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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직격 인터뷰

“20대 여성들, 성정치혁명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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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여성학자 이나영 중앙대 교수

이나영 교수는 속사포 같이 명쾌한 답을 쏟아냈다. ’지금 20대 페미니스트들이 던지는 사회적 의제들을 기성세대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대한민국을 더 좋은 사회로 이끈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이나영 교수는 속사포 같이 명쾌한 답을 쏟아냈다. ’지금 20대 페미니스트들이 던지는 사회적 의제들을 기성세대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대한민국을 더 좋은 사회로 이끈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2018년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시계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미투 폭로에서 ‘홍대 몰카 편파수사 규탄’ 시위, 낙태죄 폐지 청와대 청원, 상의 탈의 시위와 ‘탈코르셋’ 운동. 편파수사 규탄시위는 여성들만 참여한 최대 규모로 열렸고, 주최 측이 따로 없이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참여자는 대부분 20대 여성. 다른 한편에서는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사상 검증 등 백래시(backlash·반동)도 일어나고 있다. 여혐에 맞서는 남혐, 페미니즘 행사를 둘러싼 남녀 대학생들의 충돌도 발견된다.

페미니즘 물꼬 튼 한국사회 #디지털 기반, 20대 여성이 중심 #단체와 소속이 없는 새로운 방식 #선배 여성운동가들과 달라 #강남역, 세월호 등에 큰 영향 #586 운동권 문화와도 각 세워 #성별에 따라 정치 견해 달라지는 #‘젠더정치’ 시대도 본격 개막

이처럼 한국 사회를 읽는 주요 키워드가 된 페미니즘. 그 중심에 선 20대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기존 여성운동가들과 확연히 다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이자 성 자체를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는 ‘젠더정치’ 시대를 열며 한국사회를 바꾸고 있다. 대표적 여성학자인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영 페미니스트의 출현과 새로운 성정치학적 지형도’에 대해 들었다. 5일 학교에서 만난 이 교수는 “성정치혁명적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주말 상의 탈의 시위는 국내에 없던 급진 운동이다.
“페미니즘 운동사를 보면 남녀에게 동등한 법적 권리를 요구한 여성권리운동, 일상과 문화 등 사회 전반의 변혁을 주장한 여성해방운동, 두 축이 있다. 미국에서도 1960년대 중반 법제도 개선으로 형식적 성평등을 이뤘지만 여성의 일상은 여전히 힘들었다. 여기서 ‘일상의 민주주의’ 개념이 나왔다. 남성중심적 문화가 변하지 않는다면 법제도를 개선하고 혁명해도 소용없다, 여성은 영원한 이등시민이라는 인식이다.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자본주의 보다 오래된 가부장제를 뿌리 뽑으려는 ‘세컨드 웨이브’가 시작됐다.”
지금 우리 20대 여성들의 문제의식과 유사하다는 건가.
“지금 서구는 ‘포스(fourth) 웨이브’까지 왔다고 한다. 온라인 베이스에, 수직적 동원이 아니라 유기적 연대를 하며 예측불가능하고 비균질적인 운동양식이다. 우리도 온라인 베이스니 운동 방식은 포스 웨이브인데, 내용은 세컨드 웨이브다. ‘성 자체가 지배와 종속’이라고 본 세컨드 웨이브는 사적 영역으로 규정돼온 성 문제를 공적인 아젠더로 끌어왔다. 쟁점들이 성적 자기결정권, 낙태죄 폐지, 성매매, 음란물, 성폭력, 가정폭력 등이다. 지금 ‘탈코르셋 시위’와 비슷한 ‘프리덤 트래쉬 캔’(freedom trash can·쓰레기통에 화장품, 하이힐, 속옷 등 여성을 억압하는 물품들을 버리는 퍼포먼스), 미스 아메리카 반대 시위를 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전후 경제 활황기에 태어나 핵가족 안에서 차별받지 않고 자란 젊은 여성들이 중심에 섰다. 자기 능력은 배가됐고 의식도 깨었는데 사회는 지체된 데서 오는 간극, 그 간극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은 풍요로우며 민주적인, 지금 우리 상황과 유사점이 있다. 우리 20대 여성들도 핵가족 저출산 시대에 적어도 가족 안에서는 상대적으로 평등하게 자랐다. 심지어 중고교 시절 남학생들에게 뒤져 보지 않은 세대다.”

