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후남 대중문화팀장
“가족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일갈에 한때는 맞장구를 쳤다. 헌데 사람은 변하나 보다. 가족이 회복하기 힘든 병을 앓거나, 부모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닌 때가 되고 보니 또 다른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는 가족 관계, 특히 부모 자식 관계를 “서로 조금씩 엇갈리는 중얼거림”이라 표현했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그의 새 영화가 한국에선 ‘어느 가족’이란 제목으로 다음 달 개봉한다. 연금을 계속 타기 위해 부모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일본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 영화의 원제는 ‘좀도둑 가족(万引き家族)’. 이에 비하면 ‘어느 가족’은 퍽 심심한 제목, 실은 이 감독의 다른 영화에도 두루 붙일 수 있는 제목이다.

영화몽상 6/8
널리 알려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엘리트로 살아온 가장이 지금껏 키운 아들이 병원에서 뒤바뀐 남의 아이란 걸 알게 되며 벌어지는 얘기였고, 앞서 칸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은 ‘아무도 모른다’(2004)는 혼자 자녀를 돌보던 젊은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아이들끼리 지내다 감당 못 할 비극을 겪는 이야기였다. 감독은 일본 사회의 실제 사건을 종종 모티브로 삼곤 했지만, 그 결과는 사회파 드라마보다는 TV 홈드라마라고 해도 좋을 만큼 친근하고 일상적이다.
그의 영화 중에도 ‘걸어도 걸어도’(2009)는 단연 빼어난 홈드라마로 꼽힌다. 장성한 자식들, 손주들이 노부부의 집에 와서 여름 하루를 보내는 단순한 줄거리다. 각진 성격을 드러내는 아버지, 상냥한 듯하지만 듣는 이에게는 상처가 될 말도 곧잘 하는 어머니, 아버지와 서먹한 데다 실직 상태인 걸 감추려는 아들 등이 빚어내는 풍경은 어느 집에서라도 볼 법하지만, 그 누구도 콕 짚어 말하지 않는 가족관계의 미묘한 엇갈림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데도 영화의 마지막은 울림이 크다. 며칠 전 이 영화를 다시 보며 새삼 깨달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 이 영화를 구상했다는 감독 역시 어른이라고는 해도 자식 노릇에 서툴렀던, 그래서 회한 많은 자식 중의 하나라는 걸. 그렇게 서로의 시간이 엇갈려 흘러가는 게 모든 가족의 비밀이리라.
이후남 대중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