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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등산사] 이슬람 반군을 절벽에서 만난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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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가 정말 사람을 죽인 거야?“
2000년 8월 17일, 암벽등반의 귀재 토미 칼드웰은 키르기스스탄의 흙길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여자 친구 배스 로든을 쳐다보며 울부짖었다.

■ 토미 칼드웰 #원정 등반서 이슬람 반군에 인질로 잡혀 #조직원 벼랑서 밀고 탈출 뒤 자책감 빠져 #손가락까지 잘려 암벽등반 관둬야할 판 #접합수술 포기하고 힘과 기술 더 키워 #가장 어려운 루트, 시간과의 싸움… #오히려 시련을 자신의 무기로 삼아

2015년 1월 엘 캐피탄 다운 월을 등반 중인 토미 칼드웰. 다운 월은 최고 난도 5.14d다. 암벽 등반 난도는 5.2에서 5.15대까지 등급이 있다. 5.2, 5.3...5.9까지 이어지다 5.10부터는 다시 5.10a, 5.10b, 5.10c, 5,10d로, 숫자 뒤에 a,b,c,d가 붙으며 세분화 된다. 5.7부터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어느 정도 훈련을 하면 5.9급까지는 등반할 수 있지만, 그 위의 등급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훈련도 필요하다. 중앙포토

2015년 1월 엘 캐피탄 다운 월을 등반 중인 토미 칼드웰. 다운 월은 최고 난도 5.14d다. 암벽 등반 난도는 5.2에서 5.15대까지 등급이 있다. 5.2, 5.3...5.9까지 이어지다 5.10부터는 다시 5.10a, 5.10b, 5.10c, 5,10d로, 숫자 뒤에 a,b,c,d가 붙으며 세분화 된다. 5.7부터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어느 정도 훈련을 하면 5.9급까지는 등반할 수 있지만, 그 위의 등급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훈련도 필요하다. 중앙포토

2시간1분53초만에 엘 캡 정상에

토미 칼드웰(39)은 지난 6월4일(현지시간) 알렉스 호널드(32)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앨 케피탄(앨캡) 노즈(Nose·915m·최고 난도 5.13b) 루트를 2시간1분53초 만에 올랐다. 닷새 전의 2시간10분15초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노즈 루트를 통해 등반에 성공한 건 정확히 60년 전인 1958년이었다. 무려 47일이나 걸렸다. 그것도 로프와 장비에 몸을 지탱하는 인공등반이었다. 칼드웰과 호널드가 바위 사이에 낀 로프를 빼내는데 걸린 2분 조금 넘는 시간을 빼면 ‘서브2’(2시간 이내 등반)의 기록도 가능했다. 칼드웰은 이미 2015년 엘 캡에서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그 과정까지,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토미 칼드웰(왼쪽)과 알렉스 호널드가 2018년 6월 4일(현지시간) 요세미티 엘 캐피탄 노즈 루트를 2시간1분53초 만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이들이 노즈 루트(암벽 우측의 콧잔등처럼 보이는 긴 모서리)가 보이는 셔츠를 들고 있다. 중앙포토

토미 칼드웰(왼쪽)과 알렉스 호널드가 2018년 6월 4일(현지시간) 요세미티 엘 캐피탄 노즈 루트를 2시간1분53초 만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이들이 노즈 루트(암벽 우측의 콧잔등처럼 보이는 긴 모서리)가 보이는 셔츠를 들고 있다. 중앙포토

대학 진학 포기하고 전업 클라이머의 길로

칼드웰은 왜소했다. 눈이 좋지 않았다. 학교에서 어울리지 못했다. 보디빌더이자 산악가이드인 아버지를 따라 집 근처 콜로라도의 산에 올랐다. 이미 3살 때 집에서 만든 안전벨트를 차고 암벽등반에 나섰다. 칼드웰은 볼리비아·알프스를 두루 돌아다녔다. 몸집 작은 칼드웰은 몸 안에서부터 컸다. 산을 바라보는 눈이 뜨였다. 학교에 돌아오자 모든 것이 지루했다. 클라이밍에 집중했다.

