수거한 축분을 각각 10:25:65의 비율로 섞어 줍니다. 그리고 뜨거운 수증기 속에서 퇴비를 뒤집는 교반 작업을 한 뒤에 6개월가량의 숙성 과정을 거치면 친환경 퇴비가 완성됩니다. 커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가 반년 뒤에 퇴비로 재탄생하는 셈이죠.

커피찌꺼기 퇴비. 천권필 기자

커피찌꺼기 퇴비. 천권필 기자

박 대표는 퇴비에서 나오는 악취 때문에 주변 민원에 시달리다가 냄새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커피찌꺼기를 넣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커피를 섞은 퇴비가 오랜 기간 숙성 과정을 거치면 은은한 흙냄새가 난다”면서 “악취도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해충을 억제하는 효과 역시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스타벅스 입장에서도 올해에만 5500t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커피찌꺼기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인 셈이죠.

커피 5000잔으로 만든 테이블

커피찌꺼기로 만든 테이블. 천권필 기자.

커피찌꺼기로 만든 테이블. 천권필 기자.

최근에는 커피찌꺼기를 재활용하는 분야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각종 가구에서 벽지에 이르기까지 제품군도 다양합니다.

스타벅스 광화문점에 가면 대형 테이블 3개가 나란히 있습니다. 얼핏 보기엔 나무 테이블과 다르지 않지만, 사실은 커피찌꺼기로 만든 테이블입니다.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5000잔 분량의 커피찌꺼기를 썼다고 합니다.

커피찌꺼기는 화장품의 원료로도 사용됩니다. 커피찌꺼기 속 카페인 성분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지방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잘 말린 커피찌꺼기는 각질 제거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커피찌꺼기로 만든 벽지. [사진 에덴바이오벽지]

커피찌꺼기로 만든 벽지. [사진 에덴바이오벽지]

하지만, 커피찌꺼기가 제대로 재활용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커피찌꺼기는 현행법상 폐기물로 분류돼 있어서 수거와 운반, 처리 등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한 벽지 업체는 커피를 활용한 벽지 제품을 개발했다가 규제에 발이 묶여 판매를 중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남원식 에덴바이오벽지 연구개발팀장은 “커피찌꺼기가 들어간 벽지는 탈취 효과가 탁월해서 주방용으로 사용하기 좋다”며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았지만, 여러 법적 규제에 부딪혀 고심 끝에 상품 출시를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런던 이층 버스가 커피찌꺼기로 달린다?

50년 만에 새롭게 디자인한 런던의 2층버스.  [사진 D뮤지엄]

50년 만에 새롭게 디자인한 런던의 2층버스. [사진 D뮤지엄]

해외에서는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커피찌꺼기가 가진 에너지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커피찌꺼기에는 15% 정도의 기름이 포함돼 있어 새로운 대체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에서는 현재 커피찌꺼기를 연료로 만들어 런던의 명물인 이층 버스를 달리게 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요. 스타트업인 바이오빈(Bio-bean)이 영국 정부, 거대 석유기업인 로열 더치 셸과 손잡고 커피찌꺼기를 원료로 한 친환경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기로 했습니다.

런던에서만 해마다 20만t의 커피찌꺼기가 배출되고 있기 때문에 원료 공급은 걱정이 없는데요. 우선 1년에 6000L의 커피찌꺼기 연료를 시범적으로 생산해 런던 버스에 공급할 계획입니다. 커피찌꺼기로 달리는 이층 버스를 타고 런던 시내를 관광하는 날이 머지않아 보입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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