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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족들의 '비상 식량'을 만들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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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호 28면

빵요정 김혜준의 빵투어: ‘프라이데이 무브먼트(Friday Movement)’

유년 시절 특별한 추억이 있다. 강태공 못지 않은 낚시광이었던 아버지를 따라나선 토요일 새벽길. 까만 밤길을 달려 간 곳은 서울 한남동 큰 낚시 전문점 앞이었다. 거기엔 낚시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이들의 출출한 허기를 달래줄 이동식 포장마차가 새벽 2~3시간 동안만 잠시 문을 열고 있었다. 그곳에서 맑은 순두부탕을 주위 아저씨들처럼 후루룩 마시듯 비우고, 큰 관광버스를 타고 저수지로 향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고, 이제 한남동 낚시공의 자리엔 서핑·모터바이크 같은 각종 아웃도어 매니어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주말의 일탈을 앞둔 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금요일 저녁이면 모여들만한 아지트가 필요하다. 성수동 베이커리 ‘프라이데이 무브먼트’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원래 서교동의 아웃도어 편집숍이었던 이곳은 2016년 9월 성수동으로 둥지를 옮기며 색깔을 달리했다. 서핑 용품들을 위주로 삼았고, 매장 한 구석에서는 직접 구운 프랑스 빵과자를 굽기 시작했다. 서퍼의 그을린 피부를 닮은 갈색 먹거리를 말이다.

아몬드크루아상과 산딸기 크루아상

아몬드크루아상과 산딸기 크루아상

1년 반이 지난 지금, 빵은 더이상 구색 맞추기가 아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어엿한 베이커리 카페가 됐다. 풍성하게 펼쳐놓고 판매하는 매대는 아니지만, 매일 매일 구워내는 아몬드 크루아상·산딸기 크루아상·다양한 파운드 케이크·스콘·쿠키·꺄눌레 등을 만날 수 있다. 주중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샌드위치를 일정 수량 만들어 판매하는데, 주변 직장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매니어층이 생겨날 정도란다.

내 눈과 입을 가장 행복하게 만든 건 이 집의 대표 상품, 파운드 케이크다. 파운드 케이크는 보통 밀가루·계란·설탕·버터를 각각 1파운드(453g)씩 배합하여 만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수분이 적고 당분 함량이 높은 터라 유통기간이 꽤 긴 편이다. 영국에서는 파운드 케이크를 전쟁이 났을 때 전투식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샌드위치

샌드위치

프라이데이 무브먼트의 안주인이자 오너셰프인 유현주 파티시에가 파운드 케이크라는 품목을 무기로 삼은데도 비슷한 이유가 있다. 금요일 저녁, 서핑이나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긴 여행 중 차 안이나 여행지에서 먹기 좋은 아이템을 고민하다보니 파운드 케이크가 제격이겠다 싶었단다. 대신 뻑뻑하고 수분감이 적은 맛보다는 촉촉함과 부드러움을 끌어내고 싶어 공정을 달리했다. 머랭을 따로 쳐서 반죽에 더해 폭신하고 풍부한 맛을 강조한 것. 무화과 파운드 케이크와 바닐라 빈을 아낌없이 사용한 바닐라 파운드 케이크는 이곳의 시그니처 베스트셀러다.

유 파티시에는 프라이데이 무브먼트를 내면서 단순히 서핑과 아웃도어 편집숍 안에 있는 베이커리라는 선입견에서 탈피하고 싶었단다. 그래서 꾸준하게 자신이 배워온 프랑스 빵, 과자의 노하우를 집약해 메뉴 품목을 최소화시켰다.

그는 어릴 적부터 외식업을 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나 자연스레 ‘먹는 것’에 대해 익숙했고, 2016년 9월 자신의 베이커리를 오픈하기 전까지 리치몬드 과자점·슈크레·라몽떼·르노트르에서 꽤 오랜 시간 꾸준한 수련을 해왔다. 제주로 이도를 해서 작은 매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어슴프레 해질 무렵 결혼을 하게 되었고, 사진을 하는 남편과 함께 서핑·아웃도어 편집숍을 운영하다 성수동으로 이사하며 본격적으로 작업실을 갖추고 파티시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연수 시절 먹었던 버터 풍미 가득한 빵과 과자들을 나만의 스타일로 펼쳐낼 수 있다는 기쁨이 커요. 게다가 매일 제가 만든 빵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 발걸음에서 에너지를 얻고 스스로를 다잡게 되죠.” 특별한 마케팅도, 홍보수단도 없이 꾸준한 작업으로 발전하고 있는 프라이데이 무브먼트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여행을 앞둔 설레임이기도, 맛있는 빵과 과자를 눈 앞에 둔 황홀감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크루아상·크랜베리 호두 스콘·꺄눌레·파운드 케이크 등과 함께 메쉬와 프릳츠커피컴퍼니 두 곳의 원두로 커피를 내린다. 또 반찬가게로 이름난 마마리 마켓의 패션프루츠 청을 이용해 패션프루츠 에이드를 선보인다.

티의 경우 시간대 별로 카페인 함량을 다르게 브랜딩하기로 유명한 티 브랜드 블랙캣과 마리아주 프레르의 제품을 사용한다. 베이커리 규모가 작으면 어떠랴. 골라 먹는 재미를 보장해주는 충실한 큐레이션이 아쉬움을 달래주는데. ●

『작은 빵집이 맛있다』 저자. ‘김혜준컴퍼니’대표로 음식 관련 기획·이벤트·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다. 르 꼬르동 블루 숙명에서 프랑스 제과를 전공했다. ‘빵요정’은 그의 필명.

▶프라이데이 무브먼트(Friday Movement)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14길 7
02-6012-4862
월-금 AM 10:00 - PM 07:00
토-일 PM 12:00 - PM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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