17살 칼드웰은 각종 클라이밍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 클라이머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차에서 자고 청년센터 화장실에서 몸을 닦으며 미국 곳곳을 누볐다. 50달러로 한 달을 버텼다. 전업 클라이머의 세계는 혹독했다. 하지만 칼드웰에게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고 클라이머들의 어린 시절. 1996년에 찍은 15세 크리스 샤마(왼쪽)와 17세 토미 칼드웰이다. 중앙포토

최고 클라이머들의 어린 시절. 1996년에 찍은 15세 크리스 샤마(왼쪽)와 17세 토미 칼드웰이다. 중앙포토

알 카에다에게 잡히다

2000년 8월 12일 이른 아침 키르기스스탄의 악수(Ak Su)의 옐로 월(Yellow Wall 수직고도 760m˙). 이곳은 중앙아시아의 요세미티로 불린다. 300m 높이에 걸린 포터레지(암벽에 고정시키는 작은 텐트) 안에서  칼드웰 일행은 단잠에 빠져 있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강암에 먼지가 일었다. 이들은 이 소음과 소동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소음과 먼지가 일어났을 때 제이슨 싱어는 벌떡 일어나 헬멧부터 뒤집어썼다.
“이건 낙석이야, 낙석!”
칼드웰의 여자 친구 배스 로든이 소리쳤다.
“아니, 총성이야. 우릴 겨냥하는 거라고!”

칼드웰(당시 20세)은 이미 미국 최고난도 스포츠 루트 중 한 곳인 콜로라도의 크립토나이트(kryptonite·5.14d)를 등반해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베스 로든(당시 20세)은 난도 5.14급을 등반하는 몇 안 되는 여성 클라이머 중 한 명이었다. 제이슨 싱어(당시 22세)는 캐나다 배핀의 소르 마운틴을 14일에 단독 등반하는 등 등반계의 유망주였다. 존 디키(당시 25세)는 사진 촬영차 이들과 함께 했다. 이들은 2주 전에 키르기스스탄에 도착해 한 달간 등반을 할 계획이었다.

총을 쏜 무리는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디키가 먼저 하강해 이들에게 담배를 건네며 몇 마디 나눴다. 이들은 담배를 거절했다. 디키는 모토롤라 무전기를 든 채 떨리는 목소리로 일행에게 연락했다.
“어, 음…모두…내려와야겠는데….”

통행허가 내준 키르기스스탄 정부군도 잡혀  

칼드웰 일행은 AK-47 소총과 수류탄·단검을 소지한 세 명과 어색한 악수를 나눴다. 그들 중 한명은 파타고니아 고어텍스 재킷을 입고 최신 독일제 배낭을 메고 있었다. 이들은 알 케에다와 연관이 있는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IMU) 조직원들이었다. IMU는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남서쪽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미 1년 전인 1999년 8월에 일본인 지질학자 4명을 64일간이나 인질로 잡아 놓기도 했다. 이 이슬람 반군은 한 명을 더 붙들어 놓고 있었다. 며칠 전 칼드웰 일행에게 통행 허가를 내준 키르기스스탄 정부군이었다. 정부군은 손짓발짓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미 내 동료 세 명이 처형됐다.”
칼드웰 일행의 얼굴이 굳어졌다.

갑자기 정부군의 러시아제 Mi8 헬리콥터가 산등성이 너머에서 나타났다. 일행은 몸을 숨겼다.
“헬기에 어떤 사인을 보내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요.”
압둘이 협박했다.

잡혀있던 정부군은 자신이 처형될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칼드웰에게 손짓을 했다.
“걱정 말아요. 난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소.”
떨고 있는 로든에게도 수신호를 보냈다.
“울지 마세요. 전 울지 않습니다.”
그리고 압둘을 따라 갔다. 바위 뒤에서 두 발의 총성.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정부군과 반군간 교전이 시작됐다. 칼드웰은 처형된 정부군의 시체 뒤에 숨어 총알을 피했다. 그는 총알을 막아주려는 듯, 로든을 감싸 안았다.

2000년 7월에 촬영된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IMU) 조직원들의 동영상 캡처 화면. 가운데 인물이 칼드웰이 벼랑에서 밀어버린 '수'라는 인물이다. 중앙포토

2000년 7월에 촬영된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IMU) 조직원들의 동영상 캡처 화면. 가운데 인물이 칼드웰이 벼랑에서 밀어버린 '수'라는 인물이다. 중앙포토

2000년 8월 키르기스탄에서 이슬람 반군에게 인질로 잡힌 뒤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토미 칼드웰 일행. 맨 왼쪽이 칼드웰, 그 오른쪽이 당시 여자친구였던 베스 로든이다. 중앙포토

