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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자 3대 못 가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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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1)

부자는 어떤 생각과 철학, 생활방식, 자녀관을 갖고 있을까. 부를 이룬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고, 부를 오래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까. 재벌이 아닌 평범하지만 이웃집에서 만나볼 만한 진짜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편집자> 

일반적으로 부자가 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검소함이 있으니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 [중앙포토]

일반적으로 부자가 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검소함이 있으니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 [중앙포토]

부자들 돈을 관리하는 은행 PB 센터장이 한 얘기다. “상당한 돈을 은행에 맡긴 나이든 고객이 어느 날 지점장실에 왔어요. 자신의 금융재산 운용상황을 점검한 다음 점심을 하자고 하길래 따라나섰죠. 오늘 맛있는 것 좀 얻어먹는가 보다 하고 내심 기대를 했는데 시장통 허름한 집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국밥을 주문해 맛있다고 하면서 한 그릇 뚝딱 하더라고요.”

일반적으로 부자가 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검소함이 있으니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 상당한 재산을 모은 알부자 노인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자식이 성실하게 잘 자라 좋은 직장을 갖고 사회적인 역할을 잘하는 경우다. 이들은 걱정이 없다. 자녀가 자기 일에 보람을 느끼고 경제적인 능력도 있어 부모의 재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자식이 제대로 자리를 못 잡은 경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자녀가 은근히 ‘내 몫은 얼마인가’, ‘언제쯤 물려주나’ 하고 눈치를 봐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그런 걱정 토로를 잘 들어주고 원만한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유능한 센터장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 부자 vs 선진국 부자

선진국의 부자들은 어떨까. 『미국 명문가에서 배우는 부의 대물림[Family wealth]』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가문의 재산을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 가문을 구성하는 개인으로 구성된 인적재산, 둘째 그 인적재산이 소유한 지적재산, 셋째 부차적으로 구성원들의 물적 재산(금융자산, 부동산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부자라고 하면 첫째, 둘째 요소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소위 주식, 부동산, 금융자산 등 물적 재산만 계산하고 그것을 어떻게 절세해 상속할까 고민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부자의 일반적인 사고다. 그러나 미국의 진짜 부자는 가문의 구성원들이 더 많은 행복을 추구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들은 정신적인 요소 없이는 재산을 오래 보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지난 3월 발표한 연간 세계 갑부 순위에서 지난해보다 재산을 392억 달러를 늘리며 1120억 달러(약 120조원)를 보유한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조스가 1위에 올랐다. [중앙포토]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지난 3월 발표한 연간 세계 갑부 순위에서 지난해보다 재산을 392억 달러를 늘리며 1120억 달러(약 120조원)를 보유한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조스가 1위에 올랐다. [중앙포토]

부자 1세대가 일만 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고생고생해서 마침내 큰 재산을 모았다. 두 번째 세대는 대학 졸업 후 고급의상을 걸치고 비싼 아파트에 살면서 부동산에도 투자해 상류사회로 진입한다. 세 번째 세대는 사치스럽게 자라서 일도 거의 하지 않고 돈만 물 쓰듯 하다가 마침내 물려받은 재산을 날려버리고 만다. 마치 ‘부자가 삼대를 못 간다’는 속담을 풀이한 것 같다. 1단계 재산형성기, 2단계 안정이나 현상 유지기, 3단계 가산탕진기라 요약할 수 있다.

그 실패의 고리를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부자 중에 재산을 인적, 지적, 물적 재산으로 구분하는 가문은 거의 없다. 가문이 재산 보존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적재산과 지적재산을 무시하고 물적 재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물적 재산보다 인적, 지적재산 보존하는데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이런 생각을 모든 구성원이 공유해야 한다.

물적 재산보단 인적·지적재산이 더 중요

먼저 인적재산의 중요성이다. 구성원 각자가 적절한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을 통해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고 능력을 길러 사회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적, 정신적 요소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선, 공동체 의식, 동정심 같은 기본적인 덕목이 가문 전체에 배여 있어야 한다. 지적재산이란 각 구성원의 교육적, 직업적, 예술적, 인간관계 네트워크를 성장시키고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적재산과 지적재산이 커질수록 물적 재산이 커질 확률도 높다. 단순히 물적 재산에만 치중하면 커질 수는 있어도 오랫동안 보존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건강한 인적재산 없이는 가문의 재산도 없고 가문 자체도 존재할 수 없다.

&#39;갑질&#39;과 각종 불법행위 의혹을 받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아내 이명희(69) 일우재단 이사장과 첫째 딸 조현아(44) 대한항공 전 부사장 모녀가 지난 4일 각각 법원과 세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39;갑질&#39;과 각종 불법행위 의혹을 받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아내 이명희(69) 일우재단 이사장과 첫째 딸 조현아(44) 대한항공 전 부사장 모녀가 지난 4일 각각 법원과 세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최근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회사 직원들에게 갑질을 하고 횡포를 부려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사례를 심심찮게 본다. 그런 기업이 건강하게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가족들이 행복하게 오래 잘 살 수도 없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겠는가. 가족구성원 간에 부에 대한 철학이 없고 돈 계산만 하는 졸부와 같은 유치하고 맹목적인 욕망만이 지배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더는 그런 부자를 용납하지 않는 때가 왔다.

돈 버는 훈련 앞서 인간 되는 교육시켜야

그저 돈만 잘 버는 훈련만으로는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먼저 흔히 말하는 ‘인간이 되는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과 호흡하면서 사회적인 요구를 경청하고 보이지 않는 목소리까지도 들을 줄 아는 성숙한 인간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 선진국 부자에게는 그게 상식이다.

우리의 부자는 언제쯤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닫기를 바란다. 많은 이웃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기업을 지탱해주는 직원은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다. 그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무시하면서 그들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최근에 문제 되는 일부 재벌가의 낯 뜨거운 행태는 그가 속한 공동체, 사회와 호흡하지 못하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엄한 경종을 울린다.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aventam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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