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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프리즘] 아프리카 해적 막는데 연간 70억 달러 … 해운업 골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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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박경덕의 아프리카 아프리카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에는 미국·프랑스·일본 등 각국 함정이 파견돼 자국 선박 보호에 나서고 있지만 기동력이 뛰어난 소형 보트와 자동화기 등으로 무장한 해적들을 단속하기란 쉽지 않다. 사진은 2006년 12월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선박을 납치했다가 이듬해 2월 체포된 해적들. [중앙포토]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에는 미국·프랑스·일본 등 각국 함정이 파견돼 자국 선박 보호에 나서고 있지만 기동력이 뛰어난 소형 보트와 자동화기 등으로 무장한 해적들을 단속하기란 쉽지 않다. 사진은 2006년 12월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선박을 납치했다가 이듬해 2월 체포된 해적들. [중앙포토]

2010년 봄,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인도양의 섬나라 몰디브를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바닷속에서 내각회의를 열어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모하메드 나시드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수도 말레의 대통령궁 앞 바닷가 벤치에서 인터뷰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천혜의 관광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군함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올해 1분기, 해적사건 53% 급증 #외국 어선 불법조업이 해적 원인 #기니만 해역서 가장 많이 출몰

그 날은 그곳에서 1000㎞가량 떨어진 소말리아 해역에서 한국 유조선 삼호드림호가 해적에 납치된 다음 날이었다. 나시드 대통령을 인터뷰하면서 몰디브는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안전한지 물었다. 나시드 대통령은 “몰디브 어부는 아주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적이 우리 어부를 건드린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웃어넘겼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몰디브 어부들은 운이 좋은 것이다. 국제해사국(IMB) 해적신고센터에 따르면, 2010년 해적의 공격이 가장 많았던 바다가 몰디브 북서쪽으로 펼쳐진 아라비아해였다.

IMB가 해적 사건 집계를 시작한 1993년 이후 가장 많은 사고가 보고된 해는 2000년이다. 그해 모두 469건의 해적 공격이 보고됐는데, 인도네시아(119건)와 말라카 해협(75건)이 전체의 41%를 차지했다. 당시만 해도 소말리아(9건)나 기니만(13건) 등 아프리카 주변 해역은 그 비중이 미미했다. 하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소말리아 해적의 활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소말리아 해적은 소말리아 앞바다뿐 아니라 아덴만, 홍해, 아라비아해, 인도양, 그리고 오만 앞바다까지 종횡무진으로 활동했다. 2008년 111차례 민간선박을 공격했고, 2009년부터 3년 동안은 각각 218회, 219회, 237회로 연간 200회를 넘어서면서 약탈 행위가 절정에 달했다.

영국의 BBC방송은 지난해 5월 소말리아 해적을 다룬 특집기사에서 “2010년과 2011년, 소말리아 해적 때문에 세계 해운산업은 민간 경비 팀 고용 등으로 매년 최대 70억 달러의 안전 비용을 추가로 들여야 했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적. [AFP=연합뉴스]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적. [AFP=연합뉴스]

나토와 유럽연합(EU) 연합함대(Navfor), 그리고 미 해군 주도 연합해군사령부(Combined Maritime Forces)가 힘을 합쳐 아덴만에서 아라비아해를 지나는 해사안전통항로(Maritime Security Transit Corridor, MSTC)를 확보하고 경비에 나선 것도 이 무렵부터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노력 덕분에 2012년부터 소말리아 해적의 움직임은 크게 위축됐다. 그해 75차례 공격에 이어, 2013년과 2014년에는 각각 15번과 11번에 그쳤고, 급기야 2015년에는 소말리아 해적의 공격 사례가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2016년과 2017년에도 각각 2건과 9건에 그쳤다. 소말리아 해적의 공격이 감소하면서 전 세계 해적사건 발생 건수도 크게 줄어, 지난해에는 1995년(188건) 이후 최저치인 179건을 기록했다.

한숨 돌리나 싶은 순간, IMB의 해적 경보음이 다시 울렸다. IMB가 올해부터 다시 해적 사건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지난달 발표한 것이다. IMB는 “2018년 1분기에만 66건의 해적사건이 발생, 2017년 1분기(43건)보다 53% 늘어났다”고 밝혔다. 아직 1분기 기록이긴 하지만 이러한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지난해 연간 179건을 크게 뛰어넘어 2013년 수준(264건)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해적의 약탈도 난폭해지는 양상이다. 올해 1분기 모두 39척의 배에 해적이 진입해 11척에서 총기를 사용했고, 선원을 납치한 경우도 네 건이나 됐다. 전년 동기 대비 총기 사용 건수는 세 배가량, 납치 건수는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100명의 선원이 인질로 잡혔고, 14명이 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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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해적 사건이 다시 늘어난 주원인은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 해역에서 활동하는 해적의 공격이 잦아진 때문이다. 올 1분기 기니만 해역에서만 29건의 해적 공격사례가 보고되면서 전 세계 해적사건의 44%를 차지했다. 특히 1분기 중 선박과 선원을 납치한 4건의 해적사건이 모두 기니만에서 발생했다. 1월 중순과 2월 초 베냉의 남부 항구도시 코토누에서 석유제품운반선 두 척이 납치됐으며, 3월 말에는 나이지리아와 가나 앞바다에서 두 척의 어선이 납치됐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 국민 3명이 탄 어선 ‘마린 711호’ 였다. IMB는 “기니만 해역에서 활동하는 해적은 무장이 잘 돼 있고 잔인하다”며 “특히 나이지리아 남부 바이엘사, 브라스, 보니 아일랜드 앞바다에서 선원 납치 사례가 급증해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해역에서 해적 활동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BBC는 “현지에서 자행되는 외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 이슈와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3월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붙잡힌 해적은 BBC 인터뷰에서 “외국 어선들이 불법 조업으로 어자원을 고갈시킬 뿐만 아니라 현지 어선들을 공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외국 어선들이 망쳐버렸다는 얘기다. 외국 어선들이 아프리카 바다에서 불법 조업을 일삼는 이유는 이곳이 붙잡힐 위험성이 낮은 데다, 설사 잡힌다 하더라도 벌칙이 가볍기 때문이라고 BBC는 덧붙였다.

기니만 해역도 마찬가지다. 16세기부터 어업 및 교역항구가 발달한 기니만 연안은 도미·고등어·새우 등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 어업과 관련된 직간접 일자리만 현지 고용의 25%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런데 이런 황금어장에서 외국 원양어선들이 남획을 일삼으면서 현지 어민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애초 소말리아가 해적의 본거지가 된 것은 국가 체제가 사실상 붕괴한 상태에서 어부들이 생계를 위해 대거 해적질에 나섰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등 기니만 연안 국가 해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프리카 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치적 안정과 함께 현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주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국제관계학 박사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국제관계학 박사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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