2000년 8월 키르기스탄에서 이슬람 반군에게 인질로 잡힌 뒤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토미 칼드웰 일행. 맨 왼쪽이 칼드웰, 그 오른쪽이 당시 여자친구였던 베스 로든이다. 중앙포토

알 케이다 조직원을 죽이다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고난의 행군이 이어졌다. 인적도 마을도 없었다. 모두 하루 파워바 반 개로 버텼다. 칼드웰 일행은 탈출할 궁리를 계속했다.기회는 있었다. 압둘이 가파른 사면에서 칼드웰 일행에게 총을 건넸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칼드웰 일행은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들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16일 자정께, 압둘은 칼드웰 일행의 야영지에서 건전지를 가져온다며 자리를 떴다. 1명의 감시자만 남았다. 그의 이름은 ‘수’였다. ‘수’는 가파른 경사면을 버거워 하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칼드웰은 기회라 생각했다. 칼드웰은 로든에게 눈짓을 보냈다.
‘내가, 정말 이 사람 죽이기를 원해?“
로든의 반응은 없었다.

칼드웰은 ‘수’의 소총을 잡고 좌우로 흔들며 그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레지(절벽의 튀어나온 바위) 뒤로 밀어 버렸다. 19살짜리 반군은 10m를 떨어진 뒤 500m 아래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난 칼드웰의 행동을 이해한다”

2000년 8월 키르기스탄에서 이슬람 반군에게 인질로 잡힌 뒤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토미 칼드웰과 베스 로든이 귀국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0년 8월 키르기스탄에서 이슬람 반군에게 인질로 잡힌 뒤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토미 칼드웰과 베스 로든이 귀국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칼드웰은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털썩 주저 앉아 머리를 감쌌다.
“내가, 내가 어떻게….”
그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토미, 안 그러면 우린 죽었을지도 몰라.”
일행은 칼드웰을 겨우 진정시켰다.

그들은 무작정 걸었다. 뒤에서 바위 구르는 소리가 나면 반군이 쫓아오는 줄 알고 깜짝깜짝 놀랐다. 그들은 29km를 걸어 정부군 부대에 들어섰다. 6일간의 악몽이었다. 모두 10kg 가까이 체중이 빠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 외에도 독일인 6명, 러시아인 3명, 우즈베크인 2명, 우크라이나인 1명 등 12명의 클라이머들이 곳곳에서 IMU의 인질로 잡혀 있었다.

칼드웰은 귀국해서도 ‘수’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레지 너머로 떨어지는 장면은 정지화면이 되어 그의 머리에 박제로 남았다.

얼마 뒤, 칼드웰은 자신이 밀어버린 반군 ‘수’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른 클라이머들이 감옥에 잡혀있는 ‘수’를 만났다고 한다. ‘수’는 “난 그(칼드웰)의 행동을 이해한다”고 했다.
칼드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납치 우두머리 압둘은 칼드웰 일행 귀국 직후에 정부군과 교전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드웰의 시련은 계속 됐다.

왼손 집게손가락이 사라졌다

2001년 11월, 칼드웰은 세탁기를 수평으로 고정시키기 위한 나무 받침대를 깎고 다듬었다. 2×4인치의 목재를 책상톱에 끼웠을 때 그의 손가락도 톱날에 같이 걸렸다. 왼손 집게손가락 두 마디가 잘렸다. 손을 위로 올렸지만 피는 분수처럼 솟구쳤다. 뼈가 보였다. 잘린 손가락은 어디 있는지 안 보였다. 아내인 로든(키르기스스탄의 그 로든이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와줘야겠어.”

로든이 톱 옆에 떨어진 손가락을 찾아 비닐 지퍼 백에 넣고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접합한 손가락으로는 힘을 줄 수 없어 더 이상 등반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손가락을 이식시켜 주겠다고 했다. 칼드웰은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고민했다.
“제 손가락을 포기하겠습니다.”
그리고 병원을 나섰다. 아버지는 다른 손가락의 힘을 늘리는 장비를 만들어줬다. 칼드웰은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거대한 화강암 앞에 섰다.