한국사회의 특수성은 없나.
“학생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인터뷰해보면 강남역과 세월호를 꼽는다. 우선 2014년 세월호를 지켜보면서, 그게 나일 수도 있었다, 난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고, 또 우연히 운이 좋아서 부잣집에 태어났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 연달아 2015년 메갈리아라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생기고, 2016년 강남역 사건이 터졌다. 이 친구들이 이때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 폐쇄운동도 하는데,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자기가 책에서 배운 사회가 아니라는 걸 절감하게 된 거다.

2015년 위안부 한·일 합의도 중요했다. 수요집회에 나가보면 대부분 10~20대다. 이들이 소녀상과 자기를 동일시한 지 오래다. 내가 한번 성추행당해도 힘든데 할머니들은 몇십 년 동안 하루에 수십명에게 조직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그런데 가해자는 안 했다고 하고, 한국 남자들은 여성 인권이 아닌 민족 문제로만 얘기하네? 한·일 합의 때 10~20대가 제일 분노했다.

이러면서 이 친구들이 페미니즘 서적을 읽기 시작했고, 자기네들끼리 페미니즘 강연을 조직하거나 텀블벅(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으로 기금을 모으고 연대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페미니즘을 만들고 있다. 완전히 혁명적인 상황이다. 누가 이끈 것도 아니고,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에서 훈련받은 사람도 아니고, 특정 단체 소속도 아니고, 배후도 없다. 그러니까 이게 무서운 거다. 나보고 수괴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천만의 말씀, 온라인 베이스로 움직이니까 누가 누군지 모른다. 심지어 본명도 모른다.”

