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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쏭부부 “에베레스트 등정은 욜로의 연장선일 뿐”

중앙일보

입력

[잼쏭부부의 에베레스트 등반기] 

여행하며 영상 콘텐트를 제작하는 '잼쏭부부' 전재민·김송희씨. 지난달 15일 전재민씨가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해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 김송희]

여행하며 영상 콘텐트를 제작하는 '잼쏭부부' 전재민·김송희씨. 지난달 15일 전재민씨가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해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 김송희]

“운이 좋았죠.”
지난달 15일 에베레스트 정상(8848m)에 오른 전재민(29) 씨의 말이다. 세계 최고봉 등정자의 소감치곤 생뚱맞을 정도로 담담하다. 산악인 엄홍길을 주인공으로 실제 등반을 다룬 영화 ‘히말라야(2015)’ 내용과도 사뭇 다르다. 영화에선 에베레스트에 도전하기 위해 40㎏ 배낭을 메고 산을 뛰어오르는 ‘하중훈련’ 등 갖은 간난고초를 겪은 후 등정한다. 물론 ‘산이 쉬웠다’는 건 아니다. 전 씨는 “등정 전후로 날씨가 좋았고, 또 지진으로 힐러리 스텝이 무너져 사다리 없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힐러리 스텝(8790m)은 정상 직전 암벽 구간으로 1953년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에드먼드 힐러리가 처음 돌파해 이름 붙여졌다.

지난달 15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전재민(오른쪽)씨가 '잼쏭부부'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전재민]

지난달 15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전재민(오른쪽)씨가 '잼쏭부부'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전재민]

에베레스트를 오른 한국인은 이번 시즌 3명을 포함해 총 137명이다. 1977년 초등자 고상돈(1979년 작고) 이래 누적 인구를 고려하면 ‘백만 명 중의 한 명’ 될까 말까 한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에베레스트 등정자는 ‘영웅’ 대접받았다. 하지만 전 씨는 스스로 “산악인이라기보다는 산과 자연을 좋아하는 여행가에 가깝다”며 “에베레스트는 욜로의 연장선이었을 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전 씨는 2013년 시샤팡마(8027m) 이어 두 번째로 8000m 이상 봉우리에 올랐지만, ‘8000m 14좌 완등’ 타이틀에도 관심 없다. “그것보다 신나는 일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욜로(You Only Live Once)는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뜻의 라이프 트렌드다.

전재민·김송희씨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김송희]

전재민·김송희씨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김송희]

청소년 오지 탐사대서 만나 부창부수 

전 씨의 등정은 영상 콘텐트 제작자로 일하는 아내 김송희(29) 씨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씨가 산을 오르는 동안 김 씨는 베이스캠프(5300m)에서 캠프매니저 겸 촬영·편집을 담당했다. 남편은 앞장서 가고, 아내는 뒤따르며 찍는 부창부수(夫唱婦隨) 촬영팀인 셈이다. 드론 촬영은 전씨가 담당한다.

지난해 오토바이를 타고 인도 북부 라다크를 여행할 당시의 '잼쏭부부' 전재민·김송희씨. [사진 제공 김송희]

지난해 오토바이를 타고 인도 북부 라다크를 여행할 당시의 '잼쏭부부' 전재민·김송희씨. [사진 제공 김송희]

둘은 대학생이던 2012년 대한산악연맹이 주최한 청소년 오지 탐사대에서 팀원으로 만나 중국 칭하이 성 위주펑(6178m)에 도전했다. 당시에도 김 씨는 촬영 담당 대원이었다. 험난한 날씨 때문에 등정의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당시 인연은 2016년 결혼으로 이어졌다. 신혼여행으로 1년여 동안 동남아·인도·동유럽을 돌며 헝그리 세계 일주를 했다. 결혼 직후 간 라오스의 하루 7000원짜리 방갈로에서 불개미와 함께 자고, 인도 북부 라다크에서 하루 2만원짜리 오토바이를 빌려 열흘 동안 해발 5000m 고원지대를 누볐다. 또 지난해 10월 6일엔 러시아 코카서스산맥에 있는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5642m)를 손잡고 올랐다. 이번 에베레스트를 사전에 특별한 훈련 없이 오를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다. 평소 ‘헝그리 여행의 끝판왕’으로서 배고픔과 인내가 몸에 뱄다는 뜻이다.

지난해 10월 유럽 최고봉에 엘부르즈 정상에 오른 전재민·김송희 엘부르즈. [사진제공 김송희]

지난해 10월 유럽 최고봉에 엘부르즈 정상에 오른 전재민·김송희 엘부르즈. [사진제공 김송희]

‘88만원 세대’이지만, “미래 위한 과정일 뿐”

부부의 신혼 여행기는 ‘잼쏭부부의 잼있는 여행’이라는 동영상으로 제작돼 지난해 3월부터 매주 1회씩 1년여 동안 중앙일보 웹을 통해 연재되기도 했다. 드론을 포함해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동영상은 유튜브 등 SNS에서 화제를 낳았다. 촬영자가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물론 내레이션은 현장에서 편집해 게재하는 게릴라식 제작 방식은 SNS 독자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전형적인 ‘88만원 세대’다. 하지만 벌이가 적다는 이유로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현재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미래를 위한 밥벌이의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김 씨는 “간혹 남편이 촬영 알바로 나가면 하루 30만원을 벌 때도 있지만, 한 달 평균 소득이 100만원이 안 된다”면서도 “요즘 일거리가 늘며 벌이도 조금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에베레스트 원정에 드는 비용도 촬영 기술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대신했다. 1만1000달러(1인·약 1200만원)에 달하는 에베레스트 등반 입산료를 원정대를 후원한 화장품 제조업체 파이온텍에서 내준 것이다. 김 씨는 베이스 캠프에서 한국화장품 좌판을 열기도 했다. 이른바 ‘세상 가장 높은 곳의 가장 작은 화장품 가게’다. 김 씨는 “히말라야에서도 한국화장품은 인기였다. 중국·유럽 산악인들이 매일 오전 캠프를 찾아와 선크림 등 한국화장품을 체험하고 갔다”며 “실제로 몇 개 제품은 팔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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