토미 칼드웰은 왼손 집게손가락 두 마디가 없다. 사고로 잃었다. 중앙포토

토미 칼드웰은 왼손 집게손가락 두 마디가 없다. 사고로 잃었다. 중앙포토

지구에서 가장 어려운 루트에 오르다

2015년 1월 토미 칼드웰과 케빈 요르게슨이 등반에 성공한 엘 캐피탄 다운 월 루트. 중앙포토

2015년 1월 토미 칼드웰과 케빈 요르게슨이 등반에 성공한 엘 캐피탄 다운 월 루트. 중앙포토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엘캡)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세 배 높이의 거대한 화강암 바위다. 해발 2400m에 암벽 높이만 900m가 넘는다(북한산 인수봉은 해발 811m. 가장 긴 암벽 루트는 237m다). 이곳엔 100여 개의 등반 루트가 있다. 엘캡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다운 월(Dawn Wall)은 꼭대기까지 31개의 구간으로 돼 있다. 몸도 날려 홀드를 잡는 ‘다이노(dyno)' 동작으로 오를 수 있는 구간도 있다. 최고 난도 5.14d가 두 구간이고 최하가 5.12다. 벽 등반 루트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어렵다.

2015년 1월 앨캐피탄 다운 월을 등반 중인 토미 칼드웰. 칼드웰은 장비에 의지하지 않는 '프리 클라이밍'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중앙포토

2015년 1월 앨캐피탄 다운 월을 등반 중인 토미 칼드웰. 칼드웰은 장비에 의지하지 않는 '프리 클라이밍'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중앙포토

칼드웰은 이런 다운 월을 프리 클라이밍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다운 월은 칼드웰을 10년간 사로잡았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칼드웰의 ‘모비딕’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집착 혹은 집념에 대한 헌사였다. 2010년과 2011년 실패 뒤 2014년 12월 케빈 요르게슨과 함께 다운 월에 올랐다.

손에서 피가 맺혔다. 칼드웰은 다이노 동작을 하다가 수십 미터를 추락했다. 요르게슨은 15번째 구간에서만 10차례 시도하며 7일간 악전고투 끝에 완등하기도 했다. 칼드웰과 요르게슨은 생중계하듯 SNS에 등반 상황을 전했다. 요세미티에는 이들의 등반을 지켜보는 관중이 몰렸다. 그리고 2015년 1월 14일, 이들은 열아흐레에 걸쳐 다운 월 등반에 성공했다.

2015년 1월 엘 캐피탄 다운 월을 등반 중인 토미 칼드웰(오른쪽). 밑의 케빈 요르게슨이 등반 확보를 봐주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1월 엘 캐피탄 다운 월을 등반 중인 토미 칼드웰(오른쪽). 밑의 케빈 요르게슨이 등반 확보를 봐주고 있다. 중앙포토

케빈 요르게슨이 요세미티 엘 캐피탄 다운월 15피치에서 등반하고 있다. 5.14d 등급으로 31개 구간 중 가장 어렵다. 요르게슨은 이 곳을 통과하는데 7일이 걸렸다. 중앙포토

케빈 요르게슨이 요세미티 엘 캐피탄 다운월 15피치에서 등반하고 있다. 5.14d 등급으로 31개 구간 중 가장 어렵다. 요르게슨은 이 곳을 통과하는데 7일이 걸렸다. 중앙포토

2015년 1월 14일 토미 칼드웰과 케빈 요르게슨이 다운 월 완등 뒤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답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1월 14일 토미 칼드웰과 케빈 요르게슨이 다운 월 완등 뒤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답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1월 14일(현지시간) 요세미테 앨캐피탄 다운 월 등반에 성공한 뒤 정상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토미 칼드웰. 중앙포토

2015년 1월 14일(현지시간) 요세미테 앨캐피탄 다운 월 등반에 성공한 뒤 정상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토미 칼드웰. 중앙포토

‘push’로 살아온 칼드웰  

“내 39년의 삶은 푸쉬(push)였다.”
칼드웰이 쓴 자서전의 제목이 ‘푸쉬’다. 아버지는 자신을 산으로 밀어 넣었다. 19살 알케아다 조직원을 절벽으로 밀어버렸다. 자신의 손가락이 톱에 밀려들어갔다. 정신적, 육체적 시련을 겪고도 거듭났다. 클라이머에게 요구되는 절제와 욕망의 경계선에서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암벽등반 루트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칼드웰과 호널드가 엘 캡 노즈를 오르며 기록 단축에 매달리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비판도 있다. 등반이라는 행위 자체가 자신을 극복하는 행위임을 감안한다면 새로운 시도는 해봐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다음은 어디일까. 칼드웰의 손끝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일상등산사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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