기성세대와 달리 20대에서 정치적 견해의 젠더 차가 두드러지면서 ‘젠더정치’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맞다. 심지어 젊은 세대에서는 세대 간극보다 남녀 간극이 더 크다. 세대와 연령을 교차해서 보면 20대 여자와 50대 이상 남자의 격차가 제일 크다. 가시적으로야 20대 남녀 갈등이 두드러지지만, 20대 여자가 보기에 제일 문제는 정치·사회·경제 권력을 다 쥐고 있는 50~60대 남성이다. 50대 아저씨들이 자기 아들을 망친다고도 생각한다. 가령 중고교 때 1등 못하고 오면 아빠들이 ‘병신같이 기집애한테 지고 온다’면서 열등감을 만들어주고, 그 열등감을 동년배 여자한테 풀게 하는 식 말이다. 586 ‘꿘충(운동권을 비하하는 말)’을 굉장히 문제적이라고 보고, 50대 이상 ‘문빠’들하고 엄청 싸운다. 보수 쪽은 너무 어이가 없기 때문에 아예 끼워주지를 않고.”
586과 각을 세우게 된 건, 진보 남성의 이중성을 드러낸 미투 탓도 있겠다.
“김어준 등의 미투 공작 운운에 인권대통령을 표방한 안희정이 준 충격도 컸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아직도 1980년댄줄 아는 단일대오형, 지시형의 586 운동방식 자체를 후지게 본다. 학교, 학과, 고향 따지고 형님동생하는 ‘팔로센트릭(phallocentric·남근중심적) 연줄문화’도 질색한다. 이들에게 586은 진보 아닌 보수다. 성평등 감수성 하나 없는데 무슨 진보냐, 남자 대통령은 페미니스트라 하면 칭찬받고, 여자는 페미니스트라 그러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무슨 진보냐, 이런다.”
남성혐오나 남성 배제는 문제 아닌가.
“미러링(mirroring·반사하기)은 훌륭한 전략이다. ‘니가 얼마나 빻았는지(별로인지) 알려줄게’ 이렇게 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그럼 니가 하는 짓을 거울에 비춰 봐, 이거다. 기존 남성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거고, 원본이 없어지면 당연히 없어진다. 남자들이 일상적으로 해왔으나 아무도 여혐이라 하지 않고, 경찰이나 언론도 관심 없었던 걸 여자들이 한 번 하니까 엄청 관심을 끄는 건데, 그게 남성혐오라면 굉장히 어불성설이다. 또 정치사회 권력을 남성이 쥐고 있는데 어떻게 여성이 남성을 배제하나.”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는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했다.
“그건 한국 여성에겐 어떤 공간도, 어떤 관계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메시지였다. 오해 말아야 할 게, 페미니즘은 개인 남성을 악마화하지 않는다. 아동 성폭력이 터지면 거세시키라며 남자들이 더 난리를 친다. 악마 같은 타자를 분리해서 자신은 무관한,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이게 구조의 산물이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다. 한국 사회가 굉장히 성차별적이고 남성우월주의 사회라면 나도 모르게 가해자가 될 수 있고, 여자도 남자와 동일시한 여자는 언제든지 2차 가해자나 직접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백래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백래시는 무슨, 지배적이 돼야 백래시가 오지 이제 겨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어쨌든 그건 페미니즘 세력이 크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자들이 조용하고 순종할 땐 세상이 평화로워 보인다. 요즘 대학에서 남녀 간 충돌이 많아 보이는데 그건 그만큼 대학이 열려있고 민주적인 공간이라 가시화되는 거다. 문제 없고 소리 없는 곳이 훨씬 더 억압적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남자들의 세 가지 주장이 있다. 여자도 군대 가라, 남자가 역차별당하고 있다, 남자의 성욕은 억제 불능이다.
“여성들은 일단 억압적 군사문화 자체를 반대한다. 여자도 군대 갈 수 있지만, 그에 앞서 군대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 군인권, 군대 성폭력 문제는 도외시하고 군대가 힘드니까 여자도 가라는 건, 너도 똑같이 맞아보란 얘기 밖에 안된다. 역차별이란 건, 공식적인 지표만 가지고도 OECD 회원국에서 늘 꼴찐데 어디에 성평등이 있다는 건지 묻고 싶다.

또 욕망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란 얘기는 서구에서 70년대부터 완전히 정착된 이론이다. 더구나 ‘성적 욕망 자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성의 욕망을 얘기할 뿐, 여성의 욕망이 자연스럽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심지어 성욕· 식욕· 수면욕을 3대 욕망이라고 하는데 원전이 뭐냐, 근거를 대라 한다. 누가 어디서 한 말인지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온다. 그냥 신화다. 남성의 성문화를 관용하는 근거가 돼주는. 동물도 강간은 안 한다.”

이 운동은 어떻게 흘러갈까.
“페미니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이제는 남혐이냐 남자 배제냐 이들에게 따져 묻기보다, 기성세대가 이들이 제기한 이슈에 어떻게 대답할까로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이들이 10~20년 안에 세상을 이끌며 중추적인 역할을 할 건데, 이들이 상상하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더 낫다. 성별이든 인종이든 계층이든 어떤 차이를 갖고 있든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 그게 공정하다, 딱 이거니까. 이들이 원하는 의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대한민국이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나영 교수는 …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현실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대표적인 여성학자다.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여성학 박사학위를 땄다. 결혼 후 뒤늦게 페미니즘에 눈떴다고 고백한다. 미국 조지메이슨대교수를 거쳐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있다. 2009년 중앙대 성평등상담소를 만들었고 2012년 국내 최초의 대학내 인권센터를 열었다.

양성희 논설위원

※이 취재에는 윤가영 인턴 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